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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Aug 15. 2021

헨리 2세와 가족

플랜타지넷 왕조 3


헨리 2세의 가족은 서로 증오하고 배신하는

불행한 관계 였습니다.

왕비 알리에노르와의 결혼은 땅에 대한 욕심이

앞선 정략결혼이었으므로, 헨리 2세는

여성 편력이 심했습니다. 당연히 알리에노르는

배신감에 휩싸여 아들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습니다.



아키텐의 알리에노르 출처 위키피디아


두 사람 사이에는, 장남 헨리, 둘째 제프리, 셋째

리처드, 막내 존이 있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아들들에게 재산 상속을 하였는데 장남 헨리에게

영국왕의 자리를, 리처드에게는 모친의 땅인

프랑스의 아키텐과 푸아투를 물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헨리 2세는 막내인 존을 특별히 사랑하여

장남 헨리와 리처드에게 재산의 일부를 막내 존에게

나누어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했고 어머니 알리에노르, 둘째 제프리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1173).


당시 프랑스에 있던 헨리 2세는 아들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캔터베리에

들러 공개적으로 참회를 했습니다.

장시간 기도를 올린 후, 70명의 수도사로 하여금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하게 한 것이었죠.

왕이 이렇게 극단적인 참회 방법을 택한 이유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이 살해된 일로,

궁지에 몰린데다 자식들까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위기를 타개하고 지지세력을 

모을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참회를 끝낸 후, 반란은 성공적으로 진압되었고

토마스 베켓과의 갈등 원인이었던 종교재판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즉 반역죄로 고발된 성직자는

국가재판에, 기타 살인이나 폭행 같은 중죄로

고발된 성직자는 교회재판에서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첫째 아들 헨리와 둘째 아들 제프리는

아버지 보다 먼저 사망하였습니다.


이제 헨리 2세는 셋째 리처드에게 영국과 노르망디를

물려주고 막내 존에게 아키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리처드는 부친을 증오한 반면, 어머니 엘레아노르와는

특별히 친밀하였으므로 어머니의 영지인 아키텐을

존에게 준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리처드는 프랑스의 젊은 왕 필리프 2세와 친하게

지냈는데 필리프 2세는 영국왕 부자간의 불화를

이용해 프랑스내의 영국 영지를 빼앗으려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처드에게 반란을 부추겼지요.

어머니 엘레아노르는 아들에게 군사를 제공했습니다.


퐁트브로에 있는 알리에노르와 

헨리 2세 묘소의 조상 출처 위키피디아


이리하여 또 셋째 리처드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늙고 지친 헨리 2세는 산으로 도망가고

아들 리처드가 추격했습니다. 헨리 2세가 시농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중병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그때 마침 신하 한사람이 반역자의 명단을 입수하여

돌아왔는데 명단의 첫 번째에 사랑하는 

막내 존의 이름이 씌여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궁지에 몰리고 형 리처드가 승기를

잡는 것 같으니까 존은 아버지를 배신한 것이었죠.


존에게 주기 위해 아일랜드 침공까지 감행했던

헨리 2세는 좌절하여 혼수상태에 빠졌고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1189).



*참고서적 : 영국사 (앙드레 모루아),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안병억), 이야기 영국사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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