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이 아직 머무는 곳, 인도

보드가야Bodhgaya_부처님 마을에는 부처들만 산다

by mita

보드가야Bodhgaya


보리수 아래에서 밝은 빛으로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곳. 이곳에서도 삶은 다른 모습이 아니다. 어린아이도 돈을 벌어야 하고 릭샤들은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그러나 이 곳 보드가야에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꾸임 없는 건강한 생명력이 있다. 이 생명력은 극성스럽지 않고 순수하다. 그래서 보드가야 사람들은 모두 환한 빛이고 잠깐 들른 여행자에게도 환한 빛을 나눠준다.




보드가야는 부처님 성도成道의 땅이다. 보드가야佛陀伽耶란 지명도 부처님이 가야에서 성도를 함으로써 붓다가야가 변형되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가야 역에서 보드가야까지는 오토릭샤를 이용했다. 가야는 보드가야로 통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합승할 여행자를 쉽게 만나 싸게 올 수 있다. 보드가야로 향하는 길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숲이 커서 정글 같은 곳도 있지만 낮은 언덕들과 알맞게 펼쳐진 평원이 정겨운 시골 마을인 양 편안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는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으로 간다. 마하보디 사원에는 보드가야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대탑大塔이 있다. 이 탑은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이 부처님 성도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사실 마하보디 사원이 성지聖地가 된 것은 탑보다도 그 뒤에 있는 보리수 때문이다. 부처님이 성도하셨다는 바로 그 자리... 원래는 ‘핍팔라’ 나무인데 그 아래서 보리(道)를 이루어 보리수라 부른다. 생각보다 사원은 굉장히 크다. 순례자들도 많다. 대탑 주위에서 쉬지 않고 예배를 올리는 신자들의 모습이 경이롭다. 그러나 너무 화려해서 그런가. 내가 종교적이지 못해서 그런가. 난 차분하게 명상하는 마음이 들지 않고 좀 들떠 있기만 했다.


보드가야는 마하보디 사원을 중심으로 거리가 이루어져 있다. 인도는 해가 떨어지면 금방 어둠이 찾아오는데, 이 거리는 화려한 마하보디 사원 덕분에 밝다. 그 밝음에 힘을 얻어 바자르(시장)를 둘러본다. 과일을 좀 샀는데 잠깐의 흥정이었지만, 이 곳 사람들이 유독 소박하고 수줍게 친절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숙소로 돌아와 ‘보드가야가 참 좋다’고 중얼거리며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아침 예배를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가 들린다. 그 가슴까지 스며드는 종소리를 달콤하게 들으며 나는 늦잠을 잤다. 오후가 되어서 거리로 나온다. 오늘은 보드가야에 있는 한국절 ‘고려사’를 찾아갈 생각이다(보드가야에는 각국의 절들이 많이 있다). ‘고려사’를 안다고 강력하게 얘기했던 사이클 릭샤꾼은 티베트Tibet 절 앞에서 세운다. 내가 여기가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해도 맞다고 하며 내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내려서 주변을 다 다니며 물어도 ‘고려사’를 아는 사람이 없다. 사이클 릭샤꾼.-가끔 인도인들은 믿을 수가 없다. 고려사에 가려던 열의는 사라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티베트 절은 규모가 좀 커서 그런지 주변에 노상들이 많다. 노상들 중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남매가 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백 일 동안 하고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실로 만든 팔걸이를 보고서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꼭 배우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 순박한 남매에게 끌려 안 배우면 안 될 사람처럼 떼를 썼다. 그들은 재밌어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제자로 맞아들였다. 그들은 간단한 손놀림인데도 연신 헤매는 나를 탓하지 않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진지하게 가르쳐 준다. 어린 남매가 돈을 벌어야 할 만큼 어려운 생활일 텐데 건포도까지 사다가 나에게 준다. 그들의 따뜻함에 난 가슴이 뜨거워져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우리 셋이 실 쪼가리를 들고 까르르 웃는 웃음 때문이었을까. 주변의 티베트 사람들이 몰려든다. 티베트 아줌마들은 정말이지 한국 아줌마와 너무도 똑같아서 무한한 유대감이 생긴다. 내가 티베트 아줌마들과 흥정하며 물건을 대신 팔았다. 비슷한 얼굴 탓일까. 아줌마들은 나에게 깎아 달라며 어리광을 부렸고 나는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장사꾼의 표정으로 깎아 주곤 했다. 남매는 내 곁에서 함박 웃고 있다. 나도 씩 웃는다. 우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의 스승님들과 얼마를 함께 했을까. 이제 가 봐야 한다고 했더니 달라이 라마 사진이 박힌 금박 볼펜을 내민다. 그들이 파는 물건 중 꽤나 비싸 보이는 그 금박 볼펜을 받을 수가 없어서 굳이 사양하고 우리가 함께 만든 팔걸이만 받겠다고 했다. 내가 보드가야를 떠날 때, 자신들은 늘 이 곳이 있으니까 다시 오면 꼭 들르라고 한다. 언제나 그 곳에 있겠다고 한 그들의 인사 때문에 지금도 보드가야를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먼 이국땅에서 나 살던 곳을 만나다


다시 고려사에 가고 싶어졌다. 이번엔 릭샤를 타지 않고 물어물어 걸어간다. 외딴 시골길이인데 가끔 만나는 티베트 동승들 때문에 즐겁다. 승복을 입고 해맑은 웃음으로 장난치며 걷는 동승들을 보고 있으니까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티베트 독립이 어서 이루어져서 이들이 이렇게 흩어져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


한참을 걸어서, 어느 노인이 샛길을 가리키며 바로 저기가 고려사라고 일러주는데 뭐 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앞서던 노인이 어서 가보라는 손짓을 해서 얼떨결에 샛길로 들어선다. 고운 흙길이었는데 정말로 高麗寺라고 씌어 있다. 한국에서 늘 보던 그런 절이 아니라 그냥 시골집 그대로였다. 그래서 조금 의아했는데 불상이 모셔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놓였다. 겉모습이 중요한 건 아니구나... 정갈하고 아늑한 방을 보니 불심이 절로 생길 것 같다.


마하보디 사원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감히 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백팔 배를 이 곳 고려사에서는 하고 싶다. 그러나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엉거주춤 하고 있는데 앞에 정좌하고 있는 온화한 부처님이 괜찮다며 허허 웃으시는 듯하다. 처음에는 이게 맞는 방법인가, 내가 몇 번을 했나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는데 한참을 예배드리다 보니 그 생각들이 없어진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가는데도 멈추고 싶지가 않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리가 후들거려 이제 그만 앉았는데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환해진다. 잘은 모르겠지만 불가에서 생각을 끊는다는 것이 이러한 상태의 지속이 아닌가 한다. 그 날의 그 완벽한 느낌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마당에 내려서니 작은 모닥불 주위로 스님과 일하는 아이와 개 한 마리가 있다. 아이는 마늘을 까고 있고 개는 졸고 있다. 나무의자에 앉아 나도 같이 마늘을 깐다. 스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어느덧 노을이 지며 해가 떨어진다. 이 작은 절을 다 물들이려는 듯 노을이 붉다. 낯선 땅 어디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내 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노을처럼 일상적이어서 다른 생각이 일지 않는다. 주위도 마음도 평화롭다. 언제 올라갔는지 스님이 옥상에서 퉁소를 길게 분다. 노을 속에 퍼지는 퉁소 소리... 저릿하다.


어느새 어두워졌다.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스님께 말씀드리니 공양을 받고 가라고 한다. 고려사 공양은 인도 어느 곳의 한국 식당에 비길 바가 아니다.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생각났던 그런 저녁이었다. 건강하시라고 합장하며 인사하는 내게 스님은 보리수 잎을 챙겨 준다.


고려사를 뒤로하며 고운 흙길을 걷는데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당신의 꿈이 아직 머무는 곳, 인도] 3편은 이천년 초 60일 인도 배낭여행기 중 일부 시리즈입니다. 다시 글을 쓸 준비를 하며 예전 글을 찾았습니다. 그 시간에, 그 감성에, 그 모든 것들에 젖어봅니다. 어쩌면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hoto by.S.O.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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