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에서 함피로 함께 이동한 동생이 떠나고 혼자 남은 함피에서 딱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저 라자스탄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지 정도만 생각할뿐이고 우선 아이들을 좋아하니 길 가다 우연히 본 함피 칠드런 트러스트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사진을 찍어볼까? 그게 아마 그 당시 생각이었는데 아이들과 아침 저녁으로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외곽 유적지 한켠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의 부모들과 친해지고 그러다보니 그냥 그렇게 마을사람들 속에 파묻혔다.
함피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동네였고 보름쯤 지나니 자주 가는 가게들은 500루피 받고 돌려줄 잔돈 없다고 내일 와서 달라고 할 정도로 신용(?)이 쌓였고,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면 낮에 함께 하던 아이들이 가족들에게 소개시켜주며 다음에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곤 한다. 칠드런 트러스트에서 선생님을 하던 동갑내기 친구의 남편은 맨날 집에 누워 뒹굴거리며 짜이한잔하고 가라곤 하는데 워낙 마르고 늘어지고 헤진 셔츠를 입어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말쑥하니 참 잘 생겼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가보다...
아빠 닮은 사비의 아들 수레샤. 인도인 답게 팔다리도 길쭉길쭉 하다 커서 느끼해지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별다른 일 없이 새벽이면 마탕가힐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내려와 아이들에게 아침을 해주고 숙제를 도운 다음 정오에는 근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로키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난 30대중후반의 한국 여성 여행자는 여행이 이렇게 길게도 가능하구나라는걸 처음 알게 해주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동안이지만 잔잔한 호수같으면서도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한곳에서 오래 머무르며 친구들의 흐름을 따라 4년째 여행중이라고 했던거 같은데 아마도 그 순간이 어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깨준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이렇게 살아도 잘 지내지는구나. 의식의 흐름대로....너무 걱정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살아도 모자람 없이 지낼 수 있구나.(다만 몇 가지는 포기해야하는게 사실이고 그것을 가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지 몇일 후에 함피 칠드런 트러스트에 봉사자들을 위한 방이 있고 하루에 100루피 밖에 안한다고 하여 방을 옮겼다. 오후에 딱히 할일이 없다 보니 오늘은 안 가본 새로운 카페에 가서 앉아본다. 그러다 들려오는 소식 중 하나는 함피 강건너로 가면 고기음식도 팔고 술도 판단다. (비루팍샤 사원 강 안 쪽은 성지로 되어 있어서 술과 고기 음식이 금지다.) 강 건너엔 놀러갈곳도 많고 히피들도 많아서 재미있다고 하는데 매일 새벽마다 강을 다시 건너올 수도 없으니 우선은 포기하고 다음에 언제 한번 정오에 놀러가야지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은게 그렇게 그곳에서 놀았다면 재미는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함피 사람들이 고향마을 사람들처럼 그립지는 않았을것 같다.
방금 가르쳐 준 수학문제도 금새 다시 물어보는 로힛. 자신있게 답을 말하곤 적어달라고 연필을 내밀며 미소짓는 모습에 내가 어쩌겠니....적어줘야지...
함피에 온지도 어느 새 20여일 이제 칠드런 트러스트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이름도 다 외워갈 즈음 처음 보는 작은 아이가 자꾸 계단에서 흘끔 흘끔 쳐다본다. 누군가 하고 내려다 보니 활짝 웃으며 손을 펼치는 나가. 조띠의 동생이라는데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HCT(함피칠드런트러스트)에는 못 온단다.
인도에서는 나름 멋있는 이름을 지어준거 같은데 정황상 나도 모르게 나가 나가라고 장난치게 된다. 매일 아침 선명한 콧물자국과 해맑은 웃음의 빙구미로 볼매인 아이다.
점심을 먹으며 건너 테이블에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너 꽤나 오래된 렌즈를 들고 있네. 혹시 그거 짜이츠 렌즈야? 우연히 만나 비슷한 관심사로 이야기를 하게 된 친구는 프랑스에서 온 마이클. 매해 겨울이면 함피에 와서 사진을 찍고 네팔에 가서 트레킹을 한다고 한다. 네팔에 가면 장난 아니게 아름다운 몬테인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코스가 있다고 자기와 함께 갈 생각 없냐며 한시간 동안 몬테인을 100번을 들으며 물어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몬테인이 어디냐고...나중에 알고 보니 마운틴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한거였다.....................그리고 만카리는 그 빌어먹을 몬테인 마이클의 뮤즈인데 이 날 하루 나에게도 모델이 되어 주었다.
만카리가 자신의 뮤즈라고 자랑하는 미카(마이클)에게 나도 질 수 없어 자랑했던 스위티. 사진을 찍고 나니 옆에 서 있던 오토릭샤 기사가 자기 딸이라며 자랑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집에서 부르는 이름도 스위티...집에는 여행와서 사진 찍은 사람들이 현상해준 걸 모은 앨범이 있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진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그저 단순한 인도 아이들의 얼굴 사진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질 수 있는게 함피의 매력이었다. 조금은 작아서 심심할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몇일만 지내면 누가 누구의 아이고 친척이고 무슨일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는 그런 매력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이 모습을 볼 수 없다. 유네스코 지정 이후 마을 끝 자락에 모여 살던 주민들이 강제 이주 되었기 때문에 함피에는 그 전처럼 해맑게 뛰어놀던 아이들과 가족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가게들과 많은 사람들이 비루팍샤 사원에 살고 있지만 장사를 하지 않는 그냥 영어도 잘 하지 못하던 순수한 마을 사람과의 관계는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추억이 되었다는게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