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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Nov 24. 2022

할머니 탈출작전

할머니 탈출작전

간밤에 이불 속에서 할머니가 약산 할아버지 묘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이장했다는데, 몸이 불편해 언감생심 가볼 생각도 못하셨단다.

"낼 갈까? 막둥이 차 타고 가면 되지."

다음날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동생이 할머니를 들처업어 차에 태웠다.  아버지는 어느 틈에 앞자리에 타 있다.

"갑시다! 어머니! 멋지게 해 놨소."

할머니, 아버지, 손자, 손녀, 장손까지 긴박하게 차에 올라타고 출발했다.

20여분 신나게 달리고 연육교를 지나 약산에 들어섰다.

"옛날 여기를 다 걸어다녔다. 하루이틀 꼬박 걸렸는디 인자 한 시간도 안 걸리네. 시상 좋다."

"아따, 저집은 새로 지었네."

바깥풍경을 보며 놀래기도 했다가 반가워도 했다가...

"저기는 옛날에 육이오 때 사람들 줄줄이 세워놓고 총으로 쏴죽인 데다. 저기 절벽 앞에."

뜬금없이 역사적 대사건도 슬쩍 껴넣는다.

증손자 눈이 휘둥그래진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노래도 한 곡조 뽑으신다.

"내가 이래봬도 마량 노래자랑에 재재작년에 나가서 인기상도 받았느니라. 사람들이 노인네가 목소리가  젊은사람맨치로 좋소 한디야."

"정말 인기상을 받았어요?" 물으니까

앞자리에 앉은 아버지가 "노인네라고 불쌍해서 상줬지 뭐 좋았겄냐?" 하신다.

"아따, 모르는 소리 마라. 진짜 목청 좋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할머니가 일단 우기고, 아버지는 기권이신지 금세 경치 구경이다. 여튼 오랜만에 집을 탈출한 할머니는 기분이 최고조다.

할아버지 묘 옆자리가 비어 있다.

"여기가 내 자리구만."

할머니가 할아버지 옆자리에 당신이 누울 자리가 충분한지 눈짐작을 해본다.

약산은 옆 섬이고 이틀이나 걸리는 먼 거리고... 웬만하면 동네 우리 산에 할아버지 모셔와서 묻어달라 어젯밤까지 내내 말씀하시더니, 한시간만에 오니 쓸쓸하지는 않겠다며 그 자리에 묘를 써달란다.

자식들 덜 고생시키고 싶은 맘, 당신도 가끔 와서 봐주길 바라는 맘.

돌아오는 길은 못내 아쉽다.

이제 집에 들어가면 언제 또 대문 밖으로 나오실 수 있으실까. 햇빛도 따사롭고, 바람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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