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그림 같은 집 그리기
제주도에서 가장 애정하던 카페 식물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맞은편에 자리한 어느 정갈한 집이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한라산과는 가까운 동네에 있는 그 집은 볼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늘 접하던 곳이에요. 산과 오름이 많은 제주도 특성상 오르막길과 언덕이 즐비해 헉헉거리고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걸어 올라오다 보면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들어선 이 집과 만나게 됩니다.
코딱지만 한 간판에 듀송 플레이스라고 작게 쓰인 걸 보면 가정집은 분명 아닌데 뭘 하는 공간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주인장과 마주친 적도 없지만 창문 안으로 은은하게 켜져 내부를 밝히는 감귤빛조명이 반짝이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뭔가를 벌이고 있는 공간임은 틀림없습니다.
구멍 숭숭 난 현무암을 투박하게 쌓아 올린 다른 집에 비해 마치 완벽주의자가 아귀 맞춰 쌓은 듯 정교한 돌담부터 깔끔한 외관의 건물과 잘 관리된 화초들, 수호신처럼 이 집을 지키는 듯 양쪽 끝에 선 두 개의 거대한 연탄색 바위가 어우러져 정갈하면서 우아한 분위기가 연출돼 소박한 집들로 이뤄진 이 동네에서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정성도 정성이지만 돈 좀 바르신 모양입니다.
특히 여름엔 초록 식물들이 조화를 이뤄 더욱 사랑스러운 자태를 뽐냅니다. 돌담 안쪽 작은 마당 왼쪽에 여름 내내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로즈마리 화분들과 키가 큰 이름 모를 나무가 심어진 화분들이 빼곡한데 겨울엔 연약한 이들을 모두 실내로 들여놓는 주인장의 식물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재작년 늦겨울, 누군가가 먹다 남은 귤 반쪽을 저 집 돌담 위에 올려놓고 간 걸 보고 작은 낭만을 느끼며 사진을 찍어둔 적이 있어요. 어지간히 맛이 없었던 걸까요? 차마 다 못 먹어치우고 돌담 위에 덩그러니 버려진 귤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났어요. 비록 귤은 슬프게도 버림받았지만 어떤 인간은 버려진 귤과 돌담 그리고 예쁜 집의 묘한 어울림에 눈 호강 든든히 하고 작고 소박한 것들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제주도에 감사하며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어느 날 이 집 앞을 지날 때 식물에 물 주고 있는 분을 뵙고 뭐 하는 곳이냐 여쭤보니 '조경회사'라고 하셨어요. 드디어 의문이 풀려 기뻤던 저는 제주도에 잠시 살다 마주친 이 작고 사랑스러운 집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밑그림과 펜 드로잉은 제주도에 있을 때 그렸는데 채색은 제주도를 떠나 지금 머물고 있는 발리 우붓에서 마쳤습니다.
실물보다 약간 몽환적인 느낌으로 그려진 제주도 서귀포 듀송 플레이스입니다.
아르쉬 세목(수채화지) 위에 홀베인 수채물감, 피그마 마이크론 펜(005, 01)으로 그렸어요.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그램 @nonichoiart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