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아이의 기숙사로 걸어가는 길에 과일과 채소를 파는 노점을 지나쳤다. 주변에 치즈 가게, 정육점, 빵집, 반찬 가게가 있고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도 있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기에 좋은 동네였다. 기숙사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밝고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내가 그 주변을 지날 때 학부모 몇 명이 아이들을 학교 앞에 데려다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입구에 '자유, 평등, 박애'라고 적혀 있었다.
기숙사 앞에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열흘 전에 파리에 도착해 기숙사에 들어가고, 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도 다녀왔다. 일주일간 남편이 파리에 머물면서 이불이며 기숙사에서 쓸 물건들을 아이와 함께 사러 다녔다.
이전 사람이 방을 깨끗하게 쓰지 않아 방 청소에만 며칠이 걸렸다고 들었다. 자기 손으로 깨끗이 청소하고 나니 그런대로 방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 기숙사는 아이가 무수히 많은 곳에 지원한 끝에 구한 곳이다. 기숙사를 끝내 구하지 못하면 이제는 공동 주거 형태의 숙소를 알아봐야 한다고 아이가 내게 말했을 즈음, 이 기숙사에서 온라인 면접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 역사를 배우면서 역사와 관련한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도 좋아했고, 더 나아가 책을 찾아 읽고, 유튜브를 보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역사에 깊이 다가가는 과정을 즐겼다. 서울과 지방 도시에 있는 국립 박물관에 가길 좋아하고, 여행지 근처에 유적지가 있으면 들르길 바랐다. 아이가 역사에 흥미를 가지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역사가 나에게도 매력적인 분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아이가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 프랑스어로 숫자를 읊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아이가 나와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아이와 프랑스어가 무슨 관계인가 싶어 의아했다. 단어 몇 개와 짧은 문장 몇 개를 물어보니 아이가 얼추 답을 한다. 혼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아이가 어떤 계기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프랑스 대학에서 역사 공부를 하고 싶어서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궁금한 시대와 지역이 있다며 프랑스에 가서 역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는 이 시점부터 벌써 신이 나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진로에 대해 여러 방법을 두고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학 설명회에도 가 보고, 외고 설명회에도 가 보고, 담임 선생님과 상담도 하면서 중학교 3학년 시기를 보냈다. 최종적인 선택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은 뒤 이후로는 프랑스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 행정 처리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담임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주셨다. 미진학에 대한 학부모 동의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전화였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도 알고 계셨다. 선생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 제가 다른 선생님들과도 많이 얘기를 나눠 보았는데요. 선생님들이 다 잘할 거라고 하시네요. 괜히 고등학교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였으면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차리게 하는데, 아니에요. 선생님들이 다 응원하고 계세요."
아이는 자신의 계획대로 프랑스 대학 입시를 성실히 준비했고, 신중히 골라 지원한 세 개의 대학으로부터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고비도 많았지만 자기 인생이니 자기 힘으로 헤쳐 나가고 싶은 듯해 한 발 떨어져 지켜봤다. 사실은 내 일에 치여 세세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럴 수 있었던 기저에는 하루를 소중히 돌보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