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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Feb 21. 2024

설날의 추억


1) 윷놀이, 또 이겼다.

외국에서 수도자로 일하던 동생이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 33년 만에 고국에서 가족과 설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시집간 조카도 시댁에 양해를 구하고 들렀다 가기로 했단다. 홍콩댁 우리 딸과 외국에 유학 간 조카 2명이 참석을 못해 아쉽긴 했지만 오랜만에 4대가 모인 설날. 모처럼 가족이 모였으니 윷놀이를 하자고 예슬 조카가 제안을 했다. 시집가기 전 늘 할머니 집에 모여 다 같이 윷놀이하던  설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겠단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녀로 편을 나누었다.

윷놀이의 승리는 수년간 늘 여성팀의 것이었다.


이번에 새로 가세하게 된 손주, 손녀들과 새신랑. 새로운 팀이 구성되자 남성 팀은 이번 설엔 승리 좀 해보자며 아자아자를 외친다.

 


말판은 늘 여성 팀을 승리로 이끄는 우리 집 말판두기의 마술사인 셋째 동생이, 남성팀 말판은 유능한 서울대 출신 새신랑 조카사위가 맡았다. 장모와 사위의 말판 대결도 흥미롭다.


3판양승으로 경기 규칙을 정하고 남성팀이 선두로 윷놀이는 시작되었다.


너스레를 떨며 심리전을 펼치기도 하고 1점이라도 앞서보려고 억지를 써보기도 하고, 말판을 교란시켜 이겨보려고 애를 쓰는 등 자기편을 응원하며 함성과 환호로 즐거움은 커가고, 상대 팀의 아쉬운 탄식에 또 자지러지게 웃어대며 모두가 함께 신나는 윷놀이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첫 번째 판. 게임 후반의 말판이 남성팀에게 유리해 보인다. 잘 나가는 말판을 보며  이번판은 이기겠거니 생각했을 남성팀. 그러나 여성팀에서 막판에 연거푸 모와 윷이 터지며 승리를 하게 되었다.


남성팀은 아쉬움을 달래며 으쌰으쌰 재도전을 한다. 이제 개 이상만 나오면 이번 판의 승리는 남자들에게.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이번에도 여자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지막 순간 빽도가 나와버린 것이다.

 

또 졌다는 생각에 남자들은 망연자실. 어이없다는 듯 패배를 인정하고 조카 사위는 서둘러 가족과 친가로 떠났다. 남편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저녁 먹고 다시 한판 붙어보자고 한다.


2) 저녁 윷놀이

저녁에 다시 시작한 윷놀이는 이기는 팀이 치맥을 사기로 했다. 팀을 나누려니 여자가 더 많다.


그때 우리 큰손녀. 상황을 눈치챈 것일까? ”난 심판을 볼 거예요 “한다. 그래서 어른들만 윷놀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도와 개가 많이 나오는 남성팀의 윷판. 말판의 마술사 동생은 여성 편에서 도나 개가 나오면 새 말을 말판에 놓는다. 남자 팀이 우리의 말을 잡고 올라가게 밀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말을 빨리 보내야 하는데 아주 관대하다. 말판의 마술사의 이번 전략은 자연스럽게 져주는 것인가 보다


이때 도와 개가 많이 나오는 것을 알아챈 심판관 큰손녀.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손녀답게 “도 금지 게(?) 금지”라고 큰 글씨를 종이에 써서 들고 나와서는 ”도와 개 금지입니다. 알겠습니까?“하며 경고를 날린다.


그리고는 수도자 동생에게 작은 소리로 묻는다.

“누가 도와 개를 많이 던졌나요?”


끝을 향해가는 윷놀이. 아슬아슬한 골문 앞의 말판 한 점들. 남자팀이 개를 놓아 승리의 문을 먼저 넘었다. 남성팀이 베푼 즐거운 치맥 파티로 사랑하는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기억에 남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던 하루였다. 우리 4세대들에겐 전통을 배우고 새로운 체험을 하는 기회가 되었을 거다.


3) 자고 간대요

저녁시간. 동생들 가족은 떠나고 수도자 동생과 아들 가족만 남았다.


아들 가족은 원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자고 가곤 했었다. 그러나 둘째 소녀가 돌이 지난 어느 날, 잠자리가 바뀌어 낯설어서인지 잠을 안 자고 밤새 우는 통에 새벽 4시에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 가야 했다. 그 뒤로 2년 후. 며느리가 자고 가겠다는데 걱정부터 앞선다. 과연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일찍 잠자리에 드시고 수도자 동생과 우리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 동생의 외국 생활 이야기며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잠을 자려고 이불을 펴는 것을 보자 작은 손녀가 집에 가자며 울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달래던 나와 아들은 아무래도 밤새 울 것 같다며 마음을 접고 문 앞에 짐을 다 챙겨 놓았다. 아들은 집에 가면 바로 자야겠다며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때 우리 큰 손녀가 동생에게 하는 말.

“보아야, 우리 파자마 파티 할까?“

“싫어. 나 집에 갈 거야.“

“보아야. 자는 게 아니고 파자마 파티만 하는 거야. 알았지?“


나와 남편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30분도 안되어 밖이 조용하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다음날 10시가 다되어서야 일어난 손녀들..


나는 작은 손녀를 안고 칭찬을 해주며,

“우리 보아 잘 잤어? 할머니 집에 오면 다음에도 또 자고 가는 거야”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 보아.

큰 손녀의 기지로 1박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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