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그대에게 전하고픈 말
지난 현충일 오후였어요.
점심을 먹고 두어 달 전 물꽂이를 해둔 라벤더의 새로 나온 뿌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흙에 심어주려고 일회용 음료 용기바닥에 구멍을 뚫고 있었지요. 유난히 단단하던 그 플라스틱 바닥에 커터칼을 꽂고 구멍이 뚫리려는 찰나 용기를 잡고 있던 왼손 엄지 아랫부분에 칼이 꽂히면서 2cm가량의 칼자국이 나버리고 말았어요.
초콜릿 분수처럼 꿀렁이며 샘솟는 붉은 피를 보고 정신이 아찔했지만 바로 싱크대로 달려가 상처부위를 씻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라벤더 작업 전에 칼날을 소독용 에탄올로 닦아놨기에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쉰 것도 잠시, 피를 닦아낸 상처가 벌어진 부분은 경악스러울 만큼 깊게 파여 끔찍해 보였어요. 마치 고깃덩이를 칼로 정교히 자른 것 같은 모양에 머리가 새하얘졌지만 새 수건을 상처부위에 감싸고 서둘러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119를 눌렀습니다.
"네 119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손을 좀 다쳤는데 휴일이라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전화드렸어요."
침착한 척했지만 너무도 큰 충격에 목소리와 손은 덜덜 떨렸고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어느 부위를 어쩌다 다쳤냐고 물어보시는 구급대원님께 자세히 대답을 하자 "구급차를 보내줄까요?" 하시길래 그래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주소를 대고 전화를 끊은 뒤 서둘러 병원 갈 준비를 했어요. 새빨간 피로 물든 수건으로 감쌌지만 모터를 달은 듯 미친 듯이 떨리던 왼손을 부여잡고 그 와중에도 정신은 있었는지 지갑과 핸드폰, 마스크를 가방에 챙겨 1층 정문 앞에 내려가 구급차를 기다렸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구급차에서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두 분의 구급대원님들이 황급히 내려 상처를 살펴보더니 식염수와 알코올로 소독을 하기 시작했어요. 징그럽게 벌어진 상처를 보는 그분들의 눈빛이 요동치는 제 마음처럼 심상치 않아 보였어요. 곧 응급처치로 붕대를 왼손에 칭칭 능숙하게 감더니 저더러 구급차 위에 오르라고 하셨어요. 난생처음이었어요. 구급차에 누워 실려가다니...!
사실 전 구급차만 보면 트라우마에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9년 전 집에 홀로 계시던 엄마가 갑작스러운 통증에 직접 119로 전화한 뒤 바로 쓰러지셨고 집 앞에 있던 소방서에서 구급차가 1분 만에 도착해 엄마를 싣고 병원으로 달려가 큰 수술을 받으셨지만 심정지가 다섯 번이나 오고 혼수상태 끝에 쓰러지신 지 9일 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이거든요. 뇌출혈이었어요. 그토록 건강하시던 엄마를 허망하게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던 2014년 여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지옥 같던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엠뷸런스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침착해지려 심호흡을 하면서 구급차 안에 계실 환자분이 제발 무사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엄마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짧은 순간이나마 진심 담은 기도를 하게 된 게 벌써 9년 째예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구급차에 타서 죄송해요."
좁고 딱딱한 파란색 침대에 누워 입을 열었어요. 엄마처럼 중증 환자만 구급차에 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고작 손 조금 베이고 구급차에 실려가다니 민망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그런 말씀 마세요."
침대 곁에서 신분증을 받아 패드에 뭔가를 작성하던 앳된 용모의 안경을 낀 구급대원이 진지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내가 왜 구급차를 타야 하는지 자세하고 길게 설명을 하는 동안 이윽고 시내로 들어간 차는 왱왱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어요. 온몸이 더 경직되는 기분이었어요.
차에서 내리자 안경구급대원이 제 신분증으로 대신 접수를 해주셔서 잠시 기다리는데 응급실의 의료진이 제 손을 보고는 구급대원에게 물었어요.
"Suicide?"
자살을 뜻하는 영어 단어 Suicide를 듣고 어이가 없었어요. 왼손에 칭칭 감긴 붕대를 보고 의료진은 제가 자살시도를 하기 위해 손목을 그었다고 여긴 것이었지요. 아니 내가 그렇게 우울해 보이나 어이가 없어 잠시 돌아보았지만(집에서 온종일 세수도 안 하고 뒹굴거리며 완전 추하게 있다 실려오긴 했어요) 아무래도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으니 착각하기 충분한 모습이었어요. 세계 자살률 1위의 나라답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손목을 그은 사람들도 분명 응급실에 실려왔던 모양이기에 그토록 태연한 표정으로 "자살?"이라 물었던 것 같아요. 얼마나 사는 게 괴로웠으면 세상을 등질 시도를 했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아려왔어요.
붕대를 푸르고 상처에 다시 한번 소독을 한 의료진들은 잘린 부위가 생각보다 위험해 보인다며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고시절, 아버지가 시골에서 받아오신 쌀을 등에 업고 3층까지 옮기고 나서 얼마 후 오른쪽 폐에 물이 가득 차올라 거의 터지기 직전까진 간 비련의 늑막염 환자가 되어 입원했을 때 흉부 엑스레이는 수도 없이 찍어봤지만 손을 찍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찍고 이번엔 자리를 옮겨 엉덩이와 팔에 주사를 맞았어요. 양쪽 귀에 수많은 금 귀걸이가 현란하게 달린 어린 간호사선생님이 봉합할 준비를 하며 제게 침대에 누워보라고 말했어요. 초코파이색깔의 딱딱한 침대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며 수없이 뚫린 그녀의 피어싱에 매달린 금귀걸이가 몇 개인지 세어보려 노력했지만 허사였어요. 다친 손에서 피가 계속 나왔어요.
'이건 꿈이야. 응 악몽일 거야.'
되뇌며 눈을 감았어요. 내가 어쩌다 왜 이렇게 다친 걸까.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놈의 플라스틱 통과 칼은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판에 들어와 놓고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분 전으로 돌아가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거듭했어요(종일 상상과 망상을 하는 INFP). 생애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와서 상처를 꿰매기 위해 병원 침대에 누워있자니 무섭고 참담한 마음에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마침내 의사 선생님이 등장해 망상을 멈춰주시고 봉합을 하기 시작했어요. 마취를 할 때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 살짝 아프긴 했지만 참을만했어요. 실과 바늘로 하는 피부 봉합도 난생처음이었지만 예상보다 아프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처음 칼에 다친 순간에도 아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고통보단 시뻘건 피를 보고 마음이 놀란 게 더 컸어요.
의사 선생님이 바느질을 하시는 동안 유난히 겁도 많고 형체가 징그러운 건 보기조차 역겨워하는 예민한 나의 눈을 위해 눈꺼풀을 내리고 속으로 부처핸섬 할렐루야 기도만 했어요. 봉합도중 피가 너무 많이 나와 지혈대를 왼팔에 차고 출혈을 막아야 하는 일이 발생하긴 했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봉합수술이 드디어 무사히 끝났어요(제겐 몇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 봉합한 시간은 십 분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의료진들 말씀으로는 천만다행으로 인대를 다치지 않아 지지대도 받치지 않고 간단히 피부 봉합만 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어요. 안타깝게도 흉은 남을 것 같다고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아 이게 어딘가 싶었답니다.
당분간 손을 쓰지 말고 이틀 후에 드레싱 하러 동네 정형외과에 가보라는 간호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수납을 마치고서 병원을 나섰어요. 집에 오는 길에 돌아보니 고마운 분들 투성이었어요.
차분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아주신 구급대원님부터 집 앞까지 와주신 멋진 구급대원님들, 나를 자살시도녀로 오인하셨지만 친절하셨던 응급실 의사 선생님, 엑스레이를 찍어주신 선생님, 엉덩이를 찰지게 때리며 아프지 않게 주사를 놓아주신 빨간 머리 간호사 선생님, 수많은 금귀걸이를 한 금은방집 딸 아니 멋쟁이 간호사 선생님, 열심히 봉합해 주신 의사 선생님, 약을 지어주신 약사선생님, 수납, 경비 선생님 등등... 그날 만나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존경하는 분의 강의와 책에서 감명 깊게 받아들인 내용이 떠올랐어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명상과 채식 그리고 108배를 5년 간 해왔지만 영적으로 성숙되기는커녕 더 퇴행해 가는 듯한 제가 이해를 못 하던 '내 몸은 내가 아니다'라는 어렵기만 하던 이치를 손을 다치고 어렴풋이나마 깨우치게 된 것 같아 기뻤어요. 다친 몸이 내가 아니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한 청년이 깊은 계곡에서 등반을 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계곡 수십 미터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때 바위 덩어리가 굴러 내려와 오른손에 떨어진 것이다. 피범벅이 된 손을 빼내려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바위에 짓눌린 손을 빼낼 재간이 없었다. 외질 대로 외진 계곡 아래에 어떤 도움의 손길이 닿을 리도 만무했다.
'꼼짝없이 이렇게 죽게 됐구나!'
거센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먹을 거라곤 작은 빵조각 두 개와 1리터의 물이 다였다. 그것도 닷새가 지나자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 닷새 동안 그는 손을 빼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작은 휴대용 칼이 다 닳도록 바위 밑을 쪼아 보기도 하고, 죽을힘을 다해 바위를 밀어 보기도 했다. 손을 빼내지 못하면 그 자리서 꼼짝없이 죽게 될 판이었다.
"바위는 꿈쩍도 안 해, 이게 내 운명이야."
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계곡 모래벽에 무뎌진 칼로 자신의 생년월일과 죽는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러고는 가족에게 남길 유언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뜻밖의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엔 죽음의 공포에 떨었는데 모든 걸 체념하니 이상하게도 평화가 찾아왔어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니 육신에 대한 모든 집착이 떨어져 나갔다. 자신을 텅 비우자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마치 남을 바라보듯 조용히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은 누구인가?
"제 육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그게 바로 제 영혼이었어요."
한쪽 팔이 사라진다고 해서 영혼도 줄어드는가? 영혼, 즉 '진정한 나'는 육신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팔은 나'라고 바라보니, 팔이 바위에 깔려 꼼짝 못 하자 '나'도 꼼짝 못 했다. 그러나 이제 팔은 영혼을 담는 그릇의 한 작은 파편에 불과했다. 푸른 하늘, 푸른 숲,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로이 살아갈 기쁨에 비하면 팔 하나쯤 없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 제 미래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세 살배기 아들을 한 팔로 껴안은 장면도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졌지요."
'나는 팔 이상의 존재'라고 자신을 바라보자 팔을 잘라낼 용기가 샘솟아 올랐다. 그는 일단 등반로프로 바위에 짓눌린 팔을 단단히 묶어 지혈시켰다. 그러고는 무뎌질 대로 무뎌진 칼로 지혈된 부위 아래 손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이미 시퍼렇게 변한 터라 그리 아프진 않았다. 손목을 잘라내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저는 제 손목을 잘라내는 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모든 기쁨과 행복의 순간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고, 손목만 잘라내면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었어요."
그는 바위를 벗어나 몇 시간 동안 걸어가다가 구조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걸 보았다. 미국에 사는 롤스턴(Aron Ralston)씨의 실화이다.
얼마 전 나는 아침에 출근해 해외뉴스를 모니터 하다가 그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았다.
앵커가 그에게 물었다.
"만일 할 수 있다면 그때 상황을 되돌려놓고 싶지는 않은가요?"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 상황이라면 나는 똑같이 할 겁니다."
"손을 잃는 것까지도요?"
"물론이죠!"
그건 진심이었다.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육신 속에 든 게 바로 나'라는 착각 속에 일생을 살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사고를 계기로 '나는 육신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인생이 놀랍도록 행복해졌고, 사고의 폭도 경이롭도록 넓어졌다.
-김상운의 왓칭 중에서
Aron Palston - https://en.wikipedia.org/wiki/Aron_Ralston
바위에 깔린 오른손을 빼지 못해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아론은 손을 미련 없이 잘라내고 그곳을 벗어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해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강연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여전히 산을 등반하며 살고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손목 붕대로 자살시도녀로 오인받았을 때 세상을 등지려 손목을 긋고 병원에 실려왔을 사람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을 읽는 분들 중 한 분이라도 자살을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마음을 고쳐보시길 바라며 아래의 글을 옮겨 봅니다.
자살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똑같아요. 아무리 살인하지 말라고 해도 어떤 이유를 대고라도 살인이 일어나는 것처럼 아무리 말려도 자기가 자살해 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죠. 그러나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를 찾아서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죽는 데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는 데도 이유가 없고요.
그런 생각이 계속 든다면 그것은 정신 질환입니다. 정신 질환은 치료를 받아야 해요. 치료를 받았는데도 치료가 안 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자살을 하겠죠. 아무도 모르는 데서 자살을 해버리는데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남을 죽이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니까 재발 방지를 위해서 감금을 시키거나 처벌을 해야 되지만,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행위는 처벌할 대상이 없으니 재발이 없잖아요. 그래서 자살은 마치 범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면 자살도 살상 행위에 들어간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이에요. 병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를 받아도 해결이 안 된다면 결국 질문자는 그 병으로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중에서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오른손을 잃고도 그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등반가 아론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을 안고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보건 복지 상담센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393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 일어나고 우리가 그 이유들을 알 수 있도록 허락되지 않다는 것에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다. -오른손 없이 살지만 행복한 아론의 명언
추신 - 무사히 치료를 받고 열흘 후 실밥을 뽑아 상처가 아물어 생활에 불편함이 줄었어요. 한 달간 물에 닿지 않은 제 왼손을 씻을 때엔 메밀국수가 마구 뽑아져 나와 경이로웠답니다. 세어보니 일곱 바늘을 꿰맸더라구요. 시체 손가락처럼 때깔이 푸르스름하던 엄지손가락이 건강한 핑크빛으로 다시 돌아왔고, 힘이 제법 들어가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왼손에 난 작은 칼집 하나 가지고 오두방정 떨며 괴로워하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요.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난리를 친 걸까요? 오른손을 잃은 아론을 떠올리며 오늘도 겸허히 이 세상 살아보려고 합니다. 자살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제 살자구요!!
꽃보다 아름다운 그댈 위한 꽃그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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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stagram.com/nonichoi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