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강아지들이 행복하길
전혀 제주도에 사는 것 같지 않던 시멘트빛 감성의 닭장형 빌딩에서 1년을 살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돌담과 귤밭에 둘러싸인 낭만적인 동네로 이사를 온 후, 반 자연인이 되어 진정한 제주생활을 즐기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컹컹 컹컹
산책을 하다 가슴이 철렁할 만큼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소리에 깜짝 놀라 쳐다보니 까만 털이 수북한 큰 개가 매여있었고 사납게 짖는 소리처럼 무섭게 생긴 개였어요. 쇠사슬로 된 목줄로 매여있었지만 저만 보면 미친 듯이 짖는 그 개가 무서워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괜히 쫄아서 살금살금 걸어 다니고 흑곰이란 별명도 지어줬지만 한편으론 늘 매여있는 개가 불쌍해졌어요. 수많은 배설물이 시멘트 바닥 위에 항상 굴러다니는 걸 보니 산책을 전혀 못하는 형편 같았고 그래서 볼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 날 보니 흑곰 곁에 네 마리의 아기강아지들이 꼬물거리며 노는 게 보였어요. 그 무시무시한 흑곰이 알고 보니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엄마였던 거예요.
저런 환경에서 애 낳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짠해지고 출산과 육아에 지쳤을 까만 개를 보는 눈이 더 애처로워졌어요. 짐승에게 못할 짓을 하는 인간인 게 미안하고 새로 태어난 아기들의 처지도 엄마 같을 거라 생각하니 착잡해졌지만 천진난만하게 노는 귀여운 강아지들을 가까이에서 보려 다가가자 엄마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어요. 몸을 풀고 육아하느라 기운이 없어서인지 예전만큼 짖지는 않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조심조심 접근하니 오동통하고 솜사탕 같은 아기들이 제게 달려들었어요.
두 마리는 까맣고 두 마리는 하얀걸 보니 아빠는 백구였던 모양이에요. 귀여운 강아지들과 잠시 놀다 발걸음을 옮기자 강아지들이 쫓아와 다시 데려다 주기를 반복하고 간신히 발걸음을 뗐어요.
며칠 후 그 집 앞을 지나다 강아지들이 못 나가게 막으려는 무릎높이의 얕은 담장이 마당에 둘러쳐진 걸 발견했어요. 그 앞엔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담 밖에 홀로 나와 낑낑대며 엄마와 형제들이 있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황급히 다가가 강아지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담장 안으로 넣자 엄마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고마워하는 눈빛처럼 보인건 기분 탓일까요. 흑곰이 아기를 되찾은 기념으로 갖고 다니던 고양이 과자를 같이 먹으라고 뿌려주자 다들 난리가 나서 신나게 먹었어요.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흑곰은 저를 알아보는지 절대 짖지 않았고 꼬리를 흔들기까지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보고 어디에 있든 건강하길 바라는 기도를 짧게나마 하며 그 집 앞을 지나쳤어요. 너도 고생했다 흑곰.
6개월이 조금 넘었을 때 새로운 아기 강아지들이 다시 태어난 걸 보고 놀랐어요. 그 후로 일 년에 두세 번을 출산하는 가여운 흑곰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넘어서 개주인에 대한 분노마저 느껴졌어요. 규모만 작을 뿐이지 개공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까요. 강아지들을 분명 돈 받고 어딘가로 넘기는 게 틀림없었어요. 개로 태어나 산책 한번 못하고 똥이 널브러진 시멘트바닥에 매여 힘겨운 출산을 거듭하는 어미개도 불쌍하고 사라진 강아지들도 딱하고..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그 집 바로 옆에는 짙은 분홍색으로 곱게 페인트칠된, 정원이 잘 정돈된 집이 자리하고 있어요. 겨우 몇 걸음 떨어져 있을 뿐인데 이 인디고 핑크집은 늘 평화로워 보이기만 해요. 투박한 돌담 사이로 머리를 내민 용월이 귀엽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겨울나무마저도 평온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집이에요. 여름엔 노란빛 화사한 한들한들 금계국과 핫핑크가 눈부신 맨드라미가 피어있는 이 예쁜 분홍집 마당에 사라진 강아지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상상을 하며 그림으로 옮겨봤어요. 그동안 제가 본 수십 마리가 넘을 강아지들을 그리긴 너무 게을러 세 마리만 그려봅니다. 미안하다 얘들아! 그리지 못한 흑곰한테도 사죄의 마음을 담아 그렸습니다.
더 많은 그림은 논이의 인스타그램에서 구경하세요! 감사합니다.
@nonichoi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