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석 달이 되어가는 요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 그 외로움이
묻어나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글을 보여주셨다.
한참 누리꾼들 사이에 회자되던 글인데
요약하자면 아버지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마음속으로 우는 사람이란 내용이다.
아버지께서는 이 내용이 바로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작년 7월 말.
엄마의 치매와 노환이 악화되어
가족들의 부양만으로는 점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고
아버지는 영원한 이별의 예행연습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엄마가 요양원 입소를 하시고 나니
죄인 같은 마음에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맘도 허전하고 우울해서
여름휴가라는 명목으로 바람을 쐬기로 했다.
목적지는 가평 설악 고모댁.
아버지의 막내 동생이니 다른 곳에 가는 것보다는
지내시기도 편하고 맘에 위로도 되실 거라
생각하여 정한 곳이다.
오후에 물을 좋아하는 손녀딸을 위하여
시냇가에 물놀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아버지는 집에 계시겠다고 하셨다.
한 시간 여가 지나 고모집에 돌아왔는데
커다란 마당 한편에 혼이 나간 모습으로
망연자실 서 계신 아버지를 보았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버지~
-아버지~
왜 나와 계세요?
-응, 외양간에 양이 한 마리도 없구나.
-고모부가 풀 먹이려고 데리고 나가셨어요.
그래서 놀라셨어요?
본심을 감추고 딴소리를 하시던 아버지가
드디어 꺼내신 말씀.
-네 엄마한테 방금 전화가 왔어.
-예엣? 엄마가 어떻게 전화를요.
뭐라셔요...
-지금 내가 갇혀있으니 나 좀 빨리 구해달래.
어떡하냐?
아버지는 엄마 전화를 받고
엄청 놀라 밖으로 튀어나오신 것이다.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으셨을 거다.
그러나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시느라
애쓰심이 보인다.
치매로 기억이 하나하나 지워지시는 가운데도
아버지 전화번호만큼은 기억하고 계시던 엄마.
어떻게 몰래 전화를 하실 수 있었는지 수수께끼다
가평에서 돌아오는 날.
큰 시누님께서 아버지를 위로해드리고 싶다며
모시고 오라고 전화가 왔다.
일 년 전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혼자 몸이 되신 형님.
아버지의 맘을 헤아려 주심이 감사하다.
함께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셨는지
자식들에겐 감추어 두셨던 말을 털어 내신다.
엄마가 요양원 들어가시던 날 밤.
아버지는 솜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엉엉 소리 내어 우셨단다.
자신의 어머니 생각에 우셨다고 강조하셨지만
누가 그걸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엄마는 요양원에 적응을 못 하시더니
결국 빠르게 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의연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일상생활로 복귀하셨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를 우리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49재날, 추모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집이 빨리 나가게 되었다.
최대한 짐도 줄이고 엄마의 흔적을 없애려고
많이 버리고 나눠주고 바자회에 기부도 했다
우리 집으로 이사오시고
아버지와 함께 물건들을 정리하던 날.
버린다고 버렸건만 곳곳에 묻어 있는
엄마의 흔적과 유품들.
아버지는 내 앞에서 결국 손수건을 꺼내드셨다.
눈물을 닦으시며 내게 말씀하신다.
-마리아야.
이 수건이 뭔지 아니?
아버지의 눈물 수건이다.
밤낮으로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남몰래 꺼내어
눈물을 훔치셨을 그 눈물 수건.
나도 함께 고이는 눈물을 닦아낸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수면제를 드셔야 주무실 수 있다는 아버지.
겉으로는 무관심한 듯 씩씩하게 일상을 사시지만
속으로는 몇 배의 울음을 울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