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성숙 Mar 18. 2024

늙음을 인정하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7년이나 되었다. 지금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한창이다. 우리 동은 1순위로 공사를 마친 상태다. 새 엘리베이터에는 아이들도 누를 수 있게 층수를 누르는 버튼의 위치가 전보다 아래쪽으로 바뀌었다. 맨 아래쪽에 위치했던 닫기 버튼도 비상벨에게 자리를 내주고 새 위치로 옮겨졌다.


새 엘리베이터가 가동되던 날. 남편과 외출을 해야 했다.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남편 생각에 맘이 바빴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닫기 버튼을 눌렀다. 평소 습관대로 눌렀는데 아뿔싸 비상벨 버튼이었다. 갑자기 비상벨 소리가 나며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어찌 이 상황을 모면할까 난감했다. 다행히도 아직 사무실과 연결이 안 되었었는지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음 날.

위층 사는 언니와 아파트 현관에서 우연히 만났다.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는데 뒤에서는 비상벨 안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를 보자 비상 아니라고 말 좀 해달라며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위층 언니에게 내가 어제 비상벨을 잘못 눌러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던 상황을 이야기하자 그 언니는 난 두 번이나 비상벨을 눌렀다며 깔깔 웃는다. 우리는 동지애를 느끼며 다시 한번 박장대소를 했다.


비상벨을 나 혼자만 누른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생의 언덕길에서  황혼을 바라보며 서서히 내려가는 나의 시간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도 노인이 되어가는 법을 학습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설날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