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취미의 시작은 검색부터

ㅣ드디어 러닝화를 사다.

by 서현관


취미의 시작은 검색이다.


모든 취미는 인터넷쇼핑에서 시작된다. 한국인은 공부도 장비빨로 한다고 할 정도로 장비빨은 당연한 장르가 되었다. 달리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장비가 단출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일단은 신발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운동 아니던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사내 축구 동호회가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에서 활약하던 시기였는데 이때 많은 사람이 유럽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축구화도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이런 열풍은 동네 아저씨들 조기축구에서도 소위 박지성 축구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회사 동호회 역시 복장만큼은 프리미어 리거였다. 장비빨이란 말이 없던 시절, 언제나 이 장비빨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뒤꿈치 통증도 신발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쿠션이 전혀 없는 트래킹화를 신고 뛰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겨울임에도 매번 뛰고 나면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단순한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뒤꿈치 통증은 신발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생긴 거야. 러닝화를 사야 해.”


이런 생각은 바로 검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종류와 스타일이 너무 많았다.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같이 흔히 아는 메이커에서 다소 생소하지만, 러닝 쪽에선 이미 유명한 써코니, 브룩스, 온러닝 같은 메이커까지, 거기에 안정화, 쿠션화, 카본화같이 기능적 구분이 있는가 하면 또 훈련방법에 따라 조깅, 올 라운더, 레이싱, 슈퍼 레이싱 같은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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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신발 하나를 고른다기보다 복잡한 공식을 풀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신발에 관한 정보를 찾아봤다. 하지만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검색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일상에서 신는 신발이 아니라 특별한 기능이 필요한 신발이므로 함부로 구매하기 힘들었다.


쿠션이 말랑하다. 혹은 탱글 하다. 반발력이 좋다. 안정감이 있다. 착지 시 잘 잡아준다. 잘 밀어준다. 회내가 심하다. 힐슬립이 있다. 열감이 발생한다. 통기성이 좋다.

리뷰어들이 말하는 이런 표현들은 실물을 접하지 않는 이상 그저 신기루에 불과했다


“가능하면 매장을 방문해 직접 신어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리뷰 마지막에 나오는 이 멘트는 결재 버튼을 누르기 힘들게 만들었다.

몇 가지 모델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채로 시간이 흘렀다. 러닝을 진짜 해야 하나, 같은 근본적인 문제까지 소환되었다. 매장 방문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렇게 러닝화에 대한 생각이 희미해질 즈음 아이의 신학기 가방을 사기 위해 스포츠 매장을 찾았다. 그때 러닝화를 처음 신어보았다.


이래서 직접 신어보라고 했구나. 질감을 느낀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모니터로 보는 러닝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여러 모델을 신어보았다. 과연 달랐다. 인터넷 정보만 믿고 주문했다간 낭패를 볼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러닝화 하나 고르는 게 이렇게까지 유난스러울까 싶겠지만 그만큼 달리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달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한참 모자란 시기였다. 얼마나 신을지 모를 이 신발을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김혼비 작가의 이 글도 너무 공감되었다.


축구화와 축구 양말을 사며 '아, 이걸 신고 이제 진짜 뛰겠구나!' 싶어 벅찬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막상 물건에 붙어 있는 태그를 떼려고 하면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라는 생각이 기습해 와 만일의 환불을 위해 그냥 놓아두는 식이었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기분은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해졌고 .... .


- 김혼비 작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중에서 -



“내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었구나.”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이 글에 안심이 되었다. 나 역시 한동안 러닝화 태그를 떼지 않았다.

이미 구매 단계에서 달리기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신을만한 러닝화를 염두에 두고 선택했다.


중고장터에는 채 한 달도 안 된 주짓수 도복, 풋살화, 축구화, 자전거, 배낭, 캠핑 용품 등이 넘쳐난다.

아무리 결연한 각오라도 몸을 움직이는 취미는 어느 순간 “이게 아닌데.” 같은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다. 어떤 취미가 되었건 정신력만으로 버티기는 힘들다. 특히 몸을 쓰는 취미는 더욱 그렇다. 직접 몸을 움직여보면 생각했던 것과 너무 큰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꼭 부상이 아니더라도 그냥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먹고사는 문제도 아닌 취미에 정신력까지 발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달리기만 한 운동이 또 있을까? 신발, 반바지, 바람막이 같은 장비는 일상에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또 힘들면 멈추면 된다. 팀 스포츠가 아니기에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상대방이 없는 운동이기에 공수의 고단함도 없다. 5일 만에 러닝화 태그를 제거했다. 이젠 달릴 일만 남았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