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종종 저마다의 이유로 수업에 빠진다. 갑자기 열이 나서, 별 보러 천문대를 가야 해서,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에는 일대일 수업을 하게 된다. 그런 날에 나는 아이 하나를 돌보듯 수업을 진행하면서 훌륭한 교육은 무엇인지 생각할 틈을 갖는다.
지난 수업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와 두 시간을 보냈다. 워낙에 자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으나, 다른 아이들이 있을 때는 그래도 지각은 있는지 자중하는 듯했는데, 나와 둘이 남게 되자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엄마가 제 간식을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을 화수분처럼 늘어놓았다.
그런 말들은 대개 결론이 없다. 게다가 아이가 말하는 동안에 갈피를 잃기 때문에, 당초에 계획했던 방향과 묘하게 달라진 것을 어느 순간에 스스로 깨닫고는, 짐짓 당황하지 않은 체하며 또 전연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는 했다. 내가 적당히 매듭을 지어주지 않으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독백이 이어질 지경이었다.
그럴 때에 나는 아이가 말하는 동안 흔들리는 앞머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새로 단 머리핀의 질감을 감상하거나, 아이의 웃음소리가 지난 어떤 날 상담차 아이 엄마와 통화를 할 때 들었던 웃음소리와 똑 닮았다고 감탄하면서, 내 나름대로 대화를 즐긴다.
그렇다고 아이 말을 흘려들으란 건 아니다. 아이들은 이런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로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자기 얘기를 흘려듣거나 하면 득달같이 알아채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말로써 자기를 구축해 내는 과정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전체를 파악하되 따져 묻지 말아야 한다. 어떤 말들은 쏟아 놓아지기로 목적을 다하니까.
그렇게 잘 듣고 나서 무언가를 하도록 지도하면 아이는 기꺼이 연필을 잡는다. 좋은 교육은 먼저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된다. 어떤 부분을 따져 물어야 하는가는 충분히 받아들이고서 헤아릴 일이다.
무릇 사랑은 수용이다. 좋은 교육은 그러므로 사랑하는 법을 계승한다.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교육은 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