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아이들 어릴 때부터 조금씩 남긴 흔적을 돌아보는 재미에 그 감사함에 먼 훗날 추억하고 싶어 남겨본다.
고등학교 입학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고3에 마침내 수능일이다. 컴공과 기공을 고집하다 고3 1월 하고도 11일에 느닷없이 미술로 진로를 변경, 입시미술을 시작했다. 2학기 들어서서야 학교 수업을 빼고 본격적인 미술을 시작한 셈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정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얘기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과 입시미술의 격차가 있었던지 힘들어했다. 그러고는 마음을 바꿔 수시 6곳 모두 지원했다. 채 10개월도 못하고 치른 실기고사다 보니 아무래도 본인은 아니지만 엄마로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미술 하면서 공부를 내려놓다시피 한지라 수능이라고 해도 긴장감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담담한 아들, 점심은 좋아하는 고기로 담았다.
시험장이 머지않은 곳에 있기에 느긋하게 준비했다. 여유 있게 아침 먹고 좋아하는 녹차까지 마시고서야 일어섰다.
남편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진아, 편안하게 눈 좀 감아" 잠깐이지만 아들을 위한 편안한 음악이다. 그사이 나는 또 부담 없이 가는 수능장이지만 그리고 책을 본 지도 오래지만 그래도 이왕 치는 거니 기억을 되살려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를 한다.
제26 시험장 대건 고등학교 입구, TV 뉴스를 통해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있다. 교문 앞에서 친구를 만난 아들, 함께 오른다. 아침의 포근함이 오후까지 이어진다. 수능 한파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고3 수험생 엄마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전화에 보내오는 합격기원 선물을 받고 보니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 온라인으로 또 오프라인으로 덕담을 아끼지 않은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보내주신 응원 감사합니다!!"
2021. 10. 30 토요일
이른 새벽 나서는 부자를 내려다보며 멀어지는 차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수시 6번의 실기고사 중 4번은 남편이 동행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나섰다. 토요일이라 남편은 금요일 퇴근길에 기차로 먼저 내려갔다. 수업 다녀와서 미술학원 마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11시가 넘어서야 딸아이와 셋이 울산으로 출발했다.
울산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30분, 몇 번 실기고사를 친 경험 때문인지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긴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들 녀석 덕분에 여행하듯 간 울산이다
이튿날 실기고사 날이 밝았다. 학교와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숙소라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얼마 만에 담은 인증샷인가. 아침을 먹고 남편이 학교에 데려다주러 간 사이 다시 잠든 딸아이는 한밤중이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지인까지 만나고 온 남편과 체크아웃 시간까지 다 채우고서야 일어난 딸아이, 셋은 근처 카페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여유롭게 나는 또 밀린 일을 처리할 수 있어 좋았다. 노트북 챙겨 오길 참 잘했다.
시간 맞춰 데리고 온 아들에게 뭐 먹고 싶냐며 메뉴를 정하다 말고 남편이 꼭 가봐야 하는 데가 있단다. 바로 여기다. 풍경 좋기로 유명한 손에 꼽히는 반점이란다. 바닷가와 인접한 '해동 중화요리'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도 차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제법 쌀쌀한 날씨다. 다들 맛있다고 폭풍 흡입인데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 저 멀리 산속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울산대학교가 들어온다. 해넘이와 함께 돌아오는 길, 두 녀석의 떠들썩한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난다. 언제 적 봤던 모습이었나 싶다. 아들 실기 고사로 함께 했던 울산으로의 가족여행,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편안함은 언젠가 꺼내보며 미소 지을 또 하나의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2021. 11. 14 일요일
숙소를 잡지 못해 새벽 서리 맞으며 나섰다. 가는 길 편안하게 자라고 아들에게 앞자리를 내어줬다. 이 엄마의 불편함은 뒤로하고 최대한 의자를 젖히게 하고는 남편의 조끼 패딩으로 베개를 만들어주며 마치 아기 돌보듯 보듬었다.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주차장은 물론 캠퍼스 곳곳에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즐비한 자동차에 경쟁률이 가늠되고도 남았다. 날씨가 춥다 보니 캠퍼스 내 카페가 북적인다. 겨우 두 자리를 잡았다. 차로 가서 책을 들고 왔다. 기다리는 4시간, 꽤나 긴 시간이니 책 읽기 참 좋은 시간이다. 알뜰하게 썼다.
온전한 저녁형 아니 올빼미 띠인 내가 가장 되고 싶은 건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의 포근함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어 늘 이불속을 고수했는데 오늘 수시 실기 고사로 강제 환경 설정에 나선 새벽형, 나쁘지 않다. 마음이 있으니 언젠가 박차고 나올 이불속, 새벽형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본다. 그리고 또렷이 그려본다.
돌아오는 길 맛집 검색으로 찾아간 문경 약돌돼지 식당, 눈앞에 펼쳐진 들녘의 시골 향기와 함께 늦은 점심이라 더 맛있다.
새벽 운전에 또 4시간 실기 고사로 지친 부자가 한잠에 빠졌다. 이 모습 또한 훗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지. '어머니, 이럴 때가 있었네요.' 하면서 말이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오는 길, 남편과 동네 스벅에 들렀다. 뒤늦게 같은 고3 엄마 두 명이 합류해 평일 아침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아들이 수능을 보는 동안 남편에게 부탁해 그동안 미뤄뒀던 꼬질꼬질 선풍기 개운하게 닦고 목욕도 시켰다. 내친김에 물걸레질도 했다. 덩달아 개운했다.
시험 종료 20여분을 앞두고 나섰다. 학교 일대에는 도로를 막아선 차들로 즐비하다. 멀찌감치 세워놓고 걸어서 왔다. 5시가 넘어서야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아이들, 입구에는 지켜보는 부모들로 인산인해다. 다시 한번 TV로만 봤던 광경이 펼쳐진다. 조금은 낯선 풍경과 함께 아쉬움이 내려앉는다.
아들이 보인다.
"고생했다!! 뭐 먹으러 갈래?"
"어머니, 밥을 왜 그렇게 많이 쌌어요?"
"그렇지, 작다고 생각했는데 밥을 넣다 보니 엄청 들어가더라고"
"어머니, 하나는 국통인 것 같은데요. 많아서 다 못 먹었어요. 배 안 고파요."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다. 쇼핑몰에 수능 도시락으로 검색하니 반찬통 2개 밥통 2개로 4개짜리가 많았다. 이번엔 온라인 대신 집 근처 최근에 오픈한 가게에서 샀는데 반찬통이 작아 당연히 2개 모두가 반찬통인 줄 알았다. 먹성 좋은 아들임에도 너무 많아 남겼단다. 수능이 처음이라 보온 도시락이 처음이라 벌어진 해프닝이다.
"저녁은 먹어야 되니까 간단하게 뭐라도 먹고 가자."
"배 안 고프면 가볍게 묵채 먹으러 갈래? 너 어릴 때 좋아했잖아."
아버지 말에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미술 학원에 들린 아들, 짐을 챙겨 나왔다. 10개월 동안 함께한 입시미술학원 상인 아이엠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월광수변공원에 있는 할매묵집, 오랜만에 갔더니 그 사이에 가게도 주차장도 새 단장이 되어 있었다. 보기 좋았다. 초등학교 때였나 묵채를 먹고는 너무 맛있다며 한 그릇을 더 먹던 녀석이었다. 추억 돋는 오봉 상에 둘러앉아 먹는 묵채와 부추찌짐이 꿀맛이다.
공부하는 것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미술을 하니 나름 힐링의 시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힘듦의 무게를 다 알지 못했다. 2학기 들어서면서 1교시 후에 조퇴하고 간 미술 학원이었다. 한 번은 강의 갖다 들어서니 아들 운동화가 보인다.
미술 학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안방 침대에 이불도 덮지 않은 체 쪼그리고 자고 있었다. 물건 가지러 왔다가 피곤해서 잠깐만 누웠다 가려고 누웠다가 잠이 들었던 거였다. 안쓰러워 이불을 덮어줬다. 곤히 자는 아들을 보며 그제야 '많이 힘들구나!' 싶었다.
단톡방에서 수능 100일 남았다는 얘기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다. 문득 본 달력 채 70일이 남지 않았다. 양초를 주문했다. 특별히 해줄 것도 없고 마음을 담아보자 싶어서였다. 그렇게 한동안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는 마음을 담아 초를 밝혔다.
어떤 날은 그을음이 많이 나고, 어느 날은 불꽃이 유난히 크고, 또 어떤 날은 많이 흔들렸다. 수능을 앞둔 아이들의 마음이요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어떤 날은 건너뛰고 또 어떤 날은 2개도 태웠다.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혀주는 한 자루의 초, 타 내려가는 시간만큼이나 설거지통의 물기도 음식 냄새도 말끔히 걷어갔다. 촛불을 보며 떠오르는 단어가 참 많았다.
이번 수능은 수능 한파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처음이라 그런지 특별한 감응이 없는 평이한 하루였다. 수능이 끝나고서야 엄마들 단톡방이 활발하다. 불수능이란 말도 많다. 마음 많이 졸인 맘의 톡이 올라온다.
"술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조만간 만날 일이다.
"전국의 수험생들 그리고 뒷바라지로 애쓰신 부모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힘들었던 만큼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