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만난 수녀님

by 꽃마리

뮌헨 버스터미널에서 텀블러에 따뜻한 디카페인 커피를 담아 울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울름, 슈투트가르트, 튀빙겐, 오펜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국경을 넘은 후 스트라스부르에 들러 종점인 파리까지 가는 버스다. 울름에 이어 나의 다음 목적지는 스트라스부르와 파리다. 이 버스를 계속 타고 있으면 두 곳 모두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울름에서 한 번, 스트라스부르에서 한 번 멈췄다가 파리로 간다.


내 옆자리인 창가석에 수녀님이 먼저 앉아 계셨다. 표 검사 줄에서 본 수녀님 두 분 중 한 분이었다.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무릎에 배낭과 손가방을 올려놓았다. 수녀님이 자리마다 비치돼 있는 와이파이 안내문을 가리키며 내게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다. 스페인어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와이파이를 따로 연결하지 않아도 휴대폰을 쓸 수 있기에 굳이 연결할 생각이 없던 참이었다.


안내문을 보면서 먼저 내 것으로 시도해 보는데 잘 연결되지 않았다. 혼잣말로 '오, 오, 됐다.' 하면 다시 꺼졌다. 반복해 봐도 같은 결과였다. 내 휴대폰이 시원찮은가 싶어 수녀님 휴대폰으로도 시도해 보았다. 수녀님이 휴대폰을 잡고 계시고, 내가 몸을 수녀님 쪽으로 돌려, 알지 못하는 언어로 설정돼 있는 수녀님 휴대폰 화면을 감으로 '터치'해 가면서 연결을 시도했으나, 결국 해내지 못했다. "안되는 모양이에요."라고 말하곤, 수녀님에게 향해 있던 몸을 완전히 내 자리로 돌렸다.


수녀님은 버스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휴대폰을 두 손으로 잡고 화면을 바라보고 계셨다. 몸을 추스르고 나서 문득 버스 천장을 바라보니 하늘을 향해 직사각형 유리창이 나 있었다. 유리창에 나타나는 하늘의 색감이 다채로웠다. 새파랗다가 잿빛이었다가 했다.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그 바로 아래로 천으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작은 장식물이 팔랑팔랑 흔들렸다.


버스가 다음 정차 도시인 울름에 들어설 무렵, 창밖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휴대폰을 두 손에 꼭 잡은 채 배 위에 올려 두곤 조용히 눈을 감고 계신 수녀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인사하고 내리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옆자리의 내가 보이지 않으면 조금 서운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울름에서 버스가 멈추자 눈을 뜨셔서 다행히도 짧은 작별 인사를 전하고 내릴 수 있었다. 수녀님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내 인사를 받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연히 스치듯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이 떠오르곤 한다. 얼굴은 아스라하지만, 나눴던 대화의 내용이나 그때의 분위기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언젠가 파리 지하철 안에서 나눴던 대화는 유독 그렇다. 옆자리의 남성이 내가 읽던 책에 눈길을 주며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건 성경이지요? 신의 말씀이지요?"

모르는 사람의 엉뚱한 발언에 "아, 네." 하고 그냥 넘기는 게 더 좋을진 모르지만, 왠지 그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신의 말씀'으로 오인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아니에요. 이건 한국어로 쓰인 책이고 성경이 아니에요."

그가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 그런데 신의 말씀 같은데요."

"아니에요. 한국어로 쓰인 에세이예요."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살짝 붉었고, 눈은 술기운 때문인지 그윽해 보였다. 이후 두어 번 더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각자 할 말을 하는 나직한 대화였다. 내릴 때가 되어 그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참고로 밝히자면,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장일호의 『슬픔의 방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