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명함은 꽃잎이다

by 이상현

명함은 꽃잎이다. 명함은 언젠가 바뀌지요. 대부분 한 가지 명함을 평생 가지지도 않지요. 화려했던 명함도 꽃잎처럼 떨어집니다. 명함에 이름 하나만 쓰여 있다면 평생 하나의 명함으로 유지하겠지만, 그 쪼그만 종잇조각에 작은 글씨로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에다가 소속과 직위까지 이름 곁에 적어 놓으니 그 자리를 물러서면 명함도 꽃잎처럼 떨어져 버리지요.


봄이 되어 인사 발령 소식을 접합니다. 부서 이동도 있고, 새로운 역할과 직위를 얻어 축하를 받는 이도 있고, 그 직위가 사라져 쓸쓸한 이도 있습니다.


저도 그동안 함께했던 부서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내일부터 몇 년 전 맡던 부서 업무를 다시 맡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 사용하던 명함은 다 버리고, 4월에는 명함을 새로 파야지요. 도장을 파는 것도 아닌데, 명함도 ‘판다’고도 하지요. 종이에 자기가 누구인지 힘주어 쓰느라 명함에는 ‘파다’라는 동사가 따라붙나 봅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분 중에는 정년을 맞이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코로나로 정년을 함께 모여 축하해주지 못해 서운합니다. 직장이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걷게 될 분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데, 그것조차 코로나는 어렵게 하는군요.


직장 생활을 하며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던 명함이었지만, 퇴직 후 명함이 사라지게 되어 당혹스러워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명함 한 장에 담았는데, 명함이 없어지니 내가 누구인지 소개를 하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퇴직한 후에도 개성이 담긴 개인 명함을 파서 가지고 다니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매번 변하는 직위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자기소개를 담백하게 담은 퇴직 후 명함도 멋지지요. 굳이 명함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사는 것도 근사하고요.


꽃잎은 떨어져도 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 있습니다. 꽃잎 화장으로 가려졌던 나무의 민낯을 꽃잎이 떨어져서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지요. 몇 년 후 저도 일을 그만두었을 때 제 민낯인 명함에는 무슨 글자들이 파여있을까요. 조만간 꽃잎처럼 떨어질 명함이니 그냥 떨어지게 놓아두고 맨손으로 악수 나누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도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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