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안나 카레니나 법칙과 행복한 가정

by N잡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에 ”행복한 가정의 이유는 모두 다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카모메 식당> 영화 끝부분에서는 ”저마다 다 사연이 있군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던 예전 주인에게 하는 말인데,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공감하는 분위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일본 덕후인 젊은 청년을 빼곤 모두 중년의 사람들이다. 저마다 사연이 있을 수 있는 연령대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있다. 『총.균.쇠』의 저자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가축화된 동물을 첫 문장에 대입시키며 법칙이라고 이야기한다. 동물이 가축화되지 못한 이유를 여섯 가지, 가축화된 이유 세 가지를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축화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유라시아 지역에 가축화된 동물이 많은데 그것은 우연한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럼 다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톨스토이가 이야기한 가정으로 돌아오면, 결국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불행한 가정이 되는 이유들 중 하나라도 있다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영화에서는 식당 밖에서 웃지도 않고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여러 번 식당 안을 쳐다보던 핀란드 여성이 어느 날 식당에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술을 시키고 취해서 쓰러진다. 사연은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남편이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푸라기로 저주 인형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놓고 못으로 박는 일본에서 전해 내려오는 방법을 듣게 된다. 마사코는 사치에에게 해봤냐고 물어보고 사치에는 그런 걸 왜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옆에 있던 미도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표정으로 ’난 해봤어요‘를 말하고 있다. 미도리가 누구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예전 식당 주인이 자신의 커피 분쇄기를 찾으러 왔다 사우나에서 돌아온 여성들에게 들킨다. 저주 인형의 주술을 한 핀란드 부인이 식당 주인을 알아보고 묻는다. 부인과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냐고. 전 주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사치에가 배고프다며 오니기리(일본 주먹밥) 만들어 같이 나눠 먹는데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가정이 온전해 보이진 않는다. 사치에에게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던 전 주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식당도 처분하고 가정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마사코는 핀란드로 오게 된 이유가 참 특이하다. 어디론가 떠나려고 했고 그 어디를 정하지 못해서 세계지도를 펼쳐 눈을 감고 손으로 찍어서 선택한 곳이 핀란드였다. 무작정 핀란드로 왔는데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언제까지 있을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사치에와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서 사치에가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 좋다는 제안을 좋아한다. 사치에와의 저녁 식사자리에서 갑자기 운다. 사치에는 왜 우는지 묻지 않고 가만히 휴지만 건넨다. 마치 ’나도 그 마음 알아요’라는 것처럼. 두 사람 다 일본에서 외롭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홀로 떠날 수 있는, 가족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친절하게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내 추측이 틀릴 수도 있다. 짐작일 뿐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부유한 가정에 성공한 남편, 아들까지 있는데도 왠지 허전함을 견디지 못했고 그걸 젊은 남자와의 사랑으로 채우려다 모두 잃고 말았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서 불행한 가정은 불륜, 외도나 영화의 중년 부인이 겪은 갑자스런 일방적인 떠남 같은 사랑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 경제가 무너지고 결국 가정이 파탄 나기도 한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허전함, 외로움 등 정서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아파서 혹은 누군가 범법자가 되거나 하는 어떤 한 가지의 문제가 생겨도 불행한 가정이 된다.


그럼 안나 카레니나 법칙의 행복한 가정은 모든 불행한 가정의 요소가 없어야 하는 것으로 본다면 행복한 가정이란 참 적을 뿐만 아니라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총균쇠에서 ’우연한 환경‘이란 결론이 <카모메 식당>에 모인 여성들에 해당한다. 우연히 핀란드에 와서 우연히 카모메 식당으로 왔고 우연히 가족이 되어 같이 살게 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밝힐 필요도 없이. 혈연으로만 맺어진 가족에게서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하니까.

현대엔 가족의 형태가 정말 다양하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도 하고, 비혼 여성들이 같이 살기도 하고, 책이었지만 이혼한 여성들이 자녀를 데리고 같이 사는 이야기도 있다. 혈연가족만이 가족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어떤 가족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법과 제도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이는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문화란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런 현상이다. 누구의 문화가 옳고 누구의 문화가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화 우월주의다. 식민 제국주의의 시작이 그러했다.


교육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나는 서로 상충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옳고 그름이 확실하고 어찌보면 옳음을 가르치는 학문이고, 문화는 그런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니까. 가족의 형태,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같지만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가 가족이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카모메 식당 영화를 보며 여러분은 어떠신가? 가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내 생각은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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