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이어가는 추임새, ‘왜 예비’)
# 136 글은 어떻게 쓰나?
(글을 이어가는 추임새, ‘왜 예비’)
글은 어떻게 쓰나? 글을 왜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요. 글을 쓰려고 모니터를 켭니다. 하얀 모니터에 커서가 깜박거리는 데 막상 쓰려고 했던 글은 한 줄을 쓰고는 더 이어지지 않지요. 깜박거리는 커서처럼 생각이 깜박거립니다. 하얀 모니터처럼 머리가 하얗게 됩니다.
이럴 때 저의 글 이어가기 팁을 한번 들어보실래요. 저는 글을 한마디 내뱉은 말에 추임새 넣기라고 여깁니다. 판소리가 흘러나오다, 중간에 잠시 숨을 고르면 장단을 짚는 고수가 소리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하여 “얼쑤” “좋다” 추임새를 넣지요.
글을 쓰다 보면 막히기도 합니다. 막히지 않는다면 이런 글을 읽고 있지도 않겠지요. 무엇인가 쓰고 글로 그리고 싶은데 딱 막히게 되지요. 글이 머릿속에 갇혀 뱅뱅 돌고 이어가지 않을 때 추임새를 넣어 보세요. 글은 세 가지 추임새로 이어갑니다. 저는 ‘왜 예비’ 추임새를 넣습니다.
‘왜 예비’ 첫 번째 추임새 ‘왜’는 ‘왜냐하면’이지요. 그냥 생뚱맞게 한마디 던져버리면 듣는 상대방은 뭔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며 시큰둥하게 쳐다보겠지요. 그 한마디에 논리라는 받침을 주는 추임새는 ‘왜냐하면’ 입니다.
’나는 글을 쓴다. (왜냐하면) 글이 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는 산을 오른다. (왜냐하면) 산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나는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 (왜냐하면) 한 달간 걸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다.‘ 어떤 한 마디에 수많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겠지요. 그 왜라는 의문사의 답이 적절한 이유가 되었던 그냥 자기 합리화가 되었던 ‘왜냐하면’ 추임새는 나의 한마디를 생뚱맞게 붕 떠 있지 않게 하는 추임새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이란 추임새를 넣고 이어서 생각을 이어가면 됩니다. why라는 의문사는 자신의 한마디에 논리를 불어넣어 주는 추임새입니다.
두 번째 추임새 ‘예’는 붕 뜬 개념적 이야기를 땅 위에 내려 구체화하는 추임새입니다. ‘예를 들면?’이란 추임새이지요. ‘예를 들면’에는 네 가지 의문사가 담겨있습니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에서(where) 어떻게(how)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사에 대한 대답이 충실할 때 살아있는 사례가 되지요. 이것이 담겨있는 것이 스토리입니다.
‘예를 들면’ 추임새는 사례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지요. 나의 경험과 남의 자료입니다. 나의 경험은 스토리를 흥미롭게 만들고, 다른 이의 자료는 그 근거를 충실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좁은 경험이나 시각만으로 글을 쓰면 편협되거나 왜곡된 주장이 될 수 있지요. 짧은 글이 아닌 한 권의 책을 쓰는 이가 자기 생각만으로 긴 글을 펼쳐나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자료를 자기 글의 근거로 보완해 나가지요. 자료를 강조하기 위해 ’왜 예비‘에 자료의 ‘자’라는 글자를 더하여 ‘왜 예비자’라고 추임새를 좀 더 길게 뽑기도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이라는 확장 추임새이지요.
세 번째 글자 ’비‘는 ‘비유하면?’이라는 마무리 추임새입니다. 그것은 무엇(what)이라는 비유이지요. ’책은 도끼다‘라는 멋진 비유가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말을 박웅현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았지요. 도끼와 같이 우리의 기존 틀을 부수는 것이 책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책은 우리의 생각을 풍부하게 하고 삶을 바꾼다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것보다 ‘책은 도끼다’라는 한 마디는 도끼와 같이 충격적입니다.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의 비유는 독자의 가슴에 강렬하게 오래 남게 됩니다.
기본형 추임새 ‘왜 예비’의 변형으로 ‘왜 예비자’라는 자료를 강조한 추임새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길게 ‘왜 예비자반’이라고 다섯 글자 긴 추임새도 말씀드릴까요. ‘반’은 ’반대말은‘ 뭘까 생각하는 추임새입니다. 개념이 명확히 서지 않을 때 그 개념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머리를 굴려보는 것이지요.
언젠가 평화를 주제로 글을 쓰려는데 평화가 무엇일까 정리가 안 되었습니다. 이럴 때 평화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책이 떠오르니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인가. 고요한 평화의 반대 의미인 시끄러움, 난장판 등등 반대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원 개념의 본질을 더 풍성하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지요.
글 쓰는 게 별건가요. 그냥 추임새에 장단 맞추어 쓰는 게 글이지요. ‘왜 예비’는 사실 곁다리 추임새가 아니고, 글에 담아야 할 의문을 던지며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중물이지요. ‘왜 예비’라는 세 글자에는 여섯 가지 의문사가 연결되어 우리 스스로 질문과 답을 나눠가며 글을 쓰게 하지요.
글 쓰다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추임새 ‘왜 예비‘를 던져 보세요. 그래도 안 되면 ‘왜 예비자’나 ‘왜 예비자반’으로 길게 추임새 확장해 보는 것도 괜찮고요. 아이쿠, 추임새 넣다 너무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