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감사합니다. 환자 선생님

by 이상현

#36 감사합니다. 환자 선생님


의사들이 치료하다 환자 상태가 끝내 안 좋아지면 심한 욕도 먹으면서 의사 뒤에 안 좋은 호칭도 뒤따르곤 합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겪게 되지요. 하지만 고맙게도 대부분 ‘선생’이란 호칭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선생. 먼저 선(先)과 날 생(生)으로 되어 있는 단어이니 선생(先生)은 먼저 산 사람이지요. 하지만 먼저 살았다는 의미는 단순히 세상에 먼저 태어났다는 뜻보다 세상을 먼저 경험했다는 뜻이 담겨 있을 수도 있겠지요. 직접 경험이나 간접 학습이나 세상을 먼저 경험한 것을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전하는 이가 선생일 테니까요.


의사는 생로병사 과정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곁에서 지켜보게 되지요.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도, 나이 들어 병들어 가는 과정도,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이가 의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두 명 자식이 태어남을 경험하고 자신과 몇몇 가족이 늙으며 생기는 몇몇 질환을 경험하지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며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인생일 겁니다.


의사는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우의 생로병사를 젊어서부터 먼저 경험합니다. 그렇기에 비록 먼저 태어나지는 않았더라도 선생이란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젊은 의사에게 나이 든 환자분이 선생이라 불러주는 것은 자신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자신의 질환을 먼저 경험하고 겪은 것에 대한 배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고백해야겠습니다. 짧지 않은 의대 공부와 수련 과정 중에 여러 질환을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먼저 경험하지 못하고 환자를 만나야 할 때가 생깁니다. 그럴 경우 교과서나 최신 저널을 구석구석 찾아보거나 경험 많은 다른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지요.


특히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환을 인류가 겪게 되면 어느 의사도 그것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봐야 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질환뿐만 아니라 이미 수도 없이 접하여 잘 알고 있는 질환이라도 개인이 겪는 아픔과 상황은 다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처할 경험도 개별화된 준비도 없이 치료 방향을 결정하거나 조언을 해야 할 경우도 생깁니다. 미리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환자에게 무엇인가 해주는 조언이 얼마나 공허한 언어였을까요.


선생이란 호칭이 붙기까지 너무도 많은 환자가 자신의 아픔을 의사에게 가르쳐 주고 갑니다. 먼저 삶의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은 사실 환자이지요. 의사는 그분들을 뵈면서 간접 경험을 환자로부터 전해받게 되고요.


가끔 환자들은 묻습니다. “저 같은 환자 보신 적 있으세요.” 환자는 그 질환이 처음이지만, 의사에게는 대부분 그 질환 사례를 여러 번 겪게 되지요. 의사가 혹시 그 질환을 자신이 직접 겪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더 생생하게 환자에게 그 경험을 나눌 수가 있지요. 하지만 자신이 치료하는 질환들을 의사 스스로 모두 겪을 수는 없기에, 결국 다른 환자로부터 전해받은 간접 경험을 통해 의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환자를 진료합니다.


모든 질환이 교과서처럼만 진행된다면 너무도 좋겠지만, 사람은 백인백색 모두 다르고 그에 따라 질환 양상도 다양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기에 교과서가 의료에서 선생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환자 한 분 한 분이 결국에는 선생 역할하며 의사 한 명을 키워냅니다.


저를 거쳐 간 모든 환자가 저의 선생이지요. 저보다 그 병을 먼저 겪고 아파하신 선생이지요.


감사합니다. 환자 선생님


(보탬말: 내일 올라올 신문 칼럼의 환자 경험 사례에 이러한 주제를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부족과 분량 조절로 하고 싶은 내용은 쏙 빠진 맥 없는 글만 남게 되어 아쉬운 마음에 ‘선생’이란 글 조각 다시 챙겨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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