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피트', '디카프리오', '엘리자베스' 검도장 아이들이 지었다는 길고 긴 영어 이름의 고양이들.
제주도로 이사 오고 나서 산책길에 친해진 턱시도 고양이가 있습니다. 알고 보니 똑같이 생긴 턱시도 고양이한 마리가 더 존재하고 노란 치즈냥도 그들과 늘 함께 하는 걸 보게 되었어요. 이 삼총사는 검도학원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항상 상주중이에요. 마음씨 고운 원장님께서 사료를 가득 채워두시는 깨끗한 사료통과 물그릇, 그리고 캣닢까지 있어 길고양이가 머물기에 좋은 환경이기에 이 세 마리의 고양이들은 마치 삼총사가 프랑스 국왕을 지키듯 불철주야 이 검도장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둘이서만 식빵 굽고 있구나. 한 마리는 어디 갔니?
몇 주전부터 턱시도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아 잠깐 마실 나갔나 했지만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올 때마다 보이질 않았어요. 두 마리의 냥이들도 뭔가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얌전하고 왠지 쓸쓸해 보인달까.. 늘 제게 와서 발라당 눕던 턱시도가 얌전히 앉아만 있는 걸 보니 이상했어요.
또 둘 뿐이구나.. 삼총사 뭔 일이래
'이상하다. 왜 안보이지? 제발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 아니길..'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불길한 느낌은 이어졌어요.
그러다 며칠 전 다시 찾은 삼총사의 아지트에서 웬 어린이가 턱시도를 열심히 쓰다듬고 있기에 이때다 싶어 한 마리는 어디 있는지 물어보자
"죽었어요! 며칠 전에 죽었대요."라고 하네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턱시도 디카프리오의 비보로 마음속에 큰 파도가 일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계속 쓸쓸해 보였던 이유가.. 이들 나름대로 애도의 기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아픈 냥이들을 달래주고 저도 애도에 동참하고자 매일 일부러 먼길 돌아 들러서 아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해주고 있어요. 예민한 치즈냥 브래드 피트는 내버려 두고 턱시도 엘리자베스를 열심히 안마합니다.
"혈육을 잃어서 많이 슬프겠구나.. 괜찮아질 거야. 나중에 우리 다 같이 고양이 별에서 만나면 돼."
"야아 옹~"
대답하는 고양이가 슬퍼 보이지만 귀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어느새 노란 치즈냥은 밥을 먹으러 사료통으로 갑니다. 그래 산 고양이는 살아야지.
이별은 시간이 약이라지만 애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던 저는 나름 거금 들여 마트에서 연어 맛 고양이 간식을 사 왔습니다.
영국에서영혼의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던 고양이 밤부, 겐조가 환장을 하며 먹던 Dreamies의 짝퉁인 Temptations는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연어 냄새가 일품인(물론 고양이에게) 작은 쿠키입니다. 이 작은 과자로 평생의 벗을 잃은 슬픔이 잊혀질순 없지만 적어도 입을 벌려 씹어먹는 순간만큼만 이라도 비통함을 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매일 과자를 들고 잠시나마 보러 오는 저의 정성이 조금은 통했는지 턱시도냥 엘리자베스가 웬일인지 제 앞에서 발라당을 합니다. 과자를 먹고는 제 장딴지에 온 몸을 비비며 지나갑니다. 오옷 이 신호는!!!
검도장 원장님을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원장님은 슬픈 눈빛으로 죽은 턱시도냥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애가 쌩쌩하지 않고 골골 대더니 결국 그다음 날 아침에 쓰러져 죽어 있었고 원장님이 시체를 수습해 밭에 잘 묻어주셨다고 합니다. 덧붙이시기를 항상 꼭 붙어 다니는 저 세 마리는 원래 식당 할머니가 돌보던 길냥이들이었는데 작년에 할머니가 이사를 가시면서 애들만 남아 그때 마침 검도장을 오픈 한 원장님이 배급 바통터치를 하셨다고 해요.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데 차마 이 아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더라고요."
고양이 사료만 주는 줄 알았는데 고기 파우치를 매일 가져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인정 많은 검도장 원장님께 정말 좋은 일 하신다고 복 받으실 거라고 말씀드리자 수줍게 웃으십니다. 1년 전 오픈한 이 검도장에 더 많은 원생들이 몰려와 학원이 북적북적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숨은 고양이 찾기
유리호프 꽃나무와 철쭉꽃나무 아래 잠든 아가들
벚나무 아래 사자
육체가 없어졌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마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영원히 남는다. -스피노자
완전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인류가 이미 경험하였고, 지금도 계속 경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모든 인류가 경험하게 될 하나의 변화일 따름이다. -톨스토이
벚나무 아래 길냥이 엘리자베스. 외로워 말라 옹. 고양이 별에서 다시 만나면 된다냥
고양이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그리기 시작한 무지개 장미.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고양이별이 나오는데 그 고양이별은 무지개 색으로 반짝거릴 것 같아요.
영국에서 2년에 걸쳐 그린 무지개장미와 꽃나비들. 캔버스 위에 아크릴. 노니 그림 2018-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