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냥 달려보고 싶어서 ...

ㅣ과체중 중년의 위태로운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by 서현관


달리기가 해보고 싶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달려보고 싶었다.

뭔가 거창한 동기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달려보고 싶어서.” 밖에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나이를 먹으며 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꼈거나, 해가 바뀌면서 다이어리 빈칸을 채우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그냥 달리기가 해보고 싶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이유가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다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잖은가 노벨문학상이 거론되는 일본 최고의 작가도 시작이 이랬다. 여기에 논리를 갖다 붙이기는 힘들다. 다만 스치는 생각을 단단히 움켜잡았다고 해야 할까?


인생의 흑역사를 말하자면 달리기만 한 게 없다.

내게 달리기는 그런 존재다. 학창 시절부터 군대까지 달리기는 고통 그 자체였다.

운동신경이 영 없지는 않았다. 체육대회 때마다 구기 종목은 언제나 선수로 참가했었다.

하지만 오래달리기는 차원이 다른 종목이었다. 피 냄새가 폐부 깊은 곳에서 올라왔고, 복부를 심하게 걷어차인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체육 시간은 좋았지만, 운동장 돌기는 너무 싫었다. 특히 1000m 달리기는 그냥 고통이었다. 뒤에는 항상 아무도 없었다. 햇볕 좋은 날 운동장 두 바퀴 반은 지옥 그 자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그의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학생 전원에게 장거리를 달리게 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참, 안됐다.” 하고 동정해 마지않는다. 달리려는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 또는 체질적으로 적합지 않은 사람에게 무조건 장거리를 달리게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고문과 같다. 괜한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중학생이나 고교생에게 획일적으로 장거리를 달리게 하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습니다, 하고 충고하고 싶지만 ... <중략>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말. 무라카미 하루키 저 -


너무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나는 달리려는 의욕도 없었고 체질적으로 적합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무조건 장거리를 달리게 한 현실은 고문과 같았다. 희생자가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할 뿐이다.


qqqqq.jpg 마라톤 대회


군대 시절은 더했다. 매일 아침 구보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는데 해야 하는 것에는 엄청난 괴리가 작용했다. 점호가 끝나면 고참들은 자연스럽게 구보에서 빠졌는데 간혹 “오늘은 오랜만에 한번 뛰어볼까” 하고 구보에 합류하는 고참도 있다.

군이란 통제된 조직에서 본인 의사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웠다. 할 수 있는데 안 했던 고참과 할 수 없는데 해야만 하는 내가 같이 달렸다. 군가를 부르며 신나게 달리는 고참과 매 순간이 생사의 문턱인 초라한 내가 함께 달렸다.


상의를 탈의하고 대열을 맞추어 군가를 부르며 뛰는 군인은 멋있어 보인다. 시퍼런 기백과 폭발하는 젊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속에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병사도 있다. 열외란 있을 수 없고 매일 아침 눈뜨는 게 고통인 사람이 있다. 내가 그랬다. 혹시 모르는 질환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남들보다 심장이 작은 걸까? 같은 합리적인 의심도 바로 이 시기에 생겼다.


그래서 아침 구보에서 공식적으로 열외 되는 새벽 초소 근무나 5분 대기조 같은 근무는 언제나 우선 지원했다. 구보의 피 냄새보다 부족한 수면 쪽을 택했다. 남의 속도 모르는 고참들은 정의감 불타는 열혈 사병으로 치켜세우며 고놈 참 착실한 놈이라고 했다.


만약 살아온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쫙 펼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인생들 가운데 핀셋으로 꼭 집어 하나만 뺄 수 있다면 그게 달리기다. 그만큼 달리기는 내 인생의 흑역사다. 이런 내가 과연 달릴 수 있을까? 왜 많은 운동 가운데 달리기를 선택했을까? 다양한 물음표가 붙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냥 달려보고 싶어서.” 밖에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어찌 되었건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몸을 움직여 근육을 자극하고 땀을 흘리는 행위, 그래서 운동은 늘 신선하다. 주짓수가 그랬고 느지막이 시작한 달리기가 그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안 해도 그만인데 달린다. 오랜만에 운동화를 챙겨 신고 강변을 달리는 행위가 낯설고 신선하다.


자전거는 넘어지는 법부터 배운다. 잘 넘어져야 덜 다치기 때문이다. 돌아본 나의 달리기는 충분히 넘어지고 고단한 달리기였다. 학생도 군인도 아닌 중년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지켜보는 선생님도, 무서운 고참도 없다. 언제든 멈출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나는 잘 달릴 수 있을까?


과체중 중년의 위태로운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그냥 달려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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