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악마는 골방에 있다
악마는 골방에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 제목은 들어봤어도 ‘악마는 골방에 있다’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며칠 전 아들이 ‘선하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어요. 선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선하다’라는 말의 어원은 조금 단순하더군요.
선(善)은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일컫더군요.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갑골문에 나오는 선(善)은 양(羊)의 눈(目)이 그려져 있어, 양의 눈망울을 그렸다고도 해요. 우리나라 말로는 양보다 사슴이 낫겠군요. 흔히 사슴 눈망울이라 하잖아요. 사슴 눈을 보고 있으면 참 선한 느낌이 들죠.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의 옛날 사람들도 양이나 사슴의 눈망울을 보면서 느꼈던 감성은 비슷했나 봐요.
동물의 선한 눈망울로 글자를 만든 것을 보면, 어쩌면 선하다는 것은 뜻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겠죠. 다른 추상적 개념보다 선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나았다고 여겼던 게지요.
‘선’이란 글자에 특별한 깊은 뜻이 담겨있을 거라 기대했다 양의 눈망울 어원을 보니 흥미로웠지만 조금 허탈했습니다. 내친김에 ‘선’의 반대말인 ‘악’이라 단어도 찾아봤지요. ‘선’이란 글자에 양의 눈망울이 담겨있다면 ‘악’이란 글자에는 어떤 무서운 동물이 담겨있지 않을까. 눈이 아니고 뿔이라도 담겨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사전을 보니, ‘악’에는 동물이 아닌 다른 뜻이 담겨있더군요.
악할 악(惡)은 사면이 요새처럼 지어진 집(亞) 아래 마음(心)이 있습니다. 즉 사방이 꽉 막힌 집에 갇혀있는 마음을 뜻하지요. 갇혀있는 마음을 저는 골방에 갇혀있는 마음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글자를 만들 당시 사람들에게 악은 갇혀 있는 데서 나온다고 보았다는 뜻이지요. 하나의 갇혀 있는 생각, 하나의 집착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좋은 신념도 주위에 대한 배려 없이 하나로 밀어붙일 때, 그것은 독재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요. 여러 이념이나 무슨 무슨 주의들도 하나의 벽을 굳건히 하고 주위를 배척하여 많은 비극의 역사를 낳았지요.
‘선’이란 한글을 종이에 여러 번 쓰다 보니 획이 빗나가 산이 되었습니다. 선과 산은 비슷하게 생겼군요. 그러고 보면 산은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올라가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여러 개가 있지요. 한 가지 나무만 있는 경우도 없고, 한 가지 꽃만 피는 경우도 없습니다. 한 가지 동물만 있지도 않습니다. 그곳에 나있는 길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나무와 풀과 꽃과 동물이 다양하게 함께 존재하는 곳이 산이지요. 산이 선과 비슷한 글자라서 악과 같이 꽉 막힌 글자가 아니라는 억지를 부려봅니다.
선과 악 글자 타령하다가 갑자기 산으로 빠졌습니다. 어쨌든 산과 같이 큰 존재되지 못하더라도 내 안에 악으로 변할 수 있는 꽉 막힌 골방이 어디인지 살펴야겠습니다. 선한 사슴 눈망울을 가질 수 없더라도 꽉 막힌 골방의 문을 열어야 빛이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도 말장난을 하자면, 프라다도 입는 이는 악마가 아닐 텐데, 프라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프라다만 고집하여 입는다면 그는 갇혀있는 마음, 골방에 갇힌 마음이 될 수도 있겠지요. 악마가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