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

by 꽃마리

열흘 만에 만난 아이와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근처 조르주 브라상 공원으로 향했다. 조르주 브라상 공원은 파리에 갈 때마다 들르고 싶었던 곳인데, 이제야 발을 들여놓았다. 조르주 브라상의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된 건 10여 년 전 『에펠탑 없는 파리』를 읽으면서부터다. 가느다란 선율을 배경으로 나직하고 담담하게 읊조리는 그의 소리를 듣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의 이름이 붙은 공간이라면 분명 아늑하고 포근할 것이었다. 계속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가 태어나고 묻힌 남부의 해변 도시 세트(Sète)에도 갈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한다.


평일 오전의 공원은 한적했다. 달리거나, 걷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몇 명이 전부였다. 공원을 천천히 돌아 걸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와 개강을 준비 중인 아이는 수강 신청으로 분주하고도 신나 보였다. 전공 수업 외에도 선택할 수업이 많았다. 운동은 발레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주로 언어 수업 선택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의 마음에서 영어와 독일어가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면 영어가 먼저라고 말했다. 독일어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더 많기에 그렇다. 영어 실력을 더 높인 다음, 독일어를 공부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도 이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아이는 독일에서 일어난 일들도 공부하고 싶기에 독일어도 익혀 두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이 생각 때문에 영어와 독일어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영어는 당연히 공부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인데, 굳이 수업으로까지 선택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첫 학기 수업을 따라가자면 안 그래도 버거울 텐데, 그 어려운 독일어까지 배우면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건 내 생각이다. 고민의 출발 지점을 확인하고 나자, 아이가 이미 답을 정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말을 그냥 듣기만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는 예상대로 독일어를 선택했다.


공원 안에 극장이 있었다. 어떤 공연을 주로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 극장 말고 마리오네트 극장도 따로 있었다. 공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식물원 쪽으로 이동해 이슬람 사원에 딸린 찻집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정원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길 방향으로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모두 같은 차를 마시고 있는 것 같아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민트티라고 했다.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으니 안쪽에 따로 마련된 식사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직 식사는 이른지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직원들은 본격적인 식사 시간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 주문을 받으러 우리 테이블에 직원 두 명이 왔다. 중년의 직원이 젊은 신입 직원에게 주문받는 방법을 설명했다. 첫 출근이어서 주문받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며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이는 닭고기 쿠스쿠스, 나는 채소 타진을 선택하고, 민트티도 주문했다.


직원이 민트티를 먼저 가져다주었다. 요술 램프처럼 생긴 찻주전자를 허공에 높이 띄운 후 차를 따라 주었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다. 허공에서 찻물이 폭포수처럼 찻잔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마술 같았다. 남은 차를 따를 때 나도 흉내를 내 보았다. 찻주전자를 먼저 허공에 띄운 다음 차를 따르려 하니 찻물이 찻잔 밖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허둥대자 아이가 자기가 해 보겠다며, 찻잔 가까이에 찻주전자 주둥이를 먼저 댄 다음 매우 빠른 속도로 찻주전자를 허공에 띄워서 차를 따라 냈다. 내가 뭘 가르쳐 줄 입장이 아니다.


손님은 우리 둘뿐이었던 식사 공간에 어느새 사람들이 꽉 찼다. 직원들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신입 직원이 어느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손바닥에 받친 메모지에 주문받은 음식을 신중히 적고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외국 학생들 모임에 가고, 나는 식물원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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