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피를 나눈 채식화가 이야기
"죄송하지만 선생님은 헌혈하실 수 없습니다."
작년 12월 태어나 처음으로 큰 마음먹고 피를 나누기 위해 들른 서귀포 헌혈의 집에서 나는 헌혈을 거부당했다. 전자문진을 하고 몸무게를 잰 뒤 네 번째 손가락 끝에 침을 찔러 피검사까지 마쳤을 때 차트를 살펴보던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다른 선생님을 불러와 심각한 눈빛을 주고받은 후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영국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은 야곱병(광우병) 의심으로 헌혈을 할 수 없게 만들어진 옛날 법 때문에 헌혈 불가라고. 선생님은 내게 다행히 1월부터 법이 개정되니 출입국 기록증명서를 떼어오면 헌혈이 가능하다고 덧붙이시며 미안한 표정으로 푸른색 캔에 담긴 이온음료를 건네주셨다.
영국에 6년 있던 과거로 인해 헌혈할 수 없다니...
흥! 그럼 손흥민도 헌혈 못하네?
나 같은 겁쟁이가 좋은 일 좀 하려고 모처럼 왔더니 이런 변수가!
아쉬워 별별 생각을 다하며 허탈한 마음으로 귀가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가 왔다. 2025년 3월 드디어 법이 개정되어 영국에 있던 사람도 그냥 가서 헌혈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출입국 기록 증명서를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쾌감을 느끼는 게으른 인간이 그 문자를 받고 바로 헌혈의 집으로 달려갈 리 없었다. 한 달을 밍기적거리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던 4월 초, 빨간 트렌치코트를 입고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헌혈을 하려는 결의를 다지고자 빨간 옷을 입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생에 첫 헌혈을 혼자서나마 작고 강렬하게 기념하는 옷차림이었다.
전자문진을 하고 진료실에 입장하자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몸무게 몇 킬로 세요?"
"45킬로 조금 넘어요."
그러자 미심쩍은 얼굴로 체중계에 오르라 하신다. 옷도 벗지 않고 신발을 신은채 몸무게를 재자 47.1이 나왔고 선생님은 45kg 이상이 되어야만 헌혈할 수 있는데 다행이라며 웃으셨다. 또 헌혈 못하고 쫓겨날까 봐 쫄았던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다. 요즘 하루 두 끼만 먹는 채식주의자로 살아서인지 체중이 줄었다.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통통한 잡식성 곰이었던 내가 풀만 뜯는 채식주의자로 7년째 살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바늘을 찔러 피를 뽑아서만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기부인 헌혈을 하러 온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엄살도 심하고 극도로 예민한 내가 헌혈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돈으로 하는 보시(기부)도 좋지만 몸과 마음으로 하는 보시가 더 뜻깊고 값지다는 가르침에 우선 마음이 열렸고, 배우 최강희 씨가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질 때마다 헌혈을 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에 뭔가를 맞은 것 같았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유명한 분도 피를 뽑아 남을 돕는데 내가 뭐라고 피 한 방울 안 뽑으려 몸을 사렸는지 부끄러워졌다. 한 생각 바꾸니 마음이 크게 열리기 시작했다. 내 피 한 바가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값지고 근사한 일인가! 게다가 식품첨가물 범벅인 가공식품과 기름도 멀리하는 채식주의자가 된 후 내 몸에 흐르는 피는 식물처럼 맑고 불필요한 지방이 거의 없어 내 피를 받는 분께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었고 피검사 결과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혈색소수치가 너무 좋으시네요! 얼굴이 하얘서 빈혈이 있으실 줄 알았는데."
피검사를 하고 선생님께 극찬을 들어 입꼬리가 헌혈의 집 지붕을 뚫고 올라갈 기세였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서는 빈혈수치가 안 좋아 헌혈을 못하신다고 덧붙이셨다. 사실 나도 빈혈이라면 이골이 나있었다. 배고프면 아무 음식이나 입에 넣고 과식과 폭식을 일삼으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시절,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고 핑 돌며 마치 우주에 홀로 떠있는 것처럼 어지러움을 느낀 빈혈증상이 종종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큰마음먹고 시작한 조깅을 일주일 하고 운동성 빈혈로 쓰러져 관둔 적도 있다. 그 후 유산소 전신운동인 108배를 매일 하고 올바른 식습관과 명상으로 건강관리를 하고부터 빈혈과 완전히 이별했다. 7년 전 육고기를 끊고 유제품, 생선, 계란까지 먹는 페스코테리안이었을 때도 가끔씩 빈혈이 도져 홀로 우주를 떠돌곤 했지만 3년 전부터 비건이 되자 신기하게도 빈혈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채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통곡물(특히 현미), 해조류, 견과류, 과일 등의 식물성식품을 매일 골고루 섭취한 결과다. 그 좋아하던 과자, 아이스크림, 라면 같은 가공식품과 백설탕, 백미, 밀가루음식도 독하게 끊었기 때문에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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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혈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면역력이 약해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걸리던 감기는 일 년에 한두 번 걸리고, 허리, 발목, 무릎에 상주하던 지긋지긋한 관절염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가공식품을 거의 손절하자 치통 또한 자취를 감춰 민간요법으로 치통에 최고인 말려놓은 가지꼭지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늘 선잠을 자고 심심하면 가위눌리던 내가 숙면을 취하게 된 것도 거짓말 같다. 피부도 너무 좋아져 여드름으로 개고생 할 때 채식했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채식 덕분인지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나이를 열다섯 살은 어리게 보기도 했다. 비건 여배우 임수정의 미친 동안 미모도 채식 덕분이라고 본다.
밤마다 긁어대던 알레르기 증세가 사라짐은 물론이고(계란, 유제품, 생선만 먹으면 긁느라 정신없었는데 해방됨), 고1 때 앓았던 늑막염 후유증으로 피곤하면 폐 부근이 결리고 불편했던 증세가 없어져 그저 놀랍다. 배달음식만 먹으면 은근히 아파오던 왼쪽 아랫배도 멀쩡해졌고 생리통과도 완전히 결별했다. 수전증도 많이 좋아져서 놀라울 뿐이다. 젓가락만 쥐면 모터 달린 듯 덜덜 떨리던 손가락이 잠잠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마그네슘부족으로 경련이 일던 눈 밑도 비건이 되고부터는 떨림이 사라졌다. 가벼운 통증을 종종 느끼던 심장도 채식을 하면서부터 멀쩡해졌다.
내게도 비건을 미쳤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이 미친 짓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만 든다. 코로나로 귀국 후 도서관에서 채식 관련 서적을 쌓아두고 읽은 뒤 엄격한 채식을 하는 비건이 되고 만 3년을 실천한 뒤 내 몸에 상주하던 잔병들이 사라짐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건강도 지키고, 위기의 지구를 위해 환경보호에 미약하게나마 동참하고 있고, 학대받으며 자라다 죽임을 당한 동물들의 사체를 먹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도 사라져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다. 그리고 피가 필요한 분들과 이 맑은 피를 나누는 뜻깊은 일에 동참하게 된 영광을 누려 한없이 기쁘다. 평생 그림 그리고 봉사하며 살아온 나는 효용가치가 없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의 헌혈로 자아존중감이 급격히 올라가고 나도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주를 뚫을 만큼 행복해졌다.
저출생 등 영향으로 헌혈 참여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고 호롱불을 켠 듯 마음도 환해지는 헌혈로 세상을 밝히는 건 어떨까?
다음 주에 다시 헌혈을 하러 가려고 '레드커넥트' 앱을 통해 예약을 해놨다. 빨간 옷을 입고 피를 뽑으며 웃음 짓는 행복한 나를 만나러 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저출생 등 영향으로 헌혈 참여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의 2024년 혈액사업 통계에 따르면 헌혈에 한 차례 이상 참여한 '실인원'은 지난 2022년 132만 7천여 명에서 2023년 130만 명, 지난해 126만 4천여 명으로 2년 연속 줄었습니다. <연합뉴스>
아래부터 채식화가 논이가 그린 피색깔 닮은 붉은 그림입니다. 헌혈과 관련된 그림으로 봐주세요 빨간색이니까 ㅎㅎ
모두 종이 위에 수채. 논이 그림입니다.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그램 @nonichoiart 에서 만나보세요!
추신 - 이 글은 대한 적십자에서 개최한 헌혈공모전 2025년에 출품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