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2세이신 아버지는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을 지나며 위험한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셨다.
첫 번째 고비는 뜻밖에 치과에서 시작되었다.
이가 아파 방문한 치과에서 처방받은 약 중에는 야뇨증 약이 들어있었다. 왜 이 약을 처방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치과에 갔다온 다음날 저녁때부터 아버지는 극심한 무기력증과 어지럼증을 호소하였다.
다음 날. 내과에 모시고 갔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 증세를 찾을 수 없단다. 잠을 못 주무셔서 그런 것 같다며 수면유도제를 처방해 주었다, 수면유도제까지 드시게 된 아버지는 부축 없이는 걸음조차 걸을 수 없게 되었다.
119 구급차로 실려가신 아버지는 병원에서 종합검사까지 받으셔야 했다. 검사 결과는 어이없게도 약 부작용 이라 하니 너무나 허탈했다.
두 번째 고비는 10월 중순.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던 때였다. 색소폰 야외 행사에 참여하시며 장시간 밖에 계신 뒤 뇌경색이 찾아왔다. 일주일 병원에 입원한 끝에 다행히도 완치 판정을
받으셨지만 그 대가로 아버지는 인생의 즐거움 세 가지를 내려놓게 되었다.
가장 큰 슬픔은 아버지의 일상 중에서 큰 즐거움인 색소폰 연주를 포기하셔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혈압을 올릴 위험이 있으니 더 이상 색소폰 연주를 하지 마시라는 의사의 말은 아버지에게 큰 상실감을 주였다.
또 다른 하나는 담배였다. 의사로부터 “아직도 담배를 피우시네요“라는 말과 함께 반드시 끊으셔야 한다는 경고를 들으셨다.
마지막은 소소한 즐거움 이었던 달달한 커피였다. 하루 서너 잔 드시던 커피도 카페인이 혈압과 심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의 즐거움 세 가지를 한꺼번에 잃으신 아버지의 일상은 급격히 단조로워지셨다. 먹고 자는 것. 공원 걷기. TV와 유튜브 보기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시는데 오른쪽 눈두덩이가 부어 있고 눈곱도 끼어있었다. 그리고 눈썹 위쪽으로 손톱만 한 상처가 두 군데 보였다.
눈주위가 이상해요. 안 아프세요?라고 묻자
자다가 어디에 부딪힌 것 같아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연고를 발라드리고 안과에 갔다. 눈에 가벼운 염증이 있다며 연고 4가지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나흘뒤. 아버지는 상처가 번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살펴보니 이마에서 머리 쪽으로 상처 딱쟁이 같은 것들이 보였다. 즉시 피부과에 모시고 갔다.
대상포진이라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예방 접종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아직 아프지는 않아요“라고 하셨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위치가 너무 안 좋습니다.
시신경으로 가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고 머리로 번지면 신경통으로 고생할 수도 있으니 아주 위험합니다”라고 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2주 동안 꼬박꼬박 약과 연고를 챙겨드렸고 두 번의 예방접종도 하신 덕분에 다행히도 큰 합병증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색소폰을 손에서 내려놓으시며 취미가 사라진 아버지가 점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무료함을 달래 드리고 싶어 경로당에 가보실 것을 권했지만 맨날 화투만 친다며 단번에 거절하셨다.
노치원에 가보자고 말씀드리자 치매 걸린 엄마가 다니셨던 기억 때문인지 노치원을 내가 왜 가냐며 싫다 하신다.
성당 경로 대학은 어떠시냐 묻자, ”내가 경로 대학 만든 사람이야. 이제 배워 뭐 하겠어“하며 웃어넘기셨다.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독서 모임을 주선해 드렸다. 한 달 동안 책을 읽고 자료를 준비하시고는 모임날을 기다리셨다.
모임 당일. 귀가 어두우신 아버지는 대화 내용도 잘 듣기 힘드셨고 한 세대 차이가 나는 아주머니들의 진행 속도도 따라가기 힘드셨나 보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동행했던 남편에게 이제 그만 가자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셨단다.
마지막으로 색소폰 원장님의 권유로 전자 색소폰을 사드렸다. 몇 번 만져보고 불어보시던 아버지는 그 맛이 안 나시는지 전자 색소폰을 내려놓으셨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갈 곳도 놀 곳도 할 일도 줄어드는 나이.
외로움은 피할 수 없고 자식으로서 도와 드릴 수 있는 데에도 한계를 느낀다.
과연 백세 시대를 살아갈 세대들은 행복한 노후를 위해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