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벽에 등을 대고

by 이상현

#28 벽에 등을 대고


벽에 등을 댑니다. 등을 대고 가만히 있습니다. 숨도 고르게 쉬지요. 약간 벽과 떨어진 몸의 한구석도 살짝 붙여 봅니다. 너무 억지로 붙이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등과 뒷머리를 벽에 붙입니다.


그 자세로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불러 보라는 분도 계시더군요. 노래 한 곡 부를 시간, 이삼 분 정도 될까요. 그 정도만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어도 몸의 자세는 참 바르게 되지요.


자신이 있는 공간에 기댈 곳이 마땅히 없다고요. 넓지 않은 공간에 여러 가지 물건들로 차 있는 우리의 삶터에서 등을 기댈 작은 공간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문에 기대어 봅니다. 우리가 있는 공간은 그곳에 들어가는 문은 다 있으니까요. 자신이 기댈 공간을 찾아 기대 봅니다.


팔을 내리고 등을 벽에 대고 충분히 서 있었다면, 이제 팔을 천천히 움직여봐도 좋아요. 팔을 뻗을 여유 공간이 된다면 팔을 벽에 붙인 상태로 양옆으로 올려보세요. 시곗바늘이 시계 판에 붙어서 움직이듯이 벽에 팔을 붙인 채로 천천히 올려봅니다. 한쪽 시곗바늘이 8시쯤 되었네요. 다른 쪽 팔은 4시쯤 올라갔겠군요. 팔을 천천히 올려 어깨높이까지 3시와 9시까지 평행하게 올라가려면 한쪽 어깨에 무리가 가지는 않나요. 그럼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부드럽게 팔이 벽에 붙어서 시곗바늘까지 올라간다면 어깨가 참 부드럽군요. 12시까지 양팔을 올려보세요. 오른팔과 왼팔이 벽에 잘 붙어서 원활히 머리 위로 올라가나요. 벽에 팔을 완전히 붙여서 올리기 어렵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벽에서 팔을 약간 떨어뜨려서 천천히 올려 보세요.


팔을 쭉 뻗을 공간이 마땅치 않다면 팔을 직각으로 구부려 어깨높이로 항복의 표시처럼 편하게 올려보세요. 나무줄기 하늘로 향하듯이 팔 구부린 상태에서 어깨쯤에 올려보면 좌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지도 몰라요.


저는 왼쪽 어깨 오십견이 있었던 적이 있어서 왼쪽 팔은 벽에 붙여서 올리기 불편해요. 팔을 구부린 자세에서도 왼쪽 어깨와 팔이 자연스레 벽에 완전히 붙어있지를 않네요. 오른손등은 벽에 잘 붙어 있는데 왼손등은 약간 벽에서 떠 있어요. 평소 잘 못 느끼던 내 몸의 균형 상태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이쪽이 조금 굳어 있구나, 새삼 느낄 수 있지요.


팔 올리기 불편하고, 공간도 여유롭지 않다면 팔 내리고 그냥 서 계신 것으로 충분해요. 눈을 감고 그렇게 벽에 몸을 기대고 있다 보면 삐뚤어졌던 마음도 조금 곧아질까 기대해 봅니다. 구부정했던 몸이 바르게 되면 흔들리던 마음도 따라 고요히 바르게 자리 잡는 것 같아요. 몸은 마음의 집이니까요.


명상이란 것이 꼭 앉아서 할 필요는 없겠지요. 오히려 사람 몸은 바닥에 앉아서 등을 곧추세우는 것이 참 어색하고 힘이 들지요. 익숙하지 않으면 앉아서 자세를 잡는 것에 애를 쓰게 되고 거기에 진이 빠져버립니다.


일상에서 몸을 일자로 쭉 편 상태는 누워있거나 서 있을 때이지요. 구부려 앉아있기보다 몸을 쭉 펴서 누워 있는 것이 편하지요. 너무 편해서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합니다.


일자로 서 있다 보면 잠이 들지 않으면서 마음도 몸을 따라 편안해집니다. 머리 위로 떠다니던 여러 상념이 발아래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싶으면 벽에서 등을 떼어 보세요. 어떤 느낌이신가요. 우선은 자세가 꽤 바르게 서 있다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발레리나와 같은 자세가 꼭 좋은 자세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이 똑바로 세워져서 자신의 시선 위치 자체가 몇 센티 높아졌다는 느낌도 들 수 있지요. 벽에 등을 기대기 전과는 달라진 몸의 자세를 느낄 겁니다.


불과 몇 분 서 있을 뿐인데 몸은 벽에 기대기 전과 기댄 후에 변화가 있습니다. 편안하면서도 바른 자세, 억지로 힘 들어간 어색한 자세가 아니고 시원하게 뻗은 자세가 되어 있지요. 이리저리 왔다갔다 방황하던 마음이 앉아서 명상하고 나면 고요히 가라앉듯이 벽에 등을 기대어 잠시 서 있으면 몸과 마음이 제 자리를 바로 잡은 느낌입니다.


물론 잠시 벽에 등을 기대었다고 이 자세가 종일 이렇게 유지되지는 않지요. 이삼 분 잠시 서 있어 놓고 그 효과가 온종일 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겠지요. 몸과 마음이 흐트러졌다고 느껴질 때 벽에 등을 잠시 기대어 서보세요.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어서 그렇게 하기에 다른 사람 시선이 신경 쓰여서 하기 어렵다면 등과 머리 뒤에 가상의 벽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예를 들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상의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어 보는 것이지요. 버스가 올 때까지.


산이나 공원에 큰 나무가 있다면 나무에 등을 대고 눈을 감고 서 있어 보는 것도 좋겠지요. 나무에 기대어 고요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고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삼 분 짬은 낼 수 있겠지요. 벽에 등을 기대어 쉴 수 있는 시간을 내어 보세요. 바닥에 등을 기대면 잠이 들지만, 벽에 등을 기대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바르게 자리 잡은 몸에 마음은 편안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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