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당신이 희망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요 딸은 엄마라는 말이 있다. 장모를 보면 딸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닮는다는 뜻이다. 나는 엄마요 엄마는 나다. 어떻게 이렇게나 닮았을까 싶을 정도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엄마를 쏙 빼닮았지만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딸보다 한참 고수인 엄마, 엄마는 또 하나의 귀한 선물 딸의 인생 2 막을 열어주셨다. 엄마가 열어준 화려한 인생 2막 나의 직업은 정리수납 강사다. 엄마 따라쟁이가 되었을 뿐인데 돌아보니 정리수납 강사가 되어 있었다. 올해로 9년 차, 10년이 코앞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엄마의 좋은 습관이 딸에게 대물림된 것이다. 내 인생 2 막을 열어준 엄마의 좋은 습관 중 정리수납 강사로 서는데 일등공신 세 가지를 들어본다.
어릴 때부터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물건을 쓰고 나면 제자리에 딱딱 갖다 놔야지. 다음 사람이 안 찾지.’였다. 이 말로 미루어보면 우리 집의 물건은 모두 제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물건의 과부하 시대인 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물건의 부족 시대라 상대적으로 물건수가 적은 것도 있지만 엄마 덕분에 우리 집 모든 물건은 항상 제자리가 있었고 대접을 받았다. 어쩌면 난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물건의 제자리를 고수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계기로든 나는 엄마의 좋은 습관 덕분에 길이 열린 셈이다.
80 순을 훌쩍 넘긴 엄마는 오리지널 아날로그 세대다. 엄마는 품삯이 나가거나 자식이 주는 만 원짜리 한 장까지, 모든 물건의 들고남에 있어서는 당신만의 방법으로 꼭 치부책에 꼼꼼하게 적으셨다.
보고 자란 게 무섭다고 했던가! 그 엄마의 그 딸을 인증이라도 하듯 어릴 때부터 메모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가계부를 비롯해 탁상달력, 다이어리가 증거다. 메모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 또한 엄마 덕분이다.
소박하지만 설레는 공간
메모는 정리를 비롯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다이어리에 적고, 탁상달력에 적고 스마트폰 일정에 적고 노트북 바탕화면에 띄우고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띄우고 그것도 모자라 프린트해서 붙인다. 내 책상 앞에는 덕지덕지 메모가 붙어 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나는 장담하건대 메모 습관의 힘이 컸다. 적어야 산다.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강력한 도구, 메모 습관이다.
정리 정돈이라 하면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는 정리와 사용하는 물건의 지정석 만들기 그리고 사용한 물건을 미루지 않고 제자리에 돌려놓는 정돈 거기에 쓸고 닦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풍경을 떠올리면, 창문 없는 대청마루에 흙마당이었고 위채에서 아래채로 연결되는 전깃줄과 도배된 천정 대신 서까래가 훤히 드러나는 방이었다. 메주를 주렁주렁 메단 선반의 시렁에 벽에는 엄마가 곱게 수놓아 만든 가리개가 있었다.
군불로 따뜻한 안방,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면 윗목을 떡하니 차고앉는 장본인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고구마 가마니였다. 머리맡의 자연향, 고구마 가마니의 볏짚 향을 잊을 수 없다. 자연의 향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시절엔 숭덩숭덩 썰어 넣은 고구마 밥과 텃밭에서 바로 뜯은 부추(부추) 숭숭 넣은 국수가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국수상에는 항상 미원이 있었다.
한 방에 모여 자던 어린 시절, 방문을 기준으로 아버지 엄마 동생 나 이렇게 넷이 쪼르르 누웠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알싸한 새벽 공기가 느껴질 즈음 문지방에 올려놓은 아버지의 라디오가 켜지고, 그 시절 노래가 나온다.
"청춘아 내 청춘아~~"
따라 흥얼거리며 아버지는 부엌(정지)으로 가신다. 냄비에 물을 끓여 대접 가득 담으시고 커피, 프리마, 설탕, 투박한 머그컵과 긴 숟가락이 세트로 올라온 쟁반을 들고 오신다. 삐거덕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나는 여전히 자는 척이다. 대접 가득 커피를 타는 아버지 "일어나 한잔하게." 엄마한테 건네는 말이다. 온돌방의 온기가 식을 즈음 새벽의 커피 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커피가 궁금해 참다못해 화장실 가는척하며 일어난다. 커피를 힐끔거린다. 눈치채신 아버지는 "애들은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져서 안된다' 하셨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를 두고 엄마는 "한 모금만 마셔볼래?" 하셨고, 아버지는 "어허, 아들은 안된다니까!!" 하셨지만 강한 부정은 아니셨다. 그렇게 난 야금야금 커피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부모님, 잠깐의 여유로움을 뒤로하고 엄마는 아침밥을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러 나란히 나가셨다. 매일 새벽 아버지가 타 주신 커피에 길들여진 엄마는 막걸리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하신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새벽의 고요함을 만끽하셨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 새벽형은 대물림되지 않았다. 나는 온전한 올빼미형이다.
내 고향 상주는 시골이다. 오전 오후 2대의 버스만 운행되던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주된 일은 농사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안일보다 농사일을 우선시했지만 어린 내 눈에도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엄마는 농사일과 집안일의 비중이 다르지 않았다.
밭 일을 가시기 전에는 늘 집안일을 마치고 나가셨다. 게다가 천정이며 시렁 심지어는 전기선 줄까지 닦고서야 밭일을 나가셨다. 부부금슬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부모님, 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때는 늘 엄마가 전기선을 닦는 청소에 집중하는 때였다. “자네는 전깃줄을 닦으면 밥이 나오는가 돈이 나오는가?” 이런 엄마 덕분에 시골에 살면서도 흙먼지 대신 반들반들하고 뽀송뽀송한 쾌적한 공간에서 살 수 있었다. 정갈하기로 소문난 엄마요 우리 집이었다.
나는 엄마 판박이다. 강의를 갈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바로 옆 슈퍼에 가거나 이웃집에 가는 등 현관문을 나설 때는 집이 완벽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야 개운하게 외출할 수 있다. 그래야 일이 손에 잘 잡힌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숙제부터 하고 놀아”와 같은 이치다. 하고 노느냐 놀고 하느냐 순서 바꾸기가 핵심이다. 특히 정리수납에서는 더 그렇다. 정리 정돈을 힘들어하거나 또 정리 후 이내 정리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정리 리바운드 현상을 경험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미루는 습관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엄마의 성공 습관을 제대로 물려받았고 이 작은 습관이 내 인생 2막의 물꼬를 틀어줄 보물이 되었다. 성공으로 이끌어줄 이 핵심 습관 3가지는 정리수납 전문가로 또 살아감에 있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요 자산이다. 이런 귀한 자산을 물려주신 엄마가 고맙다. 100세 시대 딸의 인생 2 막을 열어준 엄마가 참 고맙다. “엄마, 고마워!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