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의 비애, 습관의 고리
시키지 않은 택배 상자에?
평소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들 녀석, 장대 같은 장맛비로 태워주고 오는 길, 그사이 문 앞에 큰 택배박스가 와 있다. 이 빗속에 싶어 택배 하시는 분들의 고충을 본다. 무겁게 들고 들어왔다. 남편 앞으로 온 택배다. 박스 속 보자기를 풀었다. 메론 상자다.
1층 첫 집의 비애
시키지 않은 택배 상자를 보면서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잠시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40년이 넘은 아파트, 교사이셨던 아버님이 대구 인근으로 발령받아 이사하면서 850만 원 주고 분양받았다는 맨션이 있다. 아파트가 귀했던 시절, 아버님은 그 좋은 맨션에서 얼마 못 사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단다. 그래서 이 집에 더 애착을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집을 지키셨다.
아버님이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 복도식 아파트 1층 맨 첫 집, 우리가 결혼하면서 일을 시작하신 어머니는 직장 근처로 거처를 옮기셨고 사시던 집을 내어주셨다. 촌스럽기 짝이 없던 하늘색 문과 체리색 몰딩을 흰색으로 페인팅하고 도배에 방문과 욕실 문, 씽크대를 교체했다. 25평의 현관 입구는 신발 몇 켤레로 몸살을 앓았다. 수납공간이라고는 작은방에 벽장(잘 열리지도 않는 서랍 하나에 선반 하나)과 거실 겸 주방에 선반 하나 있는 벽장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천정 높이의 신발장과 베란다 코너에 수납장을 짜 넣었다.
내 집은 아니었지만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집이라 더없이 푸근한 시작이었다. 가로로 길게 늘어져 10호까지 있었고 그중에 우리 집은 중간동 101호였다. 살다 보니 1층 첫 집의 애로사항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층의 비애다. 오래된 아파트라 베란다 샷시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여름철에도 문을 열 수조차 없다.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베란다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가 가스폭발 직전을 연상케 했다. 1층이 너무 싫었다.
지독한 하수구 냄새만큼이나 지독한 입덧의 고통을 뒤로하고 사진으로만 뵌 아버님의 선물, 어머니의 그 집에서 남매를 낳았다. 물론 좋았던 기억도 많다. 입주 기념으로 어머니께서 화단에 직접 심으셨다는 해당화와 키 큰 라일락, 해마다 봄을 장식하는 베란다 가득 어머니의 라일락 향기와 인정 넘치는 이웃이 힘이 되었다. 라일락 시절이면 어머니의 라일락 향기가 하수구 냄새를 중화시켜주는 묘한 감동을 맛보기도 했다.
입덧
흔히들 입덧을 다 아는 병이라고 걱정할 것 없다고 가볍게 넘기기 일쑤지만 나는 산송장이 따로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죽을 만큼 힘들었다. 물에서조차 냄새가 나서 물도 마시지 못했고 먹은 것이 없어도 구역질은 계속됐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엄마도 뭐가 먹고 싶은지 자꾸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한 번은 어릴 적 시골에서 먹었던 동태탕이 생각났다. 5일장이 서던 시절, 아버지가 장에 나가 사온 꽁꽁 언 커다란 동태에 마당 텃밭 한편에 묻어둔 무넣고 끓인 개운한 엄마표 동태탕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동태탕이 생각난다는 말에 첫째 조리원 친구였던 한동네 사는 지인이 만삭의 나를 데리고 가까운 식당에 갔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준 동태탕과는 달리 유난히 빨간 국물이 신경 쓰였다. 신경을 곤두세워서였을까 한 모금 채 넘기기도 전에 사레가 들려 바닥에 굴렀다. 119를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숨을 못 쉴 것 같은 불안에 과호흡으로 사흘이 멀다 하고 산부인과며 응급실을 들락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아파트 가득 개나리와 라일락 향기를 느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유난히 많이 울었다. 명절에 친정이나 시댁에 자는 것도 민폐였고, 특히 문을 열고 자는 여름철엔 자다 깨서 우는 아이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둘째를 보는 사람들의 첫마디는
"울기도 울기도 살다가 그렇게 우는 아는 첨 봤다. 왜 그렇게 울었는데? 기억나냐?"
"그렇게 울더니 이렇게나 컸네!! 엄마한테 진짜 잘해야 된다, 너희 엄마가 너 가지고 죽을 뻔했다."
잠을 자면 입덧의 고통을 잊을까 싶어 자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새벽까지 들리는 발자국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길게 늘어진 아파트 우 다다닥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늘 불안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몇 시간째 소리 질렀다 울었다를 반복하는 웬 아저씨의 술주정까지...
1층 첫 집의 비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사
2층이라도 좋으니 1층을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남편과 역세권의 위주로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그 역시도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5층, 8층 등 층이 높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무조건 좋아 보였다.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바로 옆 모델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새 아파트 구경 한번 하고 갈까?" 그렇게 들어간 모델하우스에 빠져 얼떨결에 몇 개 남지 않았던 미분양 아파트를 사게 됐다. 당시 130원 만원의 계약금을 불입하고 나머지는 은행연계 대출이었다. 계획도 없이 덜컹 분양을 받았던 그 아파트가 14년째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아파트다.
입주시기가 다가오면서 몰딩이며 졸라톤, 확장 등의 권유 전화가 많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냥 있는 그대로 입주했다. 새 아파트, 그것도 1층이 아닌 14층이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때가 첫째 4살 때였다. 아파트에는 9시 20분이 되면 어린이집을 보내려는 엄마들이 둘째 유모차를 밀고, 또 업고 그렇게 집을 빠져나왔다. 처음엔 서먹하게 지내다가 나중엔 아이를 보내 놓고 한집씩 돌아가며 차를 마시러 다녔다.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와 젊은 할머니까지 꽤 여럿이었다.
습관
처음엔 다들 깨끗했다. 새 아파트니 두말할 것도 없다. 신발 벗고 들어가기 편하게 정리된 현관이며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는 거실, 바로 차를 끓일 수 있는 주방이며, 환기를 마친 쾌적한 공간이었다. 입주하면서 가구며 가전까지 새로 들인 집도 많았다. 좋아보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시간이 더해질수록 습관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현관에는 큰 신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발이 나와있는 데다 심지어 현관밖에까지 밀려 나온 신발이며, 소파에 널린 빨래며, 바닥에 깔려있는 아이들 장난감이며 이리저리 나뒹구는 슬리퍼에 주방에는 며칠씩 설거지를 하지 않은 듯 싱크대가 넘쳤다. 암막커튼이 그대로 쳐진 데다 둘째와 바닥에서 잔다며 이불을 걷지 않은 안방은 화장실 습기까지 더해 쾌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둘째까지 어린이집을 보내고도 집안일 대신 카페로 다니기 바쁜 10년 아래 이 엄마가 안타까웠다.
한 번은 오후에 하원 하는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가 들린 그 집, 배경이 되어버린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바로 택배 박스다. 중문을 열고 들어서는 오른쪽에 자잘한 택배박스가 탑처럼 쌓여 있다.
"복잡하게 입구에다 이렇게 뒀어? 반품할 거야?"
"아니 언니, 주문한 건데 뜯기도 싫고 귀찮아서..."
"필요해서 산 거 아니야?"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보다가 싸길래 주문한 것도 있고, 엄마 줄라고 주문한 것도 있고 이것저것 샀는데, 언니야 솔직히 그 박스 뭔지 나도 다 몰라!!"
다시 한번 놀랐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뜯지 않는 택배 무덤이 점점 커져갔고 반대성격의 남편과 불란이 일어나기도 여러 번이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습관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 잡는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란 걸 이 엄마를 보면서 다시금 느꼈다.
쉬워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의 택배는 특히 과일 등은 상자째 찍고 내용물을 열어 다시 한번 찍어 톡으로 보내는데, 메론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지금 당장 필요해서 내가 시킨 게 아니라 그대로 식탁 위에 뒀다. 그리고는 낮에 한번 열어보자 싶어 칼로 경계선을 따라 긋는데 헛나가는 칼질에 몇 시간 사이에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다 싶어 그대로 두게 된다. 결국 퇴근한 남편이 뜯었다.
이 택배 상자를 보고 그 엄마를 떠올린 건 같은 이치다. 만약 이 택배 상자가 내가 필요해서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신중하게 골라 시킨 물건이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테고 또 오자마자 개봉했을 거다. 그런데 내가 시킨 것도 아니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아닌 데다 뜯기 어렵다 보니 미루게 된다는 거다. 메론 박스를 왜 저렇게 뜯기 어렵게 만들어놨을까도 생각해본다. 고급스럽게 보여 좋고 또 기능도 감안했겠지만 뜯기 어렵다는 게 결정적인 불편이다. 뭐든 쉬워야 바로바로 하게 된다.
충동구매
그 엄마도 인터넷 서핑하다 팝업창에 뜨는 거 보고 아무 생각 없이 하나 둘 주문하고, 홈쇼핑 보며 싸니까 썩는 물건 아니니 저렴할 때 사서 두고두고 써자 싶어 가볍게 주문했을 테다. 지금 당장 쓸 물건이 아닌 정해지지도 않은 그 언젠가를 위한 물건이니 당연히 주문할 때의 쾌감뿐 그저 짐스런 물건에 불과한 취급이었다. 택배 박스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습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결혼 18년 차 3번의 이사 중 두 번은 지금 사는 이 아파트 내에서의 이사다. 이전에는 30층 중 14층에, 지금은 25층 중 21층이다.
1층 엘리베이터를 나서면 비스듬한 통로가 이어진다. 어린아이들은 씽씽카 등 각종 탈것을 생각 없이 주르르 타고 이동한다. 1층에 살아봐서 안다. 굉장한 소음이다. 층간소음 저리 가라다. 층간소음이야 얕게는 위아래 정도지만 1층 집은 그 라인 전체라의 무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외출했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1층 엘리베이터 앞 다시 말해 현관문 앞에서 더 조심시키게 된다.
수시로 나오는 방송에 얼마 전부터 1층 엘리베이터 입구에 협조문이 붙었다.
쉿! 승강기 앞 대기 시
계단 이용 시 조용히 해주세요.
저층 이웃들이 소음으로 힘들어요!
비 갠 후 해 질 무렵, 집에서 바라본 동네다. 깨끗해진 공기에 먼 산이 성큼이다. 고층 아파트 밀집지역 우리 동네, 저 많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 각자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만 최소한의 예의, 역지사지의 마음인 배려의 미덕이 필요하다. 배려의 미덕을 발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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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턴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유튜브 선생에게 물어본다. 유튜브를 보면서 느낀 점은 분야의 여러 유튜버들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잘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분야일 때는 재생 속도를 늦추고 몇 번을 돌려보게 된다. 그래서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시작하려는 첫 마음의 포기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또한 모두의 성장을 기원하고 기대하는 만큼 일시적인 정리가 아니라 평생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다룬다. '퀸수키 행복발전소' 구독하고 부자 되자! < 퀸수키 행복발전소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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