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기분 좋은 통증을 만나다.
3월이 되었다.
태그만 제거한 새 러닝화는 신발장에 그대로 있다. 요 며칠 술도 안 마시고 음식도 가볍게 조절했다.
모든 이유가 달리기를 향해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아무리 시샘 많은 3월이지만 꽃샘추위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낮 최고 기온이 영하권에 바람까지 불어 실제 체감 온도는 한겨울 그 자체였다.
신학기, 초록, 새봄 같은 3월의 단어들이 몹시 그리웠다.
거실에서 새 러닝화를 신고 왔다 갔다 고민이 깊었다. 마음속엔 오만가지 감정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는 차라리 겨울이 더 유리한 운동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 일단 나가보자
낮은 기온에 바람까지 불었지만, 햇살만은 따사로웠다.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고 안감이 있는 바람막이 점퍼 위에 얇은 누빔 조끼를 입었다.
보온도 중요하지만 가볍게 달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새 러닝화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알싸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슴과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을 막기 위해 옷매무새를 고치고 신발 끈도 다시 묶었다. 그 사이 몇 명의 러너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가벼울까?”
사뿐한 발걸음과 간결한 자세가 부러움을 넘어 질투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일 뿐,
나는 나의 달리기를 하면 된다. 처음 러닝화를 신어 본, 1km 러너가 부러워할 대상은 아니었다.
오늘 달리기는 매번 1km에 머물러 있던 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려보고 싶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달리기 시작하자 몸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6분 40초를 지날 무렵 1km를 통과했다.
이젠 1km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돌아서 출발했던 곳으로 가면 2km를 뛰게 된다. 내딛는 걸음마다 새로운 기록이 쓰이고 있는 샘이었다. 100m라도 더 거리를 늘리고 싶었다. 1.6km를 지나면서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14분 35초에 2km를 완주했다.
잘 멈추는 것도 달리기의 일부라고 했는데 막상 달려보니 달리는 것만큼 멈추는 것도 힘들었다.
1.6km 지점에서 호흡이 거칠어지고 무릎에 통증도 느껴졌다. 그런데 묘하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마음의 부추김 같은 게 생겼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는데 기어이 2km를 찍고 말았다. 그 순간만큼은 몬주익의 영웅이 부럽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3.1절에 난생처음 2km를 달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근육에 통증이 있었지만, 다음날도 2km를 달렸다. 오히려 달리는 동안은 별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통증은 그만큼 운동이 된다는 증거이기에 차라리 근육통이 반가웠다. 이런 자극에 근육들이 얼른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기분은 깃털만큼 가볍고 좋았다.
희한한 건 당연히 아파야 할 다리뿐 아니라 등과 어깨를 비롯한 온몸의 근육이 아팠다. 오랜 시간 주짓수로 단련된 몸이라 약간의 자부심은 있었는데 격렬한 스파링도 아니고 단순히 뛰었을 뿐인데 이 정도 통증이라니 회사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 한번 했을 뿐인데 다음날 병가 낸 부장님 느낌이랄까
달리기는 참 매력적이다. 단순히 숨차고 통증을 느끼는 단계를 넘어 근육의 움직임, 지방의 출렁임 같이 인식하지 못했던 몸을 내밀하게 느끼게 된다. 특히 지방의 출렁임은 주머니에 물건을 넣고 달렸을 때 흔들림처럼몸 여기저기서 출렁임이 느껴졌다. 복부는 물론 허벅지와 등에도 여러 개의 물건이 달려있었다.
2km를 처음 달린 날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평소 낮잠을 자는 스타일이 아닌데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잠이 들고 말았다. 이렇게 몸은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자고 나니 온몸이 아팠다. 아직 달리기가 낯선 근육들과 힘겨운 상견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힘들지만 매력 넘치는 운동 달리기, 이렇게 러너가 되어가나 보다. 그 힘듦이 차라리 좋았다. (마음껏 힘들어라 더 힘들어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