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의 나라 프랑스인들의 음식사랑
마리안느가 처음 내게 말을 걸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엄마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허망한 장례를 마친 뒤 큰 충격으로 매일 밤 악몽과 가위에 눌리고 잠을 설치다 도저히 무서워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영국에 급히 돌아와 힘겹게 시차적응을 하고 있는데 숙소 부엌에서 만난 챤다가 어머니는 어떠시냐며 안부를 물어왔다. 엄마가 쓰러지셔서 내가 한국에 가는 걸 알고 있던 그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결국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그는 I am so sorry 하며 나를 위로해 줬다.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 되기에 밥을 먹으려고 요리를 하고(소중한 가족이 이 세상에 없는데 눈치도 없이 배가 고파오는 인간인 게 싫었지만)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처음 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 간 사이에 체크인을 한 모양이었다. 뿔테안경 너머로 그녀의 예쁜 눈이 반짝였다. 유난히 빛이 나고 총명해 보이는 얼굴이 인상 깊었다. 그때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머니 돌아가셔서 정말 유감이야. 사실 아까 너와 챤다의 대화를 들었어. 슬픈 일에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끼어들게 된 걸 용서해 줘."
진심 어린 위로가 담긴 목소리와 표정은 따스했다. 인사도 안 해본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가슴 한쪽과 코끝이 동시에 찡해지며 고마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너무 고마워서 엄마를 잃은 슬픔이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었다.
통성명을 하고 그녀가 프랑스에서 오게 된 공무원이란 걸 알게 됐다. 마리안느는 알면 알수록 진실한 사람이었다. 솔직하고 직선적인 프랑스인 특유의 성향에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보태 진국이었고, 꾸밈없는 태도와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편안함을 주어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모두들 그녀를 사랑했다. 제시카 알바를 닮은 외모도 예뻤지만 내면은 더 아름다웠다.
예쁘고 현명한 20대 후반의 여자가 싱글일리 없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벨기에 사람으로 노숙인들을 위해 음식과 따뜻한 음료를 밤마다 공급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된 약자를 위해 추운 밤마다 거리에서 애쓰는 직업이라니...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나는 그해 말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길거리에서 누워있던 노숙인이 인사를 하며 말을 걸면 늘 대답을 성심성의껏 하는 걸 보고 반했다. 모두들 외면하고 지나치는 노숙인에게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대답해 주는 모습이 새로웠고 감동적이었다. 왜 항상 노숙자들과 대화를 하냐고 묻자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관심이 필요할 거야."
라고 말하던 마음 따뜻한 남자. 돈으로 하는 보시도 좋지만 마음에서 우러난 보시는 나와 더불어 남에게도 이로운 최고의 보시라고 한다.
무주상 보시 - 집착 없이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252
엄마 49제 날에 처음으로 만나 운명이라 여기고 정말 좋아해 결혼이야기까지 나왔던 남자였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헤어지고 말았고 그 이후 그 사람만큼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그만큼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헤어졌나 보다. 끼리끼리 부창부수라고 하지 않던가. 그가 따뜻하고 좋은 여자를 만나 행복하길 빈다.
깊어가는 겨울저녁, 마리안느를 작업실로 초대해 함께 차를 마신적이 있다. 그녀는 수채화로 그린 장미 그림을 눈여겨보며 가격을 묻더니 내게 작은 그림 한 점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며 가격을 제시했다. 프랑스에 있는 친구 도리안느(마리안느와 이름도 비슷)에게 보낼 생일선물이라며 친구가 좋아하는 푸른 보랏빛의 장미를 그려달라고 해 공들여 그리고 며칠 뒤 완성해 액자에 넣어주었다. 마리안느는 고마워하며 약속했던 그림값을 봉투에 넣어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봉투를 열어본 뒤 놀라고 말았다. 원래 이야기된 가격에 20파운드를 더 넣어 준 것이다. 그림값을 깎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값을 더 쳐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인심 후하게도 웃돈을 얹어서 그림을 사준 천사 같은 마리안느에게 보답하려고 주말 저녁 집에 초대해 한국음식을 대접했다. 그때 작업실 친구 안나와 안나의 남자 친구, 그리고 프랑스 친구 루씨으, 우리 집 플랫메이트 뱅상도 함께 불러 다 같이 부엌에서 내가 마련한 K푸드를 친구들이 준비한 알코올과 함께 나눠먹으며 홈파티를 하는데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마리안느에게 잡채를 먼저 주고 김치도 함께 먹어보라며 접시를 그녀 쪽으로 들이밀었다. 잡채는 재료를 사다 공들여 손수 만들었고 배추김치는 그 당시 영국에서 상당히 비쌌던 비비고 김치를 한인마트에서 공수해 왔었다. 마리안느는 잡채와 김치를 차례로 먹어보더니 얼굴 전체에 화색이 돌며
"You're spoiling me!"
라고 하며 굉장히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누가 식도락의 나라 프랑스인 아니랄까 봐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spoil의 기본 뜻은 망치다 이지만 '잘해준다, 행복하게 해 준다'라는 의미로 쓸 수 있다.
이건 무슨 음식이냐며 이름을 묻고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다며 김치를 계속 집어먹는 마리안느가 귀여웠다. 문화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 것을 좋아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기분 좋다.
참기름을 둘러 만들어 살짝 느끼할 수 있는 잡채를 한입 먹고 바로 김치를 먹어주면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시원하고 개운함이 입안에 도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식욕이 한층 더 샘솟아 돼지가 되기 쉽다. 외국에서 십 년을 넘게 살다 온 내 경험에 의하면 대체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은 김치를 처음 먹고 신선한 충격을 받거나 그 맛에 반해서 계속 찾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유달리 고집세고 자기애 강한 성향을 지닌 외국사람 중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일단 첫인상인 냄새부터가 그들의 유별난 성미를 건드리고 범상치 않은 자극적인 맛에 불만을 터뜨리거나 불쾌한 음식이라 낙인찍고 다시는 먹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관찰에 의한 의견이니 재미로 봐주시길 :)
갖은 채소를 얇게 채 썰어 만든 부침개도 김치와 찰떡궁합이었다. 김밥 만드는 법도 무료 원데이 클래스로 선보여줬더니 다들 대환장을 하며 김밥 한번 말아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얘네들을 김밥천국에 데려가 무임금 노동착취를 할 사장님이 생길까 봐 두려울 정도였다.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나라 못지않게 프랑스도 요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식도락의 나라이다. 그런 프랑스 사람들이 K푸드에 열광하니 묘하게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음식을 먹어본 외국인이 드물었다. 이젠 너도나도 한국음식과 문화에 호들갑인 시대에 접어들어 신기하기만 하다.
16년 전, 프랑스 사람들의 음식 사랑을 호주 멜번에서 보고 느낀 적이 있다. 처음 멜버른에 도착해 머물던 유스호스텔에서 몹시 진지하고 신중한 자세로 요리를 하는 두 프랑스 남자를 부엌에서 봤는데 어찌나 열정적으로 식재료들을 다루는지 그들의 두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 빔과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요리가 다 익을 지경이었다. 끼니를 대충 때우는 젊은 사람들이 가득한 유스호스텔에서 그런 식으로 요리를 하는 여행자들은 처음 봤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내가 태국 친구들과 식당에 앉아서 밥 먹고 수다 떠는 동안 그들의 요리삼매경은 지칠 줄 몰랐다.
"오 저기 좀 봐. 저 두 남자들 아직도 요리한다."
실컷 수다를 떨다 뚫린 부엌 창을 바라봤을 때 그들이 여전히 요리하고 있는 모습에 태국 여자애들 역시 놀라 혀를 내둘렀다.
그 두 남자가 쉼 없이 요리를 한 시간은 무려 두 시간이 넘었고 그 귀하고 정성 가득한 프랑스 요리를 대접받은 행운의 두 여인은 앉아서 그들의 요리를 그저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호사를 누렸다. 인생을 걸고 요리경연대회에 나온 요리사처럼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음식을 만들던 프랑스 남자들의 로맨스가 부디 성공적이었기를! 그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로맨틱한 데이트를 할 자격이 충분했다고 믿는다.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 없던 여행자들의 남루한 부엌에서 식재료들을 정성껏 다루며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낸 남자들은 뭘 해도 될 놈들 같았다. 멋진 놈들!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그램으로 오셔서 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