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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 아 무개 Sep 29. 2019

커피 한잔을 안주삼아

쓴 커피는 술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살게 있으니 같이 마트에 가달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마트를 갔다가 아빠와 내가 향한 곳은 집 앞 새로 생긴 한옥 카페. 예정된 루트는 아니었다. 그 앞을 지나다 이끌리듯 들어갔다. 아빠는 엄마와 몇 번이나 가본 공간이었음에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를 위해 들어간 듯싶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요........

아빠 뭐 먹고 싶어?"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음..... 브라우니 하나 주세요!



그렇게 한쪽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동안 아주 가벼운 침묵이 흘렀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아빠와 단둘이 마주 보고 앉은 순간은 아마 지금이 두 번째일 거다. 아무 말 없이 애꿎은 폰만 만지작거린다.



이 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냐



폰을 들이밀며 아빠가 물었다. 보니 젊었을 적 아빠와 엄마가 함께 서 있는 옛날 사진.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찍혀있었는데 난 그중 가장 눈에 익은 사람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빠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에이, 라는 한마디와 함께 바로 폰을 낚아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작은 폰 화면을 슥슥 넘기더니 어떤 게 이쁘냐며 다시 폰을 들이밀었다. 카톡 테마. 그런 아빠를 보고 슬쩍 웃으며 거뭇거뭇한 것을 가리켰다. 곧바로 그걸 눌러 내 눈 앞에 갖다 대고는 자랑하듯 핸드폰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빠와 나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요즘  힘드니?
... 글쎄.. 조금 힘들긴 한데 뭐..



아빠의 꽤나 심각한 표정. 그때 아빠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꺼냈다. 내가 생각하고 결심하여 나온 어떠한 결과물이  입에서 쏟아져 나온  순간부터 아빠는 누구보다 집중했다. 내가  운을 떼고 마무리 지을 때까지. 근래 내가 느낀 것들, 생각들, 내가 겪은 것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열아홉 살이  이후로 속마음을 숨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고, 남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대의 입시라는 굴레에 얽매인 학생들이 흔히들 겪는 성장통이   있겠다. 굳이  속마음 들춰내서 뭐해...라는 마음이었달까. 그럼에도 암묵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고 알아주길 바랐다. 아마 지금도.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은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 <쇼코의 미소> 中



아빠는 처음 알았네. 그런 생각하는지.


내 이야기를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듣던 아빠가 처음 뱉은 말이다. 처음 알았단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끄덕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빠도 아빠의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느끼고 생각하고 가슴속에 담아놨던 말들. 나와 오빠에 대한, 엄마에 대한 그리고 아빠의 이야기까지. 내게 처음 내보인 것들이었다. 어쩌면 아빠조차 입 밖으로 처음 꺼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만큼은, 내 앞의 그 사람은 그저 나와 서른다섯정도 차이가 나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이었구나. 얼추 대화가 서툴게 끝이 날 때 즈음 아빠와 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빈 커피잔에 꽂혀있는 빨대만 빨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2017년 7월 3일

.

.

.

그리고


이천십구 년 구월 이십구일

약 3주 전부터 일을 다시 시작한 아빠가 일을 갔다가 돌아와서는 나에게 하얀 봉투를 쥐어줬다.아빠가 내게 쥐어 준 첫 용돈이다.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때 그 순간의 이야기가 안줏거리가 될 수도 있었겠다. 허나 내 나이 열아홉이었기에 커피를 안주삼아 알코올을 내뱉었음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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