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신영 May 25. 2022

나는 좋은 침대를 사게 될까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상우의 침대를 새로 사주기 위해 지난 주말엔 침대 매장에 다녀왔다. 키는 훌쩍 컸는데 여전히  1미터의 좁은 템퍼 매트리스에서 자고 일어나는 게 요즘 들어 부쩍 미안해져서 좀 넓은 퀸 침대를 사 주기로 했다. 인터넷으로만 구매하다가 매장에 가보니,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는데, 어떤 침대는 천만원이 훌쩍 넘어갈 정도...이래서 너도나도 매트리스 업계에 뛰어드나보다 생각하며, 광고에 비친 연예인들을 잠시 헤아려보니, 가히 침대매트리스의 춘추전국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프레임도 보고 다니다 마음에 드는 매트리스를 발견했고 퀸 사이즈를 고르고 왔다. 어머니께서는 내 침대도 바꾸라고 성화이시다. 내게 진즉부터 말씀하고 싶으셨는데, 기회는 찬스다 하고 이제서야 꺼내시는 말씀. 10만원대의 통판 프레임에 싱글사이즈 토퍼 2개를 겹쳐 올려둔 지금도 충분한데, 왜 이리 성화이신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슬금슬금 내 것도 바꿔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굳이 나도 퀸침대를 써야할까, 고민하다가 저녁에 서울대병원 물리치료사 선생님과 통화할 기회가 생겨 여쭤보니, 선생님은 1인용도 싱글보다는 퀸 사이즈 1.5미터를 추천한다고 하신다. 광활하게 넓지만 않다면, 넓고 클수록 편안하고 활동반경 폭도 늘어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지니 추천하신다고. 그래, 확실히 그럴 것이다. 좋을 것이다. 친구 중에도 싱글이지만, 침대는 퀸을 쓰는 친구가 있고, 그래도 넓게 느껴지진 않는다고, 딱 좋은 정도라고 한다. 내가 이 정도 사치야 누릴 수 있겠지, 싶어 마음을 잡았다가도, 넓고 좋은 침대를 쓰기에는 마음의 걸림돌이 있다.



  민물장어의 꿈.


 신해철을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노래, 민물장어의 꿈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익숙해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

  

 내 방의 주인공은 침대가 아니라 책상이고 싶다. 책상으로 가득찬 방, 책상을 옮겨 앉을 때마다 각기 다른 공부를 하고 각기 다른 책을 읽는다. 침대는 구석에 아주 작게, 다인실 병실의 보호자침대처럼 좁고 작게, 공부하다 지쳐 잠시 눈을 붙일 정도로만 있기.. 유일하게 비싼 가구라면 안마의자가 전부인. 그런 서재방 말이다.


 수도자의 자세.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즐겁게 읽었다. 세 번 정도, 읽을 때마다 좋다. 그리고,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늙은 신부님 안의 천진한 아기천사 그림이 인상적이던... 신께 바란 유일한 소원은 자신이 돌보아야하는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게 고향에 발령받기였던 치섬신부. 그리고 빅토르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첫 120페이지에 걸쳐 은혜로웠던 미리엘 주교.  그 분들의 방을 상상해본다. 단정한 원목프레임의 작은 침대, 하얀 시트를 씌운, 좁고 다소 불편한 매트리스.  그렇지 않았을까.


  서귀포 왈종미술관 옥상 작업실.


 쨍한 여름 햇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건물 전체가 흰색 조각 같았던 제주 서귀포의 왈종미술관.따뜻하고 밝고 화려하면서 소박한 그림들을 탄생시킨 그의 작업실, 몸 하나 뉘일 정도로 좁은 돌 마감 위 단정한 침구... 를, 잊을 수가 없다.   서귀포 왈종미술관 - 그럴 수 있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익숙해짐을 걱정하고 편안함을 멀리하자며,  오늘도 생각 속에 결정을 못한다.  다시, 내가 암경험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야할 때가 왔다. 많이 좀 놀고, 달달 볶지 말라고. 내가 깨달은 ' 암이 발견되면 목숨 걸고 지켜야하는 것들' 에는 '잘 놀기, 잘 쉬기'가 포함되어있지 않냐며. 하고싶은 대로만 살면, 하고싶은 걸 못하게 된다며, 나를 타일러본다.


그렇지만, 여전히, 신해철님의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두 갈래 마음을 정돈하려하나 잘 될 리가 없다.





<민물장어의 꿈>

-

--

---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깍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말고 가라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익숙해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른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찾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