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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Jan 15. 2016

건네받은 책: 1) 뉴베리 컬렉션

기억 속에 어른거리는 황금 딱지들

이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계단을 오르내리며 책을 읽는 나를 보고 친구가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고 부른 일이다. 중학교에 가니 홍수처럼 쏟아지던 자기개발서(누구누구 명문대 간 이야기 등)에 질려 책을 멀리하고 일반인으로 전락했으나 어렸을 때는 독서가 생활화된 아이였다. 등하굣길, 어두컴컴한 차 안 등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집 서재부터 학교 학급문고까지 탈탈 읽어냈던 기억이 난다. 무려 책 읽는 것 때문에 혼나던 시절이라니! 스릴 넘치는 독서생활 덕분에 멀쩡했던 시력은 나빠졌지만 길 걸으면서 읽다가 자전거나 자동차에 치이지 않은 걸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이런 왕성한 독서생활 뒤에는 당연히 조력자가 있는 법. 우리 집 책들이 다 누구에게서 나왔겠는가. 아버지는 활자 중독이나 인쇄물 중독 중 하나가 의심되고, 엄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꾼이다. 아날로그 감성의 아버지는 주로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양팔 가득 책을 담아 오신다. 종종 아버지를 따라가서 내 책도 사 오곤 했는데 책 서너 권을 한 번에 사는 통쾌함이 최고였다. 반대로 엄마는 온라인 서점이 주 활동지다. 스스로를 위한 책은 물론이요 자라는 나를 위해 고심해서 고른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매달 배송되었다. 거의 딸내미 맞춤형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였다고 보면 된다.




엄마의 책 선정 기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책들이 배송되면 엄마는 나에게 마케팅을 시도하는데, 황금 딱지가 붙어있는 것들을 보여줄 때는 신나는 목소리로 "이거 뉴베리 수상작이야!"라고 했다. 어린 나는 뉴베리가 뭔지는 몰라도 금색 스티커 + 수상작 = 믿고 읽어도 되는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상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미국도서관협회에서 매년 미국 시민이나 거주자가 쓴 소설, 시집, 논픽션 등을 대상으로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가에게 주는 아동문학상  

[네이버 지식백과] 뉴베리상 [Newbery Awards, ─賞] (두산백과)



어린 내가 상의 거창한 의미를 되새기며 책을 읽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이 황금 딱지를 다시 기억하기 위해선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유년시절 좋아했던 책 두 권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마주하게 된 일이다. 첫 번째는 L. 로이스 로우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원어로는 The Giver. 번역본은 시간전달자로 제목이 바뀌었다). 헝거게임과 같은 각종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 격인데, 이 책이 살면서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다. 얼마나 강렬했냐면 작가 이름을 외워 뒀다가 다른 작품을 일부러 사 본 정도다(참고로 나는 작가 이름, 글귀, 노래 가사는 기억하지 못하는 병이 있다).

내가 읽은 번역본은 분홍색 커버에 매달이 박혀있었다.

완벽한 사회에서 살아가던 한 소년이 있다. 그가 사회의 평화를 위해 감정, 자유의지와 같은 요소가 철저히 배제되어 왔음을 깨달으면서 고뇌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 책은 나에게 신선한 멘붕을 주었다. 사회 시스템과 그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니! 거대한 주제를 간접 체험해 버렸다. 이 책에 관해서 더 쓰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참아본다. 아무튼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작년에 보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 그렸던 이미지들이 시각적으로 펼쳐져서 흥미로웠다. 나중엔 영문으로 읽어봐야지.




다른 책은 E.L 코닉스버그의 '클로디아의 비밀'(From The Mixed-Up Files of Mrs. Basil E. Frankweiler)인데, 클로디아가 부모님에게 불만을 품고 동생과 함께 가출을 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숨어드는 내용이다.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고 삽화가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미술관에 숨어든마냥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4년 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었을 때는 이 책의 배경이 그곳인 줄 몰랐다. 알았더라면 훨씬 긴장되게 관람했을 텐데!



이 두 책이 뉴베리 수상작임을 알게 된 것은 미국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얘기하던 찰나 자기도 이 책들을 읽었다고 하는 거다. 그 수많은 영어 책 중에 왜 이 두 권을 읽은 거지?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검색해보니 두 책 모두 익숙한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실제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오랜 기간 미국 교과서에 등재될 만큼 유명하다고 했다. 미국 학생들도 나처럼 멘붕에 빠졌을까? 요즘 애들은 헝거게임을 먼저 읽었을 테니 아닐지도 모른다. 구글 이미지로 뉴베리 마크가 박힌 책들을 둘러보니 추억의 책들이 몇 권 보이더라. 신기하게도 가끔 머릿속에 떠올라 보고싶어졌던 책들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읽은 소설이 손에 꼽는다. 가공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게 되어서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옛날 읽었던 책을 떠올리니 좋은 소설을 몇 권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침대에 누워서 책장 넘기며 심하게 감정 몰입하던 그때와 비교는 못하겠지만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책 있으면 추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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