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현대 한국에서 ’아버지‘라는 이름

by N잡러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말하기는 쉽지 않다. 동화처럼 슬플 때도 행복하고 기쁠 때도 있기에“라며 영화는 시작한다. 또한 ”이것은 나의 이야기며 날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것은 아버지가 내게 남긴 선물이다.“는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아마 끝부분의 나레이션을 앞부분에 넣었다면 영화 내용 스포일러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2부작 영화처럼 남녀 주인공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을 전반부에 보여주고, 5년 후 아들의 모습과 함께 유대인 수용소의 생활 모습이 후반부다. 영화 장르가 드라마 코미디라 전반부는 정말 코믹하다. 신분 차이가 나는 남녀의 사랑,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자가 있는 로라는 외모나 경제력도 변변치 않은 귀도를 선택한다. 전반부인 1939년 당시 이탈리아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1939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다. 후반부의 수용소 생활을 암시하듯 삼촌이 유대인인 것을 초반에 불한당들에게 공격받는 모습이나 이후에 삼촌 말의 몸에 노골적으로 유대인이라 쓰고 해골을 그려놓는다.


유대인과 수용소는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독일은 우생학 이론을 내세우며 유대인과 동성애자, 장애인을 말살한다. 독일인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리아인종 전체가 우월한 인종이며 반대로 유대인은 열등한 인종으로 정해버린다. 그러면서 말살 정책을 정당화한다. 영화에서 로마에서 온 장학사가 학생들에게 이탈리아 민족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장학사가 아닌 귀도가 자신이 순수 아리아인의 후손이라며 자신이 잘 생겨서 자신을 보냈다고 한다. 이탈리아도 독일의 인종주의 정책을 함께한 나라였으니. 유대인인 귀도가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며 나치 우생학을 비꼬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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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순수한 혈통인 아리아인을 오염시키는 존재이며 우생학적으로 정신병자, 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여긴다. 나치의 T-4 안락사 프로그램 전선 문구에는 ”유전 장애를 겪는 이 사람은 사회에 생애 동안 60,000 제국마르크의 손실을 입힌다. 동료 독일인이여, 그것은 또한 당신의 돈이다“ 쓰여 있다. 영화에서는 로라의 결혼 발표 파티에서 교장선생의 ”정말 뛰어난 민족이예요.“라며 감탄하는데 독일 시골에서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푸는 문제를 예시를 든다. 독일이 장애인인 절름발이에게 4.5마르크, 간질 환자에게 3.5마르크를 매일 쓰고 있는데 이를 평균으로 4마르크로 하고 전체 30만명의 장애인에게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지 그래서 장애인을 ’박멸‘하면 하루에 얼마를 절약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문제를 푼다는 것이다. 로라는 그런 문제를 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 ”놀랍네요.“라고 했고 이를 교장선생은 비율과 백분율, 방정식을 알아야 풀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하며 ”놀랍다“고 한다.


e지식채널 ’공부 못하는 나라‘라는 영상이 있다. 독일의 교육법에 관한 영상인데 뒷부분에 ”한 때는 주입식 국민 교육제도와 선진 학습법의 수출국이었던 독일 그 교육이 키운 괴물, 전쟁과 우월주의“라는 자막이 나온다.


학교에서는 나치즘에 바탕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교과목들을 재구성하였다. 민족주의와 반유태주의를 토대로 한 나치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교과는 역사, 지리, 생물, 체육, 유전과 인종학(Erblehre und Rassenkunde)등이었다. 나치 독일은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공공연하게 정당화하였고, 그 결과 역사 교과서는 독일의 위대함과 1차 대전에서의 패배에 유태인들이 미친 영향에 대해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재기술되었다. 지리 과목의 교육과정도 슬라브족과 유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독일의 생활권(Lebensraum) 확보, 열등한 민족과 우수한 민족의 비교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다(Pagaard, 2005, pp. 192-194). 인종말살정책이 어떻게 학교 교육에서 진행됐는지 밝히고 있다. 그로 인해 괴물을 키웠다고 본다.


후반부 유대인 수용소 생활은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생각난다.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로고테라피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정신이론을 확립했다. 수용소라는 상황에서도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귀도는 수용소의 삶을 5살 아들에게 맞춰 각색을 했다. 영화의 시작이 1939년이고 5년 후에 5살이 된 아들과 수용소로 끌려간다. 1945년 전쟁이 끝나는 시점을 맞추기 위해서겠지만 5살은 자신만의 생각과 주관이 생겨나고 그렇기에 떼를 쓰기도 하는 나이다. 미래를 위해 감정과 욕구를 자제하는 만족지연이 낮은 나이이기도 하다. 귀도는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하며 점수를 깎이지 않으려면 배고프다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 안 된다고 한다.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조수아에게 안 된다고 하지 않고, 그러자고 하며 상품으로 받게 될 조수아가 좋아하는 탱크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귀도와 함께 밖으로 나갔던 조수아는 비가 오니 감기에 걸릴 수 있다며 가지 않겠다고 한다.


아마 이 영화의 명장면을 고르라고 하면 누구나 조수아를 박스에 숨기고 자신은 총살당하러 가ㅈ만 아들에게 윙크를 하며 유쾌하게 걷는 장면이다. 아들이 게임이라고 느낄 수 있게,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계속 숨어있어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영화에서 귀도는 현대 한국의 아버지로는 적합하지 않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아버지다. 한국에선 회사에서 개인사의 이유로 일을 소홀하게 하면 안 되었던 조직문화, 국가 경제의 주역이었던 산업역군 아버지 등이 아버지들이 회사 일을 우선하게 만들기도 했다. 회사에 입사하면 퇴직도 보장되었던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세대는 야근 수당이 없어도 야근을 하는 것은 당연했고 오히려 일찍 집에 가야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들들조차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아버지는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다.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만 반긴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영화 마지막에 ‘아버지가 남긴 선물’이라고 했는데 귀도는 조수아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슬플 때도 행복하고 기쁠 때도 있는 삶‘을 선물했고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지, 삶을 대하는 태도도 남겨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를 볼 땐 진부하고 코믹하게 전개되는 내용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오히려 곱씹으며 영화가 남긴 여운이 느껴진다. 영화를 한 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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