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너도 그래?

by 이상현

#30 너도 그래?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오늘도 아무것을 하기 싫은 날


쓰기는 싫어 뒤적거리니

쓰기도 싫어 뒤적거리니


페북은 내 마음도 아는지

페북도 내 마음을 아는지


일 년 전 오늘 쓴 글을 올려준다

일 년 전 오늘 쓴 글도 올려준다


조사가 중요하다고

조사도 중요하다고


글에는 쓰여 있네

글에도 쓰여 있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는 그래?

너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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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중요하지요.


삶에서는 조사가 중요하지요. 특히 ‘도’가 중요합니다. 도레미파솔에서 기본음 도가 아니라 ‘조사로서 도’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문장에서 나 뒤에 따라오는 조사 ‘도’는 공감의 도가 아니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수용의 도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고 매우 적게 일어나는 현상이더라도 그럴 경우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도’가 합니다.


진료실에서 우울증세가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사에서 ‘도’가 흔하게 빠집니다. “나는 운이 나쁘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우울하다.”고 이야기하지요. 나는 운이 나쁜 적도 있고, 불행했던 적도 있고, 우울한 적도 있는 것이 팩트인데, 우울한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일반화하려 하지요.


윷놀이에서 윷을 던지면 윷이 모두 뒤집히기도 하고, 몇 개만 뒤집히기도 하고, 하나도 안 뒤집히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안 뒤집힌 경우를 ‘윷’이라 불러 가장 여러 칸을 갈 수 있어 좋아하고, ‘도’는 한 칸밖에 나오지 않아 가장 싫어하는 수입니다. ‘계’와 ‘걸’은 가장 흔하게 나와 별로 신경을 안 쓰기도 하고요. 하지만, 간혹 상황에 따라, ‘걸’이나 ‘계’로 인해 지름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도’가 바로 앞 상대방 말을 잡거나 내 말에 올라타 쌍말로 쉽게 가는 경우도 있지요. ‘도’와 ‘모’ 사이에 이렇게 ‘계, 걸, 윷’이 있는데, 상항을 일반화하거나 이분법으로 보는 이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만 보려 하지요.


‘나는 우울하다.’가 아니고 ‘나도 우울한 적이 있다.’ 나는 불행하다’가 아니고 ‘나도 불행한 적이 있다.’ ‘적’이라는 말은 경험의 단어이지요. 그 느낌과 사건을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람은 성장합니다. 경험은 과거의 사건인데, 그 경험을 지금도 이어 그 사건과 느낌 속에 파묻혀 오늘도 사는 사람은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맞다.

당신도 맞다.


두 하인이 다투면서 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구나”고 황희 정승이 말하자, 그의 불분명함을 타박하는 아내의 말에 “듣고 보니 당신의 말도 맞구려”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황희 정승은 자기의 주장도 없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도’는 열어놓은 조사입니다. 도를 많이 사용하는 이는 자기 뜻이 없는 사람이기보다 열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황희 정승은 ‘너는 틀렸어’라는 엄격한 판결자보다 ‘너도 나와 생각이 같은 부분이 있군요.’라고 받아들이는 큰 그릇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나는 이래.’라는 말보다 ‘나도 이런 점이 있어.’ 나에게 ‘여러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김정호 교수님은 <마음챙김 긍정심리 훈련(MPPT) 워크북>에서 이를 ‘마음의 사회’라 표현합니다. 나에게는 이런 나도 있고, 저런 나도 있지요. 내 안에 하나의 나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우칠 때 자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어집니다.


토론할 때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면서 저 사람 말이 끝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용수철처럼 튀어 나갈 준비만 하지 말고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 점이 있는데.’라고 ‘도’를 쓸 것이 없나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나의 모든 것이 너의 모든 것에 일치가 된다는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어떤 부분이 너의 어떤 부분과 비슷한 부분이 있구나!’라는 감탄 조사가 도입니다.


오래전 읽어 정확한 문구를 찾을 수 없지만,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 나온 이야기라 기억합니다. 달라이 라마에게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지역에 관한 질문이 던져집니다. 그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잠시 대답을 멈춥니다. 그 멀리 떨어져 고난을 겪는 이의 아픔을 그대로 ‘그도’ 아파하는 것이지요. 우리도 그와 같은 큰 인물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나요. 얼마 전 호주에 커다란 산불이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지요. 평온한 호주에서 느림의 대명사 코알라는 그 맹렬한 기세의 산불을 피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캥거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대로 불에 탄 코알라의 모습과 사람이 길가에 쳐놓은 쇠창살을 붙잡고 타버린 캥거루 사진을 보고 나도 아프지요.


‘나는’ 보다 ‘나도’를 자주 사용해 보세요. ‘너는’ 보다 ‘너도’라는 말을 써보세요. 나에게도 그런 점이 있는 것처럼, 너에게도 이런 점이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언어 습관을 바꾸다 보면,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받아들임의 ‘도’도 깊어질지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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