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으로 말하는 나라: 요즘 중국이 보내는 신호들

헬조선 vs 명나라 멸망

by ShionJins

얼마 전 경향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2025.12.20)를 하나 읽었다. 중국 온라인 공간에서 “명나라의 멸망에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문장이 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겉으로는 그저 역사 이야기 같다. 그러나 기사에 실린 예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문장이 겨냥하는 대상이 과거의 명나라가 아니라 오늘의 중국, 그리고 중국 공산당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직접 “공산당”이라는 단어를 쓰기 어려운 환경에서, 청년들은 오래된 왕조의 이름을 빌려 지금의 체제에 대한 피로감을 우회적으로 말한다.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중국 내부에서 무언가 조용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공식적인 언어 속의 중국은 여전히 ‘성장’과 ‘안정’을 말한다. 하지만 특히 젊은 세대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도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23년 중반에 21%를 넘어서며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뒤, 논란 끝에 통계 방식이 바뀌었다. 학생을 제외한 새로운 기준에서도 2025년 여름 한때 약 18~19%까지 올랐고, 가을·겨울에 들어서야 16~17%대로 조금씩 내려갔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숫자가 어떻게 조정되든, 졸업 후 몇 달, 몇 년씩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구직 사이트와 SNS에는 “면접 열 번 떨어진 후기”, “퇴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망한 이력서 고치는 법” 같은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부동산도 편하지 않다. 대도시 집값은 흔들리고, 이미 분양은 했지만 완공되지 않은 주택이 수천만 호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어떤 보고서는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팔린 주택이 최소 4,800만 호”에 달한다고 지적하고, 다른 분석은 자금 부족으로 완공이 미뤄진 아파트를 채우려면 수조 위안 규모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집을 샀지만 집이 완성되지 않아, 없는 집의 대출을 갚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중국 안팎 기사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런 불안과 불만은 정치 구호의 형태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대신 생활과 농담의 언어로 스며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온라인에서 널리 퍼진 여러 밈이 있다. “탕핑(躺平)”은 더 이상 끝없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말이고, “바이란(摆烂)”은 ‘열심히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은 자신의 하루를 “실업 일기”라는 제목으로 올리며 서로의 처지를 웃프게 공유한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명나라의 멸망에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문장이 또 하나의 밈으로 떠오른다. 기대를 내려놓은 세대가 선택한 독특한 방어기제, 더 이상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면으로 맞설 수도 없을 때 나오는 우회적인 억양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렇게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안은, 위쪽에서도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시야를 조금 위로 올려 보면, 권력의 상층부에서도 균열의 징후가 보인다. 겉에서 볼 때 시진핑 체제는 매우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긴장이 감지된다. Jamestown Foundation은 시진핑을 둘러싼 네 개의 주요 집단을 언급한다. 혁명 원로와 보수파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이른바 태자당으로 불리는 혁명 2세대는 자신들이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유산이 하나의 개인 체제에 흡수되는 것에 미묘한 불만을 느낀다. 군부 일각은 부패 척결과 인사 개편 과정에서 힘을 잃었고, 도시 중산층과 민간 기업가들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규제와 정책 속에서 불안한 균형 위에 서 있다.


이 네 집단이 하나로 뭉쳐 공개적으로 “반시진핑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거리를 두거나,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움직이는 느낌에 가깝다. 관영 매체의 화면에는 늘 똑같은 회의 사진과 구호가 반복되지만, 그 뒤에서는 여러 계층과 집단이 서로를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줄을 조정하는 모습이 포개져 있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인사와 정책, 규제의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그 미세한 긴장이 남긴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긴장은 당이라는 조직을 둘러싼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당원 수는 약 1억 270만 명, 1년 새 100만 명 이상 늘었다고 한다. 외신들은 성인 인구 열 명당 한 명꼴이라는 이 숫자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큰 정당 중 하나”라고 부르면서도, 젊은 층의 입당 동기에 주목한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많은 청년들이 이념보다 “안정된 직장, 조금 더 나은 연봉, 공무원 시험에서의 이점”을 보고 당에 지원한다고 말한다. 공산당은 한편으로는 입당 기준을 강화하고 충성을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불안 속에서 “괜찮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중국 밖에서는 전혀 다른 숫자가 떠돈다. 파룬궁 계열 매체와 단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탈당 운동(Tuidang)”을 벌이며, 공산당·공청단·소선대에서 탈퇴를 선언했다는 사람이 2023년 8월 기준 4억 명, 2024년에는 4억 4천만 명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실명 확인도, 독립적인 검증도 거의 불가능한 숫자이지만, 이 역시 하나의 이야기다. 이 서사 속에서 중국인은 자신을 “당과 결별하고 싶은 존재”로 다시 정의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탈당 서사’가 어느 순간부터 극적으로 팽창하는 지점을 갖는다는 점이다. 최근 배우 위멍룽(于朦胧(우몽롱, Alan Yu), 1988.06.15. ~ 2025.09.11.)의 사망 이후, 해외의 퇴당 사이트에는 그를 계기로 삼퇴(탈당·퇴단·퇴대)를 선언했다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三退洪声〗第76期 于朦胧事件凸显中共邪恶本质 引发更多民众“三退”, Yu Menglong’s Tragedy Triggers Worldwide Push to Quit the CCP” (2025.10.12)). 더 나아가, 글로벌 퇴당 서비스센터는 “팬들과 네티즌이 대신 올린 삼퇴 신청이 수십 건 접수됐다”는 이유로, 고인이 된 위멍룽의 ‘탈당’을 특별히 인정한다는 공지까지 냈다(「于朦胧事件促民众三退 台媒关注退党潮」(NTD, 2025.10.17)). 살아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름까지 공산당 바깥으로 빼내려는 상징적 행위가 된 셈이다.


한 나라 안에서, 한 조직을 두고, 이렇게 크게 다른 두 개의 서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 자체가 인상적이다. 한쪽에서는 가입의 행렬이 강조되고, 다른 쪽에서는 이탈의 선언이 쌓인다. 현실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조각들을 어떻게 엮어야 할까. 일부에서는 지금의 중국을 두고 “민주화 직전의 태풍의 눈”이라고 말한다. 겉으론 고요하지만, 거대한 폭풍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이미지다. 그러나 1980~90년대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변화의 조건을 떠올려 보면, 지금 중국의 상황은 그때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당시에는 고도성장이 가져온 여유, 중산층의 확대, 시민사회와 언론의 공간, 대안적 정치세력이 어느 정도 존재했다. 지금 중국은 성장 둔화와 청년 실업, 수천만 호 규모 미완공·미입주 주택, 강력한 디지털 통제, 높은 국가 역량, 엘리트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엉킨 상태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중국을 “곧 폭발할 태풍의 눈”이라기보다, 서서히 기압이 떨어지는 거대한 저기압권에 가깝다고 느낀다. 어디선가 바람이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지만, 재난 영화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이 뒤집히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변화를 말하는 작은 신호들은 이미 곳곳에 있다. 명나라를 애도하는 문장, 탕핑과 바이란이라는 자조 섞인 유머, 조용히 축적되는 상층부의 불만, 당원 수 증가와 탈당 서사의 공존. 이 각각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 중국의 얼굴을 만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장된 기대도, 냉소적인 단절도 아닌, 관찰자의 거리에서.

이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태도, 어쩌면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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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요즘 중국 중앙TV(CCTV)를 보고 있으면, 왜 이렇게까지 ‘소음’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해진다. 때로는 수배 중인 사람을 이미 체포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영상까지 등장해, 이것이 단순한 편집 오류인지, 과도한 연출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정말로 중국 공산당(CCP)을 돕고자 하는 방송이 맞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내부의 힘겨루기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한다. 언론이란, 결국 자본과 권력이 가진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장치이자, 이데올로기적 도구, 때로는 정치적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탈당 관련 이전 칼럼: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를 깨우다(Oct 26. 2025) https://brunch.co.kr/@shionjins/22

- 흥미로운 기사: 베이징 박은하 특파원, 2025.12.20, "“명나라 멸망에 애도를 표합니다”··· 중국 당국 긴장시킨 청년들의 온라인 반항"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200600031?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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