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 생각

by 쉬리

왕십리역 다이소에 가려고 집 앞에서 2016번을 탔다

운전기사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햇빛에 반짝이는 단풍이 돋보였다

그 길은 약간 언덕인데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고 늘 스쳐 지나가는 길이다

그곳에 서 한 정거장 더 가야 우리 집~

다이소에서 우리 집 고양이 썸머가 좋아하는 간식 치킨 들어간 츄르도 사고 집으로 오는 길

평소 하지 않던 짓을 저질렀다

버스가 서자 한 정거장 앞에 내린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외벽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에

뜻밖에 단풍 든 담쟁이덩굴을 만났다

내 손톱보다 작은 이파리에 단풍이 들었다

양지바른 곳

따뜻한 햇볕이 내 등뒤에 머물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혼자 걷노라니 함께 걷고 싶은 친구가 생각난다

내 친구 경희

오늘 같이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가는 가을날 틀림없이 만났을 텐데~

벽에는 담쟁이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길가에는 경희가 좋아했던 남천이 빨간 열매를 달고

무심히 죽 늘어서 있다

경희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십 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으며

경희야~

불러본다

마치 저 위에 나를 보고 있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 숨어 있는 친구를 찾듯이~

구경희~~~

크게 불러본다

더 크게

더 크게

소리쳐 불렀다

대답이 없다

하늘을 보니 봄과 여름 가을이 있더라

어떤 이파리는 아직도 초록이 한창이고

또 어떤 나무는 단풍이 드는 중~


파란 하늘에 불처럼 타오르는 이파리


검 붉은 이파리들


길지 않은 한 정거장 길을 걷는데

똑같은 담쟁이들의 이파리들이 천태만상이다

양지바른 곳에 있는 아이들은 빨리 단풍이 들고

음지의 아이들은 늦다

아직 봄처럼 연둣빛이 한창인 이파리~

사람의 일생도 이렇겠지~?

경희는 빨리 단풍 들어 저 하늘로 가버렸구나~

경희야

부르다 부르다 눈물이 나는 이름

구경희

나도 언젠가 네 곁으로 가겠지?

언제까지나 늙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려~

올해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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