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이 아직 머무는 곳, 인도

자이살메르Jaisalmer_그리움을 안고 사막을 건너다

by mita

자이살메르Jaisalmer


낙타는 그리움이다. 모래 언덕 여기저기에 그리움이 없고서야 어찌 그런 눈동자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낙타를 타고 사막 사파리를 하는 내내 낙타는 그리움 덩어리가 분명하다고 믿었다. - 사막에 관한 내 상상의 틀은 자이살메르에서 풍요로워졌다. 타는 태양과 모래바람이 전부였던 빈약한 곳에 색깔들이 입혀지고 이야기가 생겨났다. 꼭 자이살메르가 아니더라도 사막에 머무는 우리의 상상력을.. 우리의 꿈을 한 번쯤 풀어놔 보자.


인도를 여행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세계가 주는 별스러움에 약간씩 흥분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미리부터 상상력을 펼치며 흥분해 있던 곳이 바로 사막이 있는 라자스탄 지역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쓸쓸한 사막과 강렬한 태양, 그보다 강렬해 보이는 인도 여성들의 옷차림, 견디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려는 낙타 - 누구든 매혹당할 만한 것들이다.


자이살메르는 사막의 느 곳에 환상처럼 솟아 있는 성(城)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들어오는 길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 델리에서 조드푸르를 거쳐 자이살메르로 들어오데 이틀 정도가 소요된다. 저녁 무렵 델리를 떠나면 그다음 날 아침에 조드푸르에 도착하는데, 대개 자이살메르행 기차가 저녁때 있으므로 반나절 정도는 조드푸르를 여행할 수 있다. 조드푸르는 타르Thar 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라자스탄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자이살메르로 통하는 중간 경유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자이살메르하고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반나절 여행이 아쉬울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조드푸르의 대표적 유적지는 메헤랑가르 포트Meherangarh Fort인데, 이곳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일은 정말이지 굉장하기 때문에 시간에 너무 쫓기고 있지 않다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성城 언덕 정상에서 볼거리는 타르 사막 쪽의 탁 트인 경관보다, 블루시티Blue City라고 이름 붙은 보라색 물결의 시가지가 굉장하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도시 속에 어쩜 저렇게 은은하고 깊이 있는 색으로 집을 장식했는지.. 사실 한 집만 떼어놓고 보면 그 보랏빛은 분명 은은하고 차분한 빛이지만, 온 시가지가 한 덩어리로 눈에 들어올 때는 아찔할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는 걸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달리는 기차 구석에 처박힌 채 얼마를 잠을 잔 것일까. 칙칙한 기차 안이지만 꿈속은 온통 보랏빛이 출렁였던 거 같다. 늘 목안에 가득 찬 먼지를 어쩌지 못해 잠이 깼는데, 이번에는 둔한 나에게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분명 모래 냄새가 아니라 굉장한 추위였다. 조드푸르도 사막인데 갑자기 딴 나라에 온 것처럼 추웠다. 사막의 일교차가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황스러웠다. 침낭을 온몸에 둘둘 감은 채 자이살메르 역에 내렸다. 추위는 공포를 불러들이는 법인지 몰려드는 릭샤꾼(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릭샤를 끄는 사람들이지만 숙소의 호객 행위도 같이 하는데 끔찍하게 끈질기다)들이 성가시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몰려든 릭샤꾼들 중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을 따라 성城안의 디팍Deepak이라는 숙소로 갔다. 디팍은 성벽에 붙어 있는 방들이 여러 개 있어서 꽤 훌륭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디팍 숙소에 모인 우리 일행은 열 명이다. 각자 따로 온 여행이지만 우리는 오사카 공항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뭉쳤고, 자이살메르까지 낙타사파리를 위해 각자의 일정을 수정하면서 함께 왔다(사실 인도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일정이 없기는 하다). 낙타 사파리에 관한 안 좋은 소문들은 여러 가지다. 사막에서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두어 명씩 갔다가는 짐만 몽땅 잃어버린 채 사막에 버려지기도 하고, 여자끼리 간 경우에는 더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낙타 사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얼떨결에 뭉친 우리 일행은 서로에게 참 고마운 동반자들이다.


내일 오후에나 떠날 사파리를 지루할 만큼 오랫동안 흥정을 끝내고서야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다. 시간은 이미 새벽을 넘어섰지만 해가 늦게 뜨는 서쪽 나라 인도의 밤은 아직 칠흑이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몸은 지쳤는데 내 의식이 나를 일으켰다. 푸르게 날이 밝아 온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방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허물어진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직 어둠은 그대로지만 저쪽 끝 귀퉁이부터 푸른 새 날이 조금씩 기어 들어오고 있는 게 보인다. 무너져 내린 성벽들 사이사이 어둠 속에 있던 가로등 불빛들이 푸른빛과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데, 난 그 모습에 울고 싶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불빛은 저 드문드문 별처럼 놓인 가로등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졌고, 또 순간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졌다.


그리움을 안고 사막을 건너다


사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은 분주하다. 사막에서 먹을 식량을 사야 하고 생명 같은 물도 챙겨야 하고 아직 겪어 보지 못한 사막의 밤 추위에 대비해서 옷도 준비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도 우리 모두 사막과 낙타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사파리는 지프Jeep로 사막 한가운데의 한적한 마을까지 간 후에 그곳에서 낙타를 타고 마을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진행된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른바람이 불었고 낙타와 낙타 몰이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낙타가 생각보다 엄청 컸기 때문에 처음 낙타에 올라탈 적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낙타는 그 긴 다리를 구부려 주저앉아 있다가 한 번 휘청하면서 일어나는데 그 모습이 꽤나 우아해 보였다.


나와 이틀을 함께 할 녀석은 ‘마두’라는 이름을 가졌고 깊은 눈을 하고 있다. 낙타 타기는 성질 급한 말을 타는 것보다는 한 열 배쯤 쉬웠는데 그래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고개 들어 끝도 없을 사막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마두와 나만이 이 모래 언덕을 넘고 있는 것 같아 근사한 고독이 느껴지기도 했다. 괜한 쓸쓸함 때문이었을까.. 모래언덕과 모래언덕 사이 마른나무 힘겹게 서 있는 그 어디쯤 마두는 분명 그리움의 흔적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심스러운 마두가 그렇게 허둥거리며 깊은 눈을 만들 리 없다. 그리움이 가득 찬 마두의 목덜미를 천천히 쓰다듬어 본다. 오래 알고 지낸 속 깊은 친구 같다.


마두의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사막의 밤을 보낼 적당한 곳을 찾았다. 낙타를 쉬게 하고 우리도 젤 높은 모래 언덕 위로 미끄러지면서 뛰어 올라가서는 일몰을 지켜봤다. 인도의 일몰은 언제나 아름다운데 사막의 일몰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저 모습이 혹시 한 장 넘기면 사라질 그림 속의 모습은 아닌지 불안해서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막에서 어느 날 태양이 떨어질 때 내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막의 밤은 별들의 속삭임으로 시끄럽다


정성스러운 낙타몰이꾼들은 우리를 위해 생강을 짓이겨 넣은 거친 짜이를 끓였다. 모래가 씹히는 그 거친 짜이는 사막의 일몰처럼 사진 속에 담고 싶은 맛이었다. 탈리로 저녁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낙타몰이꾼들은 추위를 이겨 낼 모닥불을 만드느라고 분주히 움직였다. 그 모닥불 앞에서 우리는 밤이 깊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 낙타몰이꾼의 노랫소리는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일깨워 주었다. 가슴 밑바닥쯤에서 끌어올린 그 소리는 노인의 소리처럼 구슬프지는 않았지만 청명한 깊이가 있어서 모래바람 타고 우리의 가슴 끝을 건드렸다.


손을 뻗으면 잡힐 만큼 가까운 거리에 뜬 달이 신기해서, 쳐다보며 우리는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하늘을 본다. 새까만 하늘에 모래만큼 많은 별들이 둥글게 나를 감싸고 있어서 난 우주 속에 버려진 것만 같다. 얼어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돌이 개들이 어디서 왔는지 내 옆에 킁킁거리며 눕는다. 그런데도 난 소리치며 일어날 생각이 없다. 그냥 모든 게 이대로 괜찮다고 별똥별들이 떨어지며 속삭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시간이 서서히 흐른다. 이제 더 이상 별의 속삭임도 추위를 쫓아내지 못할 때쯤, 내 눈에 마두 녀석이 들어왔다.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서는 고개를 우아하게 쳐들고는 한 곳만 응시하고 있는 마두. 나는 낙타라는 동물이 어떤 모습으로 잠드는지 모르지만 지금 마두의 모습은 분명 자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래언덕 어딘가에 무슨 그리움을 가지고 있기에 저 녀석은 저토록 처연한 것인지.


어느 시인은 눈 내리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라고 들린다고 하던데, 지금 나에게는 별똥별 떨어지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위로하는 것 같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새벽 별은 지치지도 않는다. 마두도 나도 그리움을 풀어놓는다.


사막의 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당신의 꿈이 아직 머무는 곳, 인도] 3편은 이천 년 초 60일 인도 배낭여행기 중 일부 시리즈입니다. 다시 글을 쓸 준비를 하며 예전 글을 찾았습니다. 그 시간에, 그 감성에, 그 모든 것들에 젖어봅니다. 어쩌면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hoto by.S.O.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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