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타의적인, 가수 박효신의 발성적 변화에 대하여
박효신. 그를 수식하는 다양한 말들이 있지만 솔직한 말로 나는 그를 수식할 수 있는 좋은 단어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박효신을 그냥 '박효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최근 그는 8집의 수록곡이 될 노래인 'Goodbye'를 선공개했다. 그의 음악적 소울메이트라 할 수 있는 정재일을 만난 이후, 야생화를 제외한 곡들이 대중적으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것일까. '3옥타브 레'까지 올라가는 고음의 애드립을 가진 이 곡을 이 시점에 선보인 이유가 대중에 대한 의식 때문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또 한 번 발성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20년.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자그마한 생명이 '어른'으로 인정받게 되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 동안을 가수로서 살아온 박효신은 머무르지 않음을 넘어서 자신의 변화를 눈에 띄게, 하지만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전례를 찾기 어려운 행보를 보여왔다. 놀라운 와중에 재미있는 것은, 그의 가수로서의 시작점에서부터 그가 가진 순수한 것보다는 변화된 것으로 어필하며 대중과 만났다는 것이다.
1999년,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해줄 수 없는 일'이라는 곡을 통해 프로가수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당시 세간에서는 '천재가 나타났다.', '고등학생의 목소리가 아니다.', '리틀 임재범' 등의 폭발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박효신의 소속사 신촌뮤직의 대표이사였던 가수 권인하는 과거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당시 박효신의 데뷔 시절을 회상하며 망설임 없이 박효신을 '천재'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그는 사실 박효신의 발성을 조금 교정해서 데뷔시키고 싶었지만 자신보다 당시 더 높은 위치에 있었던 '대장님'께서 반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박효신의 데뷔 시절 목소리대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교정되지 않은(?) 상태의, 박효신 1집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그의 목소리는 지금의 목소리와 비교했을 때 어렸던 만큼 충분히 그의 날 것의 소리라고 느껴진다. 그러면 과연 어떤 지점에서 그가 순수한 것이 아닌 변화된 것으로 대중과 만난 것으로 보아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부려야지 그게 겉멋이 아니고 심지가 있는 건데...
그는 올해 초 방영된 ‘너의 노래는’에서 그가 어릴 때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멋을) 부리고, 자신이 편하게 내는 톤으로 노래를 부르기보다 주변에서 좋다는 식으로 노래했다고 말했다. 당시 R&B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래서 발라드 가수이면서 동시에 R&B 가수였던 그의 모습은 그의 1집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R&B를 좋아했고, 또 잘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그에게 당시의 소리와 표현들은, 그가 말하는 어떤 ‘심지’가 아닌 ‘겉멋’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순수하기보다는 변화된 것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는 구체적으로 ‘확 긁으면’ OK사인이 떨어지곤 했다고 말했는데, 결국 이런 이유로 인해 그는 ‘소몰이창법’, ‘허스키 보이스’, ‘흉성가수’ 등의 수식어를 얻을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그의 소리를 ‘끌고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방송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교외로 나가기 위해 운전 중인 차 안에서 동승하고 있던 스탭(?)이 그의 3집 타이틀곡인 ‘좋은 사람’을 튼다. 전주가 들리자마자 박효신은 다른 노래를 틀라며 노래를 꺼버리고, 그렇게 박효신의 반응이 재밌었던 스탭은 두 번이나 더 노래를 틀지만 결국 박효신에게 저지당하고 만다.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음악적이고,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한 그의 20대 초반의 목소리. 하지만 음악적으로 뿐만 아니라 발성적으로 발전해 온 그에게는 그때의,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는 듣기에 꽤 부끄럽기도, 어쩌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듣기 싫게 느낄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은 왠지 아프게 느껴졌다.
박효신은 그러한 변화들로 인해 자신의 음악을 아끼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아낄 수 있는 음악이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었고, 아마 그 시작은 5집부터였을 것이다.
평소에도 자기 노래를 그렇게 들어요. 계속 자기 노래 듣고 있어.
박효신과 같이 군생활을 한 연예병사들은 박효신이 그렇게 자기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방송에서 비쳐진 에피소드에서 추측할 수 있듯, 굵고 허스키하게 내던 시절의 자신의 노래들은 인위적이라(?) 인식하는 것 같고, 그런 이유로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군 시절 라디오 방송에서 그는 ‘추억은 사랑을 닮아’라는 곡을 소개하며 개인적으로도 손에 꼽으며 가끔씩 찾아 듣게 되는 곡이라 밝힌 적이 있는데, 이 곡은 다들 알다시피 5집의 타이틀곡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hlmn4LXIIQ
실제로 5집을 기점으로 박효신은 자신의 음악에 스스로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고, 최근으로 올수록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는 비중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보았을 때, 그러한 방향성은 더욱 확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함으로써 그 음악을 진짜 그의 것으로 표현할 수 있고, 스스로 표현함으로써 진정 아낄 수 있는 그의 음악이 되는. 그것이 그가 원했던 음악이었던 것 같다.
2016년, 그는 ‘꿈콘’에서 의도적으로 창법을 변화시킨 것이 아닌, 지금 하고 싶은 표현을 잘할 수 있는 쪽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여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TrZwazIhOPs
데뷔부터 현재까지의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보석들을 품은 보석함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 가진 보석들로 무언가 만들기도 하고, 또 새로운 보석을 보석함에 채우기도 할 것이다. 그가 주로 어떤 보석을 쓰게 될지는 나로서도, 지금의 그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가 가장 그 다운 보석을 고르게 되리라, 그리고 그 보석은 지금 그가 주로 쓰는 보석보다 더욱더 투명한 것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그리고, 그때도 여전히 그는 ‘박효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