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km가 뛰어진다.

ㅣ7분 26초 첫 완주의 기록을 세우다.

by 서현관


사람 마음이 결연해질 때가 있다.


해가 바뀌었거나 가슴 뭉클한 동기부여 영상을 보았거나 보통 이럴 때 결연한 각오를 다지게 된다.

나의 달리기도 2024년 해가 뜨면서 시작되었다. 정말 결연한 각오였다. 눈뜨면 감을 때까지 “달리기” 이 세 글자가 몸과 마음을 돌아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꽤나 결연했었다. 하지만 실행은 요원했다. 나가서 달리면 그뿐인데 뛰지 못할 이유는 백 가지가 넘는데 뛰어야 할 이유를 찾는데 한 달이 지났다.

마음에서 결연이 빠져나가는데 한 달이면 충분했다. 마땅한 러닝화가 없어서,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주말에 약속이 생겨서 같은 핑계가 끝없이 생산되어 다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너무 추웠다.


2024년 2월 4일

해는 좋았지만, 세상은 건조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코끝을 날카롭게 베어갔다. 안구는 건조하다 못해 거북이 등짝 마냥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입춘이란다. 묘하게 입춘이라는 두 글자를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날짜 밑에 고딕체로 보일 듯 말 듯 쓰여있는 "입춘"이란 두글자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따뜻할까 싶었다. 때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신고 나갈 운동화가 없었다. 너무나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운동화가 없었다. 운동화 한 켤레가 없다고?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그나마 산행에 신던 트래킹화 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의는 기모가 들어간 츄리닝을, 상의는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강변으로 나갔다. 입춘이긴 하지만 2월은 마지막 추위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3월이야 어떡하든 마지막 추위를 불사르자." 입춘의 가면을 쓴 2월 동장군이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듯했다.


running-6660182_1920.jpg 트랙 위를 달리다.



한 번도 쉬지 않고 1km를 달릴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다. 비록 찻잔 속 태풍이지만 42.195km의 대장정보다 더 결연한 나만의 리그였다.

천천히 걸으며 몸을 이완시키고 체온을 올렸다. 스마트워치 러닝 모드를 작동시키고 드디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달간 생각으로만 머물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너무 어색했다. 다리가 아프거나 숨이 찬 건 아닌데 달리는 행위가 참 어색했다. 수영 강습 첫날 몸이 뜨지 않는 당혹감보다 몸도 띄우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어색했다. 찬바람 부는 2월의 강변을 달린다. 강은 얼어붙어있고 탁 터진 주로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시선은 무얼까 어색하다.


빠르게 걷기 수준이었지만 1km를 완주했고 7분 26초를 기록했다.

1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기록이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처음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모든 비번을 1726으로 바꿀까도 잠시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1km가 뛰어진다는 게 신기했고 감사했다. 체력검증뿐 아니라 장거리에 대한 두려움까지 해소하게 되었다.


다음날은 6분 50초를 기록했다. 또 이틀 뒤에는 6분 35초를 기록했다. 이젠 제법 막판 스퍼트도 하게 되었다. 야금야금 기록 단축하는 맛이 솔솔 했다. 이후로도 6분 후반대를 기록하는 달리기가 이어졌다. 물론 1km에 한정된 달리기였지만 생각에만 머물던 달리기가 행위로써 물리적인 수치를 뽑아내고 있었다.


설 연휴가 낀 2월은 달리지 못할 이유가 많았다. 연휴의 분주함, 휴일 당직 근무, 추운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왼발 뒤꿈치에 통증이 발생했다. 걸을 땐 괜찮은데 달리면 욱신거렸다. 거기에 귀차니즘이 합쳐지면서 달리기는 남의 일이 되었다. 단지 몇 번 뛰었을 뿐인데 통증이 발생했다. 분명 달리기를 그만두라는 신의 계시이다. 하지만 좋은 장비를 갖추라는 몸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돈 들어가는 일에는 항상 이렇게 무한 긍정이 작용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누가 그랬지 취미는 일단 장비 빨이라고 ... 모든 운동은 검색부터 시작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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