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불후의 명곡은 우승 소감이 없다

by 이상현

#40 불후의 명곡은 우승 소감이 없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저희 집 TV는 ‘불후의 명곡’에 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불후의 명곡’에 관해 한 꼭지 책에 썼던 적도 있지요. ‘싫어요’가 없고 ‘좋아요’ 버튼만 있는 페이스북과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늘 이상했지요. 아니, 자신의 무대를 패배라고 생각지 않는 것 같았어요. 사실 한 명 말고는 모두 몇 번 버텨보다가 불 꺼지면 내려오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내려와서는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과 낄낄거리며 농담을 하고 파안대소하기도 합니다. 왜 패자들만 모여 있는데도 이렇게 유쾌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걸까요.


<불후의 명곡>에서는 판정단이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그저 가수는 무대를 준비하고, 관객은 자신이 감동하면 버튼을 누르지요. 아무리 이상한 노래라도 한 명 이상은 감동하고, 아무리 완벽한 노래라도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못합니다. <불후의 명곡> 판정단인 관객은 점수를 매기지 않고 각자 버튼을 누름으로써 그저 감동했다는 의사 표현을 할 뿐이지요. 여기에는 가수와 냉정한 평가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가수와 그 노래에 뜨겁게 감동한 관객이 있을 뿐입니다.’

- 이상현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 114쪽 -


승자의 점수만 공개되는 것도 독특합니다. 승자와 패자의 점수 차이를 잘 알 수 없는 방식이지요. 제작진의 패자에 대한 배려일까요.


그래서인지 승자와 패자가 웃으면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둥둥둥 음악 소리가 커지다 패자가 서 있는 곳의 불이 꺼지는 것이 다소 무겁지만, 불이 꺼져 대기실로 돌아온 가수는 금세 가수 동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루고, 노래가 시작되면 관객이 되어 동료 가수의 노래에 몰입하고 응원합니다. 가수에서 관객이 되지요.


코로나로 관객 판정단은 없어지고 한동안 아나운서 소수 판정단으로 운영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온라인 관객 판정단으로 함께하는 운영 체제로 바꾸었더군요.


이렇게 프로그램 운영 방식은 다소 바뀌었지만, 여전히 안 바뀐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끝날 때이지요. ‘불후의 명곡’을 보면서 참 독특하다고 느꼈던 점인데, 그것은 참 허겁지겁(?) 끝난다는 것이지요. 우승 트로피를 받고 어떤 여유도 없이 바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빠듯한 방송 시간에 쫓겨 그런 것이려니 했고 다소 어색했습니다. 계속 보다 보니 혹시 제작진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경연에서 우승하면 사회자는 우승자에게 짧게라도 우승 소감을 듣지요. 하지만 입담 좋은 MC 신동엽은 우승한 것에 관해 특별한 멘트도 날리지 않고, 우승자도 짧은 소감도 내놓지 않은 채 프로그램은 종료합니다. 불후의 명곡은 우승 소감이 없습니다.


연말 방송 시상식은 프로그램 대부분을 주로 우승 소감으로 채웁니다. 형식적 멘트부터 감동적 소감까지 사람들은 우승 소감을 들으며 연말을 보냅니다. 이 시상식에 참여한 다른 연예인들은 한 마디도 못 하고 자리만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면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니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반박을 받겠지만, 시상식 방식이 주로 그렇게 운영된다는 것이지요.


‘불후의 명곡’ 제작진을 제가 잘 모르니, 그 숨은 의도를 제가 당연히 알 수 없지요. 하지만 그냥 제 마음대로 추정해봅니다. 우승 소감이 없는 것은 우승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니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마지막까지 흘러가는 과정 자체가 제작진에게는 더 중요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 제작진의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한 명의 우승자 외에 모두 패자가 될 수도 있는 경연 프로그램인데, ‘불후의 명곡’에 참여한 가수들은 가수이자 관객으로 동료의 감동적인 무대에 울고 웃으며 기립박수를 칩니다.


2011년 시작하여 벌써 십 년 넘게 ‘불후의 명곡’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토요일 저녁에도 특별한 일 없으면 저는 저녁 먹고 ‘불후의 명곡’을 보고 있을 겁니다. 여전히 우승 소감 없는 이상한 오래된 프로그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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