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현관 Jul 29. 2022

동네 빵집에서 보르도를 추억하다.

ㅣ추억은 생각만으로 행복해진다.

2시간을 끙끙거렸지만 쓰고 지우기만 반복하다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마음은 서늘한데 머리는 뜨거웠다. 멀리서 여명이 밝아왔다. 아직은 아파트 윤곽이 겨우 드러날 정도로 어슴푸레했다. 커피를 마실까 했는데 갑자기 딸기잼 바른 바싹한 식빵이 먹고 싶었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식빵을 사러 나섰는데 알싸한 새벽 공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새벽은 참 매력적이다. 차분하지만 예민한 공기가 숨 쉬고 아침을 향해 달리는 미묘한 기류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시간이다. 갓 구워  낸 식빵 한 봉지를 사 들고 돌아오는데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았다. 한산한 거리의 신선함이 모두 내 것이었다. 머리는 식었고 마음에는 온기가 스몄다.      


보르도 포도밭


문득 그때의 보르도가 생각났다. 2007년 프랑스 보르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와인의 본고장답게 묵고 있던 민박집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다. 새벽의 포도밭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고 포도밭 사이로 불규칙하게 허물어진 담벼락과 기둥들이 중세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나 멋진 보르도의 새벽 풍경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때 멀리서 바게트 빵이 담긴 누런색 종이봉투를 가슴에 안고 걸어오는 민박집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자줏빛 점퍼에 갈색머리 아주머니는 그대로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보르도의 아침 밥상은 바게트 빵과 딸기잼 그리고 에스프레소와 포도주스 였다. 단출했지만 침이 고였다. 중세의 돌기둥과 포도밭으로 둘러쌓인 와인의 성지에서 누리는 호사였다.   


식빵 한 봉지를 사들고 아파트사이를 걸으며 오래전 전 보르도의 포도밭을 추억했다. 돌아와 방문을 열어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도 곤히 잠들어있었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먹는다. 아내가 일어나면 보르도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행복이 밀려온다. 이렇게 주말 아침이 밝아왔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작가의 이전글 가벼이 생각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