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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 산책

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제주도 귤꽃다락

외국인 관광객이 바글거리는 카페 방문기와 그림

by 논이

상큼한 귤꽃 향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온 동네에 퍼지고 있는

아름다운 5월의 서귀포입니다.

귤꽃 하면 생각나는 카페가 있어요.


보랏빛 수국이 한창이던 초여름 어느 날,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꾸물꾸물한 하늘아래

꽃무늬 장우산을 들고

'귤꽃다락' 카페를 찾았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운동도 할 겸 걸어가 본 귤꽃다락은

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찻집으로

낭만과 여유가 느껴지는

빈티지 자전거를 세워놓고 꾸민

외관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 그 자자한 명성대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멋들어지고

인산인해로 북적였는데

놀랍게도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습니다.

갑자기 한국에서 외국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낯설지만 재밌는 분위기였어요.

민트차를 주문하고 아무도 없는 별관으로 입장해

귀엽고 깜찍하게 꾸며진 장식들과

인테리어에 반해 눈을 반짝이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완두콩처럼 동글동글한 귀여운 잎이

수없이 달린 화초부터

밑동이 튼실한

싱그러운 뱅갈고무나무까지

초록 식물들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에 자리하고 있으니

장마로 꿉꿉했던 몸과 마음이

쾌적해지고 산뜻해졌습니다.


차를 마시며 읽으려고 가져간 책을 펼쳐 들고

한 페이지 읽어 내려가던 중

긴 생머리의 여자분이 다가와

폰을 내밀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영어로 말을 건네와

인물과 배경과 각도를 고려해

신중하게 서너 장 찍어드렸어요.


주문한 민트차가 준비되었다는 진동벨이 울려

본관으로 가 차를 가져와 제자리로 돌아오자

그새 별관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사진을 찍고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제 바로 옆 테이블엔

화려하게 풀메이크업한 중국인 여자분 둘이

웃음기 하나 없는 심각한 표정으로

여러 각도의 디저트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마치 그 모습이

혁명군 간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군사전략을 짜는 것처럼

꽤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여서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긴장을 할 정도였지만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자리도 비켜주고 배려해 준 덕에

고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혁명군 같은 여자분들 먼 외국까지 온 김에

꼭 인생사진을 건져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광객이라 갈길이 바빴는지

디저트를 군인속도로 해치운 여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뜨고

저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민트티가

목구멍에 차갑게 닿을 무렵 창밖을 바라보자

남미에서 온 걸로 보이는 한 가족이

귤나무 사이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찻주전자와 잔이 담긴 쟁반을 반납하고

정원으로 나가보니

눈길이 닿는 곳마다

청량한 7월의 밝은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귤꽃이 한창 필 무렵인 요즘 다시 가서

귤꽃향기 내음 맡으며 차 한잔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좋은 책 한 권과 함께.



귤꽃다락을 펜으로 먼저 그리고 채색을 합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아 채색하기 참 귀찮지만 결과물은 보람찬 작업이었어요!



드디어 완성. 아르쉬 세목 위에 펜, 수채. 2023-2025년 논이 그림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 보러 놀러 오세요!


인스타그램 @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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