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이 아직 머무는 곳, 인도

푸리Puri_ 사람이 여행보다 아름답다

by mita


푸리Puri


푸리에 관한 기억은 온전히 사람에 관한 기억이다.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푸리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여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를 회복시킨 사람들. - 누구든 가족으로 받아주는 니남부 사람들. 물건 파는 일에는 별 재주가 없는 상점 사람들. 걷는 것보다 느린 릭샤 할아버지. 무심하지만 작은 웃음만으로 날 감동시킨 요리사 아저씨. 그들이 푸리에 산다.



푸리는 인도 동쪽의 작은 해변 마을이다. 거대한 힌두 사원인 자간나트Jagannath 사원이 있긴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차피 이 사원은 비힌두교인에게는 출입을 금한다고 한다). 단지 난 평화로움과 한가로움이 필요해서 이곳 푸리를 찾은 것이다. 캘커타 하우라 역에서 푸리로 들어오는 기차 여행은 다른 때보다 편안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자유로웠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몸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푸리에서 다시 어디로 떠나고 싶어질 때까지 집처럼 편안하게 쉴 생각을 하니까 고된 기차 생활도 즐거웠던 것이다.


푸리 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이 조금 지난 때였다. 바다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바람까지 상쾌하다. 역 앞에서 짜이를 사 마시며 순박한 릭샤 아저씨들과 장난치듯 흥정을 한다. 이 작은 마을은 사이클 릭샤도(자전거를 이용한 탈것) 많이 보이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해변가로 갔다. 릭샤꾼은 자꾸만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해변가로 가겠다고 약간은 엄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를 좀 더 귀찮게 했을 것이고 지금 막 도착한 푸리를 지겨운 곳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푸리의 해변은 거칠지만 우아하다. 파도가 거칠어서 수영은 엄두도 못 낼 정도이지만 오랫동안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을 그런 바다다. 해변 근처에다 숙소를 정했다.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아담한 곳이었는데 나는 들어가면서부터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마당에는 조그만 화단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정갈하게 빨아 넌 빨래가 있었고 수줍음을 타는 어린 소녀가 먼지를 쓸어 내고 있었는데 괜히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이곳 니남부 게스트 하우스Ninambu G.H에서 나는 열흘을 묵었다.


푸리에서 나는 늦잠 자고, 마당에 나와 책 읽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돌아다니고, 배 들어올 시간에는 구경 나가고... 방학 날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간 것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그래서 이 곳 푸리에서는 사람들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파도 소리 들리고 햇살 가득 들어오는 마당을 가진 그림 같은 집. 니남부에는 아미트 아지트 형제가 있고, 힌두교인으로서 만족하는 아저씨가 있고, 말은 없지만 웃음이 예쁜 아줌마가 있다. 어리숙한 누런 고양이도 빼먹지 말아야지.


아미트는 18살, 아지트는 16살 난 소년들이다. 아미트는 태권도에 관심이 있고(푸리에는 오리샤주를 대표하는 태권도 체육관이 있다) 여러 나라 동전을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내가 해변이 보이는 마당 의자에 나와 앉아 있으면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와서 무슨 책이냐고 묻기도 하고(주로 일본 여행자들이 놓고 간 일본책이었다) 학교생활 얘기를 해 주기도 하고 참 정 많은 녀석이다. 아지트는 형 아미트랑은 달리 예술적인 아이다. 싸움을 젤 싫어하며 자신은 비폭력 평화주의라고 늘 강조한다. 수줍음도 많아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미소년다운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대해 줬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멀리서 아지트가 자전거를 타고 오며 손을 번쩍 흔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싱그러워 보이는지, 두 손을 흔들며 이름을 크게 불렀던 일도 있었다. 아미트는 건강한 녀석이었고 아지트는 아름다운 녀석이었다고 기억한다. 니남부 아저씨랑은 영어 한 단어 한 단어로 대화를 했는데도 마음 깊이 모든 것을 다 이해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너그럽고 편안한 분이다. 아줌마는 자주 뵐 수는 없지만 웃음이 참 좋으신 분이다. 어느 날 나는 그럴듯한 채소들을 사 와서 깍두기를 담가 빨리 익으라고 햇볕 아래 놓아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벌건 깍두기를 보고는 ‘이걸 진짜 먹을 생각인 거니?’라고 물으며 아기처럼 웃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면서 거리에 있는 상점이란 상점은 다 다녀 봤다. 뭐 물건을 산 건 아니지만 그들이 불러서 혹은 내 멋대로 들어가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나누다가 나오곤 했다. 그것이 푸리에 있는 동안 나의 즐거운 일과였다. 여러 상점들 중에는 파키스탄 청년이 일하는 옷가게와 해피맨이라고 이름 붙인 아저씨가 하는 옷가게도 있다. 파키스탄 청년이 모델처럼 잘생겼기 때문에 나는 그를 보러 자주 갔다. 그렇지만 세상은 공평한 것인지 그 청년은 다른 인도인들처럼 정답지 않았다. 그래서 사흘쯤 됐을 때부터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지나가다 얼굴을 볼 때면 ‘녀석, 인물은 진짜 좋네!’라는 감탄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피맨 아저씨는 그 반대다. 평범한 외모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웃음이다. 장난기 넘치는 웃음은 그와 얘기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만 보면 저절로 즐거워지기 때문에 나는 해피맨이라고 불렀다. 해피맨의 가게에 놀러 가면 늘 짜이를 대접받곤 해서 뭔가를 사야 될 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해피맨의 가게에는 살 게 하나도 없다. 죄다 비싼 거뿐이었으므로. 그래도 해피맨 덕분에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은 아주 작은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었다. 해피맨은 내가 푸리를 떠날 때 진정으로 아쉬워하며 걱정해 주었다.


사람 숲을 지나니 내 혼이 깊어진다


푸리는 대마초의 잎이나 새싹을 말린 방bhang을 합법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마초 매매를 목적으로 푸리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다. 히피들이나 일부 여행자들이 밤마다 레스토랑에 모여 방을 하는데 그 광경은 사실 재미있다. 몽상과 환각 속에 취해 어쩜 안쓰러워 보이고 어쩜 행복해 보이기도 하는 그들이다. 나도 바라나시에서 방을 넣은 랏시(요구르트의 일종)를 마셔 봤는데 전혀 반응이 안 와서 실망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별로 매혹적이지 않았다. 해변에서 만난 일본 여행자 카즈오의 친구도 늘 방에 취해 있었다. 낮에는 늘 아픈 사람 같다.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는데 한 한 달은 앓다 나온 사람처럼 기운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까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환각이 매혹적인가... 잠시 의아했고, 또 잠시 슬픔 같은 것도 느껴졌다.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은 걷는 것보다 더 느렸던 사이클 릭샤 할아버지. 그리고 길가의 작은 식당 아저씨.

푸리 옆에 있는 코나륵에 가려고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이었다. 하루 안에 돌아와야 하니까 오토릭샤를 탈까 하다가 사이클 릭샤를 탔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할아버지는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같았다. 더워서 땀은 삐질삐질 나고 목은 타고 시간은 흘러가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물론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페달을 움직였다(사실 그냥 끌고 간 적이 더 많았다). 옆에서 걸어가던 사람들은 벌써 보이지 않을 만큼 앞질러 가고 있는데.. 이쯤 되면 할아버지가 나한테 미안해하리라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되레 조금만 언덕이 나와도 나보고 내려서 걸으라고 한다. 코나륵을 못 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난 뻔뻔스럽게 당당한 이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나온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할아버지는 원래 흥정한 가격보다 더 달라고 한다. 순간 말문이 막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거짓 없는 뻔뻔스러움이 웬일인지 좋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멀어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작은 식당 아저씨. 먼지 풀풀 풍기는 곳이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나는 길가의 식당을 자주 이용했다. 나무로 기다랗게 만들어 놓은 작은 식탁 하나가 전부인 식당이다. 아저씨는 늘 때가 쪼록쪼록 한 흰(?) 메리야스를 입고 그 위에는 역시 때가 쪼록쪼록 한 앞치마를 하고 있다. 자주 가는 나에게 말 한번 걸지 않을 만큼 무뚝뚝한 분이지만 난 그게 편했다. 어느 날 초우민에 뿌릴 칠리소스가 다 떨어졌다고 얘기했더니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셨다. 내가 초우민을 거의 다 먹어 갈 무렵 아저씨는 땀을 뚝뚝 흘리며 칠리소스 한 병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칠리소스를 건넨다. 그냥 오늘은 없다고 해도 될 것을 멀리까지 가서 사 온 것이다. 이미 초우민은 다 먹고 없지만 나는 아저씨의 꾸임 없는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푸리를 떠나는 날 아저씨는 악수를 청하며 약간 웃어 주었다. 언제 다시 푸리에 가도 그곳,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을 거 같은 그런 풍경이다. 사람도 풍경이 될 수 있다.


지친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사람들. 내가 떠나는 날 몰려나와 인사해 주던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난 아주 많이 행복했다. 어떤 시인은 자신이 가장 슬펐을 때도, 가장 기뻤을 때도 그건 모두 사람 때문이었다고 했다. 푸리에서 나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란 것을 가슴 깊이 배웠다. 나도 누군가의 삶을 촉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




[당신의 꿈이 아직 머무는 곳, 인도] 3편은 이천 년 초 60일의 인도 배낭여행기 중 일부입니다. 다시 글을 쓸 준비를 하며 예전 글을 찾았습니다. 그 시간에, 그 감성에, 그 모든 것에 젖어봅니다. 어쩌면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