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롤랑의 저서 <베토벤의 생애>를 읽고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시대에 감사하며..
삼성서울병원의 암병동에서 검사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헨델, 베토벤에 대해 집에 모아두었던 저서들을 가져와, 기다리는 긴 시간동안 어떤 책을 읽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역시 베토벤을 들었고, 이 즈음에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삶의 계시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베토벤, 책장을 다 넘기고보니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이, 기구한 불행의 운명 속에 살면서도, 마침내 불운을 희롱하고 그 속에서 환희를 찾아내어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 역경을 이겨낸 성스러운 영혼의 울림을 제공한 영웅으로 거듭난 모습을 본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제공한 불의 전사라면, 베토벤은 신이 준 그 수많은 좌절 가운데 거의 무너질 목전에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이겨내어 영롱한 음악을 찾아내 인간에게 선사한 음악의 전사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의 여러가지들을 경험하고 많은 것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마흔 중반의 나이는, 글 중에 그가 겪은 가난과 사랑에 대한 좌절, 가족에 대한 무게와 더불어 청력을 상실한 음악가로서의 한 사람의 생활적인 부분의 어려움이 어떤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는지 더더욱 공감하게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고난스럽다. 예술을 선택하기로 하였고 나의 길이 예술에 있음을 알지만, 그것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돈으로의 값어치매김이 쉽지 않다. 아무리 큰 감동을 준다하더라도, 의식주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작용하지는 않기에 생존회로에 따라 값을 매기는 시대에서 제 값을 받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바흐 역시 생전에 스무 명의 자식들을 먹여살리느라 죽도록 일만 하다 지냈고, 베토벤 또한 가난에 시달린 생활을 한 적이 없지 않았다. 클라브생(피아노의 전신)의 일반 가정집에의 보급과 악보의 출판 등으로 프로페셔널 음악가로서 스스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곡을 쓰고 만들었으며, 그를 흠모하는 귀족들의 지원으로 잠시 스폰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이 천재 작곡가의 삶에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내본 적은 수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악보의 이중계약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였을지.
베토벤은 어릴 적 성악가인 아버지에게 그 재능을 들킨 이후로, 4세부터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며 신동으로 돈을 버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극단에서, 술집에서 연주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이 오직 피아노음악만 배울 수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는데, 17세가 되어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고,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연금 수급을 대리하겠다는 신청서까지 구청에 내야했다. 게다가 어린 동생 둘을 돌보아야했으니 그의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내심 마음 속 아픔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다만 음악을 잘하니 주변에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음악을 가르쳐주는 대신 시를 배우고 정을 나누며 지냈다고 한다.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착한 성품의 베토벤은 일생을 정열적으로 사랑하며 지냈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며 지낸 적이 없다고 로망 롤랑은 적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때로는 베토벤을 희롱하기도 하고 아프게도 했지만, 결혼을 할 뻔한 여인도, 베토벤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마음에 함께한 여인도 있었다. 좋은 사람이지만, 그 격정적인 성격과 예술가로서의 삶은 일반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기엔 힘든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편으로는,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귓병, 어릴 적에 앓은 천연두가 원인일지 모르는 시력약화로 인해, 음악가로서 생명인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잘 안 보이는 이중고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 자신 스스로에게 더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으로도 여겨진다.
어찌되었건, 보통 사람들이라면 수십번을 쓰러지고 넘어져 일어날 수 없었던 역경에도 오히려 그 역경 속에서 영롱하고 위대한 음악을 찾아낸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다. 안 들리는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를 피아노 소나타 <열정>에 쏟아내고, 사랑했지만 결국에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인들과의 시간 속에서 <그대를 사랑해> 같은 아름다운 가곡을 창조했다. 당시의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으로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교향곡 <영웅>을 만들었으며, 자신을 믿고 아껴주는 후원자나 지인을 위하여 수많은 아름다운 곡을 작곡해 헌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불구의 삶을 극복해내며 쓴 위대한 곡 <합창>은 단지 일반관객에게 뿐 아니라, 그에 감동받은 음악가, 멘델스존과 바그너의 영감을 깨우쳐준 계시같은 곡이 되었다. 이렇듯 위대한 곡의 작곡가, 인류를 위하여 반드시 위대한 곡을 선사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베토벤은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유서를 썼던 베토벤, 그러나 영원히 살아 음악을 만들기를 바랬던 베토벤,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정확히 지금 이 2020년에 현존한다면 어땠을까. 가난을 걱정하기는커녕, 유튜브스타가 되어 어마어마한 부자로 살았을텐데. 또 한편으로 다른 상상도 해본다. 베토벤이 1770년이 아닌 이 지금 이 시대에 현존했다면, 지난 250년간 우리가 들어오며 삶의 위안을 얻고 삶의 고난을 극복하게 했던 그의 곡들을 우리가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고. 삶은 더욱 팍팍했을 테고, 그 윤기를 잃고, 고귀하고 성스러운 음악 속에서 우리가 느꼈던 모든 것들은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고.
아름다운 베토벤 들이 사실은 지금 우리 주위 어딘가에도 있을지 모른다. 나만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지금 가난과 삶의 괴로움 속에 고통받고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이겨내달라고, 베토벤처럼 그 가난과 괴로움을 희롱하고 거름삼아, 마침내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그리고 인류를 구원해달라고. 감히 인류를 대표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결코 고난과 역경에 지지 말라고, 그것을 거름삼아 인류의 미래를 당신의 예술로 밝혀달라고.
내가 당신을 안다면, 위대한 운명의 당신이 내 옆에 있는 것을 안다면, 난 누구보다 당신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힘이 되어줄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