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신영 Sep 04. 2023

진짜가 나타났다

담백한 진짜를 만나는 일

   얼마 전, 세이노님의 깜짝편지를 받았다. 세이노님의 편지는 스팟성인데 읽으면 새겨들을 말씀이 가득해서 메일에 세이노님의 제목이 뜨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먼저 읽는다. 이번 글은 특별한 말씀이 없는 대신 누군가 만든 강의 자료 파일 화면이 주욱 이어졌고, 세이노님의 책 속 몇 페이지에 있는 내용인지 조목조목 표시되어 있었다.  많은 자료였고, 상당히 많은 부분을 마치 강사가 한 말인 듯, 직접 경험한 일인 듯 적혀 있었다. 이 강의는 단 2회에 50만원의 마인드 강의로 최대 700만원까지 올라가는 수강료를 받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수도 꽤 되었고, 강의와 컨설팅은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강사의 유튜브를 잠시 보았는데, 왠지 사이비 교주 같은 분위기가 연상되었다.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대단한 사람인 듯 여기는 자아도취와 나르시즘의 느낌도 들었는데, 더 황당했던 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간증 같은 댓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수강했고, 감동을 받고 후기를 올려두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임에도, 기사 한 줄, 뉴스 하나 나오지 않고 있다. 세이노님께서도 메일을 구독한 사람에게만 요즘 이렇단다 알려주셨을 뿐 다른 액션을 취할 생각은 없으신 듯 하다. 잠시 생각해보았다. 사실, 세이노님의 책은 책을 내려고 한 것이 아니고, 20여 년 전 네이버까페에 직접 올리셨던 글들이 너무 훌륭하여, 같은 까페 계시던 분이 그 글들을 모아 종이값만 받고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배포해주던 것이었다.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던 책이 아니고,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입소문으로 추천받아 알음알음 인쇄비용만 내고 구해 읽던 글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원작자가 활동하지 않는다고, 토시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옮겨붙여서 강의를 만들고 수억원의 돈을 벌고 있었다. 세이노님의 글을 인용하여 강의를 만든 사람은 두 세 명이 넘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강의자료를 베꼈다며 소송을 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3월 세이노님의 책이 정식출판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하염없이 너그러이 생각해서, 세이노님이 활동을 하지 않으시는 중에, 그 분의 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니 좋은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비유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하늘에 계셔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목사님이나 부처님 말씀을 전파하는 스님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종교인들은 출처라도 확실히 밝히는데, 이런 사이비강사들은 남의 말도 내 말인 양, 남의 경험도 내 경험인 양 굴며,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혹세무민의 사람들에게 최대 700만원의 돈을 뜯어내고 있으니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중인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진짜 세이노님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다. 요즘의 트랜드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강의자료를 만들고,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쳐서 강의료와 컨설팅수입을 올리는 돈 버는 법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한 두 번의 경험이 전부인 초보는 강의하는 동안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왕초보들에게 선생이자 멘토 역할을 하며 또 다른 강의 경험을 쌓고, 이제 해당분야의 일은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만 간간이 경험해본다. 그리고 전문가로 호칭받으며 컨설팅비용을 수백만원씩 번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어가는 사람들이 양산 중이고, 이렇게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은 바보취급을 당하고 있다.


   수년 간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진짜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활동을 멈추셨던  전설 같던, 예수님의 열 두 제자처럼 십수년 전 단 몇 명만 식사에 초대되었던 그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가 나서, 스스로 끄적였던 글들을 이용해 수백만원의 강의료를 받고 팔아먹는 이들에게 속는 사람들이 가여워서. 가짜들의 강의에 돈을 쓰고, 감동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감쪽같은 사기에 당했던 사실에 마음의 상처를 입겠지만, 진짜를 아는 것만큼 귀한 가르침이 어디 있을까. 그 점에서 박쎄니 강사는 한 번 쯤은 칭찬받을만 하다. 전설처럼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쎄이노님이 진짜로 계시고, 한 번 쯤 나도 뵐 수 있을까 희망을 품게 해주었으니.  

    

    쎄이노님 뿐만 아니다. 요즈음, 업계에서만 알려져있던, 탑의 자리에 있는 분들이 종종 유튜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삶과 사업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일이 많아졌다. 정말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짜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진실함과 내공을 영상을 통해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비상식적이다보니, 원작자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가짜가 진짜를 훼손하는 상황이 지나치게 심해졌다. 구름빵이나, 검정고무신의 저자들이 받던 부당대우, 그리고 서태지 이전의 한국 가요계의 가수들을 등쳐먹던 음반사들의 행태를 보면,  세상은 어쩌면 전부터 그래왔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원작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너무나 쉽게 사기꾼에게 속아넘어가기 쉬운, 알고리즘 세상이 되어버렸다.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늪인지 현명히 구분할 수 있으려면  내 스스로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  


  경험상, 진짜들은 수백만원의 강의료를 받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일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그 경험을 나누어 함께 성장하기를, 성장을 돕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르침과 조언의 배경이었다. 화려한 말빨과 거창한 광고문구에 쉽게 넘어가면 안된다. 진짜들은 그게 필요없으니 더 담백했다. 담백한 진짜를 처음부터 만나면 행운이고, 가짜에 속아넘어가 후회하게 되더라도 경험이다. 성공도 성공이고 실패도 성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좋은 침대를 사게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