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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 아 무개 Sep 28. 2019

방랑자가 부러울 때면

방랑하면 되지 않는가



그저

걷고 싶은 날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

방랑자처럼 그냥 걷는 거다.



얼마 전, 무작정 연남동을 갔다. 우연히 지인의 SNS를 보고. 에코백에 핸드폰과 이어폰, 지갑 정도만 넣고 혼자 문을 나섰다. 전 날에는 하늘이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렇게 흘리더니 이 날은 해가 참 쨍쨍했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우산 대신 손가리개를 쓰고 있더라.



참으로 따갑게 쳐다보고 있다. 해가.



연남동에 들어 서니 드문드문 조그마한 카페들이 하나 둘 보였다. 내가 맨날 발도장 찍는 강남에서는 보기 드문 가게들 앞을 천천히 거닐면서 슥-. 유리창, 팻말을 거쳐 간판들로 눈을 슬쩍 옮기려고 하니 간판 하나 없는 가게도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하얀 문 앞에 섰다.

카페란다. 흐음. 카페. 길 한복판도 아니었고, 매우 평범한 빨간 벽돌 주택가 사이에 끼어 있었으니. 안이 보이는 유리창도 하나 없고, 문도 닫혀있었다. 겨우 문에 조그맣게 있던 유리창은 흰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문에는 포스트잇 하나. ‘문을 열고 들어와 주세요.’ 그래서 문을 열었다.



팔목에 작게 레터링 타투를 한 언니가 싱긋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카페는 작았다. 한 다섯 테이블 정도. 나는 가장 구석 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운터 옆에는 막 나온 듯한 스콘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색색깔의 그릇들, 아기자기한 스푼과 포크들, 곳곳에 직접 쓴 글씨들. 한두 장 사진을 남기며 목을 축이고 카페를 나왔다. 다시 찾아가면 왠지 사라져 있을 것만 같은.


그렇게 다시 난 이어폰을 낀 채 걸었다. 골목길을 좀 걷다 보니까 ‘연남동 미로길’이라고 적혀있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골목골목 걷는 길이 미로길이란다. 그래서 난 그 미로길을 걷기로 했다.

잠시 여담을 하자면, 이전에 가족들과 전주에 간 적이 있다. 한옥마을을 거닐며 사진을 찍는데 유독 오빠는 골목길에 집착했다. 연신 골목길을 보면 달려가 사진을 찍고, 그 골목길을 걸었다.



아니 다른 이쁜 데도 많은데 왜 자꾸 골목길을 가?

그냥. 난 골목길이 좋아 싫으면 넌 딴 데 가.



일단 오빠를 따라 골목길을 걷는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긴 한데...

글쎄..... 그냥 오빠를 따라 걷는다.



이제 와보니 오빠가 왜 좋아하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길을 걷다 보니 간간히 내 방보다 조금 커 보이는, 작은 공방들이 눈에 띄었다. 그 옆으로는 역시나 평범한 가정집들. 거리 위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사진 찍기 바빴고 길을 찾는 건지 폰만 들여다 볼 뿐이다. 주민처럼 보이는 한 할아버지는 흘끗 보시고는 유유히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들어가셨다.

그렇게 한참을 돌다 보니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었다.


2017년 7월 16일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읽거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일과도 같다.
누구든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이 담기고
모습과, 말투, 행동거지로 지금을 알 수 있으니.
누군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대하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 <보통의 존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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