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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관 Aug 11. 2022

에세이를 쓰면서 알게 된 "만만함"의 신세계

ㅣ애초에 만만한 도전이란 없다. 만만한 마음만 있었을 뿐이지



고백하건데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이없지만 사실이다. 

말 그대로 산문(散文) 아닌가 분산되어 흩어진 문장,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쓰는 글, 이 산문이라는 형식이 참 만만해 보였다.      


이전에 출간했던 책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지만, 법률관계를 꼼꼼히 따져야 했던 “난생처음 부동산경매”는 출간이 되고 나서도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었다. “책 쓰기 꼬박꼬박 월급 나올 때 시작하라”는 책 쓰기의 콘셉트선정부터 출간까지 전 과정을 정리했지만, 나의 경험이 반드시 정답이라 볼 수 없으니 이 역시 출간 후 기대와 염려가 반반이었다.      


반면 에세이는 본인의 생각을 쓰면 된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안정적인가, 비 온 뒤 무지개가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그 무지개를 우울하다고 표현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작가의 생각이 그렇다는데, 에세이가 만만해 보이자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에세이 6권을 구입했다. 막힘없이 쉽게 읽히는 책들이라 재미있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느낌이 개운치 않았다. 생선요리를 먹었는데 가시 하나가 어딘가에 박힌 느낌이랄까?      


“과연 내가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마지막 책을 덮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읽기 편한 글이 쓰기도 편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못나도 한참 못난 생각이었다. 독자에게 쉬운 책은 작가에겐 장고의 결과물이다.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했던 에세이를 읽고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에세이를 꼭 써보고 싶었다.      


노트북하는 사람


그렇게 꼬박 1년을 매달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원고의 수준을 보면 한숨만 나왔다. 초라한 결과물 앞에 자존감마저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인데 그냥 접을까? 그러면 앞으로 무얼 쓸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들끓었다.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시기에 샘물 같은 책 한 권을 만났다.      


임경선 작가의 “자유로울 것” 특히 “에세이 쓰는 법”은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다. 임경선 작가는 마치 “이봐 에세이가 뭔지나 알고 덤비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감각으로는 소설은 머리로 쓰고 에세이는 마음으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에세이를 쓸 때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유연하고 너그러운 상태가 아니면 안 된다. 일부러 소재를 찾으려고 애쓰거나 엉덩이 힘으로 버티기보다, 에세이는 쓰고 싶은 주제가 자연 발생적으로 떠올랐을 때 바로 써야 글에 생기가 돌고 재미있다. 생각나는 대로 노트에 메모하면서  .........  !!"

                                                                                    - 임경선 “자유로울 것” 중에서 발췌 -    

   

정말 많은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많이 반성했다. 에세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책이 아니란 걸 새삼 느꼈다. 유연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쓰는 책을 수험생처럼 매뉴얼을 정해놓고 머리로만 쥐어짜고 있었구나, 거북이 등짝 같은 감성으로 무슨 에세이를 쓴다고 그 오랜 시간들을 허덕였을까? 한숨만 나왔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광야에 홀로 서 있는 것과 같다.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며 길을 만들어가는 고단한 작업이다. 하지만 길 위에서 의외의 반가움과 마주할 수 있는 행복한 작업이다. 

만만해 보였던 도전 앞에 벽을 만나게 되면 절망은 배가 된다. 마음가짐이 문제였던 거지 애초에 만만한 도전이란 없었다. 만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에세이를 쓴다는 게 가당키나 한소린가 에세이입장에서 보면 나란 놈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싶다.   

    

오늘도 모니터 앞에서 감성을 불태우며 틈틈이 보이는 세상사를 메모한다. 아직 유연하고 너그러운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엉덩이 힘으로 버티기보다 관찰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작업으로 비로소 글들이 조금씩 쌓여간다. 회사에 나가지 않고 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또 고개를 치켜든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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