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서는 자리

by 꽃마리

뮌헨에서 탄 버스가 울름 외곽의 약속된 장소에 나를 내려주었다. 수녀님을 비롯해 대부분의 승객은 계속 타고 있고, 나를 포함한 소수의 승객만 울름에서 하차했다. 따로 실어 두었던 캐리어를 꺼내 버스에서 물러섰다. 내가 타고 온 버스에 새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슈투트가르트나 스트라스부르 등에서 내릴 것이고, 가장 멀리는 종점인 파리까지 갈 터였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 파리처럼 비교적 규모가 큰 도시는 시외나 국외로 가는 버스를 위한 전용 터미널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곳은 늘 여러 버스가 드나들고 대기하고 있어 쉽게 터미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형적인 버스터미널과는 사뭇 다른 곳에서 버스가 서는 도시도 많았다. 이런 경우 주로 도시 외곽의 주차장이나 기차역 근처의 약속된 지점에서 승하차가 이루어졌다. 울름 또한 그랬다.


유럽에서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 버스를 타고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간은 시어머니,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여행했기 때문에 버스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기차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청소년이 된 첫째 아이와 둘이 여행할 때 처음으로, 룩셈부르크에서 프랑스 랭스로 갈 때 또 랭스에서 파리로 갈 때 버스를 이용해 보았다. 룩셈부르크 이전의 도시는 프랑크푸르트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룩셈부르크까지는 기차를 타고 갔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머문 숙소와 중앙역 사이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오며 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을 보게 되었다. 커다란 이층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하루는 버스가 승객들을 싣고 터미널을 막 빠져나와 차도로 천천히 진입한 뒤 앞으로 나아가려는 찰나에, 한 남성이 헐레벌떡 달려와 기사를 향해 태워 달라고 손짓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은 곧 다시 오는 시내버스도 아니고 놓치면 금전적으로 손실이 크므로 기사가 자신의 사정을 어련히 알아서 이해해 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문이 곧 열릴 것으로 확신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사는 높은 운전석에서 문밖의 사람 쪽으로 고개를 짧게 가로저었다. 그러곤 곧바로 앞의 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절대 문을 열어 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단호한 최후통첩이었다. 남성은 자신을 두고 멀어져 가는 버스를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한 후에는 승객을 태우지 않는 것이 기사의 의무였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버스터미널을 보았기 때문에 룩셈부르크의 버스터미널 역시 그런 모습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시내에 있지 않고 도시 외곽에 있는 것 같았다. 프랑크푸르트의 그 남성처럼 만에 하나 늦으면 낭패이므로 모든 걸 명확히 해 두는 게 낫다는 생각에 전날 저녁 시간에 답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룩셈부르크는 대중교통이 무료여서 더 쉽게 답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 탑승 지점인 'P+R 부이용(P+R Bouillon)'을 찾아 나섰다. 버스는 주차장 시설이 즐비한 도시 외곽의 종점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근처에 버스를 세울 만한 공터가 있는 것은 확인했는데, 표지판이나 별다른 안내문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결국, 이곳에 내일 아침이면 우리를 태우고 국경을 넘을 버스가 도착할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P+R'은 '주차(Parking)' 후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는(Ride)' 곳을 일컫는 말이었다. 'P+R' 뒤에 붙은 '부이용'은 지도상 근처에 부이용 거리(Rue de Bouillon)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 아닌가 짐작된다. 사람들은 차를 무료로 여기에 주차해 두고, 무료 시내버스를 타고 직장에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돌아갈 때도 대중교통으로 여기까지 와서, 주차해 둔 차를 타고 간다.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대기 오염과 교통 혼잡이 완화될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굳이 도심으로 차를 끌고 가 비싼 주차비를 부담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다. 차가 줄어든 도심의 공간은 훨씬 쾌적한 공원이나 문화 시설로 탈바꿈할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꽤 괜찮은 도시 정책 같았다. 프랑스의 리옹이나 스트라스부르 등에서도 시행 중인 정책인데, 다만 주차가 전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 룩셈부르크와 다르다.


다음 날 아침, 숙소 근처 정류장에 1분의 오차도 없이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P+R 부이용'으로 향했다. 우리에겐 약간의 비장함마저 있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우리를 실망시킬 일은 애초에 계획돼 있지 않았다. 전날 저녁에는 휑하기만 했던 공터에 연두색 이층 버스가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은 꼭 지키는 성실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마치 긴장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 검사를 받고 짐을 싣고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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