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해금 연주자가 알려준 진짜 어른은
“막내야, 이번엔 니가 좀 들어갔다 와야쓰겄다.” 영화에서 간혹 듣는 대사입니다. 조직폭력배의 보스가 막내를 불러 어깨 툭툭 치며 이야기하지요. 말은 부드럽게 하지만, 선택권이 없는 강압입니다.
이 말을 풀어보니 이렇군요. “막내야(내가 니 하늘 같은 형님이시다. 이놈아.) 이번엔(전에도 이런 적 여러 번 있는 것 알제.) 니가(내 말고 니가) 좀 들어갔다(옴팡 뒤집어쓰라 말이다) 와야쓰겄다.(나와서도 평생 니는 내 아래다. 알겠냐)
영화가 진행되며 몇 년 후 막내가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영화는 보통 두 갈래로 나누어지지요. 감옥 밖에 아무도 그를 반기는 사람 없이 쓸쓸히 출소하는 장면이거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감옥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세단에 태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갈립니다. 출소 후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 보스는 이미 그를 잊은 지 오래이지요. 그나마 검은 세단에 몸을 실으면 보스에게 그가 아직 이용해 먹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경우일 테고요.
어제 김수철이 작곡한 ‘한’의 구슬픈 아쟁 소리에 푹 빠져있다가 우연히 해금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은한의 해금 연주 영상이었지요. 차가운 날씨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그녀는 한복을 입고 조용히 해금을 준비하며 연주 전 멘트를 합니다. 처음에 이 영상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 영상에 이런 멘트 긴 것이 제일 싫어. 앞부분 편집할 수 없을까.’ 사실 거리녹음이라서 연주 전 멘트로 뭐라고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어요. 다행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연주하는 그녀의 해금 소리가 너무 좋아 몇 번 다시 듣다 보니 잘 안 들리던 멘트가 들리더군요.
“시간이 지나고 스무 살이 되면 적어도 자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돼요. 저는 그게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또 다른 일이 생깁니다.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와요. 자기 아이가 잘못을 했다든지, 자기 부하 직원이 잘못을 했다든지, 내가 한 일이 아닌데도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될 때가 와요. 그때가 진짜 어른이 되는 때가 아닐까....”
어린이는 웬만한 일을 해도 그에게 큰 책임을 묻지 않지요. 학교에서 학생이 잘못하면 부모가 학교로 불려갑니다. 아이가 한 일인데 부모는 대신 고개 숙여 사과하지요. 심지어 법을 어기는 행위를 했더라도 어느 연령 이하에서는 감옥에도 가지 않지요.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린이를 벗어나 어른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영상 속 해금 연주자가 말했듯이 살다 보면 자기가 하지 않은 일도 책임질 때가 오지요. 자기가 하지 않은 일도 책임지는 것이 정말 어른이지요.
지금 혹시 내가 한 일도 아닌데 내가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이 억울하다고 느껴지신다면, 둘 중 하나일 거예요. 조직 폭력배의 막내이던가, 아니면 정말 어른이던가. 조직 폭력배에 속해 있지 않다고요. 그러면 정말 어른이 되신 거지요.
조직폭력배의 보스는 나이만 성인이지 정말 어른은 아닙니다. 보스와 리더의 차이도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 거예요.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도 남에게 넘기면 보스이고, 자기가 한 일이 아닌데도 자신이 책임지면 리더이자 정말 어른이지요.
“내 탓이오.” 가톨릭 미사 중에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이 말을 세 번 하는 전례가 있습니다. 내가 한 일도, 네가 한 일도, 그가 한 일도 내 탓일 수 있다는 고백일까요.
해금으로 들려주는 소리 속에 빠져있다 깨어나 문득 영화나 영화 같은 현실에서 이런 대사가 듣고 싶어집니다.
“막내야, 내가 이번 일은 모두 책임져야겠다. 내 역할은 앞으로 네가 맡아야 할 게다. 너는 나보다 잘 할 거다.”
https://youtu.be/U0Hx8DDlOI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